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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80년대와 다른 코로나발 ‘3저 현상’

중앙일보 2020.04.09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손해용 경제에디터

손해용 경제에디터

1980년대 후반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이끌었던 ‘3저(低) 현상’(저유가·저금리·원화 약세)이 다시 찾아왔지만, 환호성 대신 아우성만 커지고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18년 만에 최저 수준이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사상 처음으로 0%대 시대를 열었으며, 원화가치는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원론적으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호재여야 한다. 유가와 금리가 낮으면 기업의 생산 비용은 줄게 되고, 가계의 소비 여력은 커진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한국 제품은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경기 침체가 이런 법칙을 완전히 헝클어트렸다. 지금 저유가는 중동 산유국과 브라질·베네수엘라·러시아 등 원유로 먹고사는 신흥국의 경제를 망가뜨린다. 우리의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유가 하락이 장기간 이어지면 물가 하락을 기대한 ‘소비 감소→생산 감소→성장률 하락’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금리 인하의 ‘약발’도 예전만 못하다. 이미 시장은 만성적 저금리에 길들여진 터라 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금리가 생산적인 투자·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원화가치 하락의 효과도 수출 시장이 어느 정도 받쳐줄 때의 얘기다. 지금은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긴다. 환차손 부담이 커진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는 게 한 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국제유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국은행 기준금리와 국제유가. 그래픽=신재민 기자

물론 80년대와 단순 비교는 무리다. 80년대 3저가 초호황을 이끌었던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지금의 3저는 경제 충격에서 발생한 ‘결과’적인 성격이 강해서다. 지금 나타나는 3저의 역설은 세계적인 수요 부진과 경제활력 상실을 알리는 불황의 ‘전주곡’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당장은 코로나 확산을 막는 데 급급하지만, 공포가 사라진 이후 더 큰 위기가 한국을 덮칠 것이라는 경고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경제 주체는 무엇보다 기업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기초체력 때문이 아니라 일시적인 유동성 마비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를 보존해 가계의 연쇄 부실화를 막고, 경제 회복을 위한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다. 자칫 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면 저성장·저물가·저투자라는 우울한 ‘신 3저’ 시대가 굳어진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이 도산하는 일은 반드시 막겠다”(지난달 2차 비상경제회의)고 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 기업에 들이닥친 거대한 위기의 파고를 막는 든든한 방파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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