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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버틴다, 가계·기업 3월 대출 사상 최대

중앙일보 2020.04.09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지난 1일 오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북부지원센터에서 소상공인들이 긴급대출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지난 1일 오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북부지원센터에서 소상공인들이 긴급대출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은행 대출이 무섭게 늘고 있다. 가계·기업 할 것 없이 3월 은행권 대출 증가 폭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가계는 빚내서 주식을 하느라, 기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보릿고개를 버텨내느라 은행에 손을 벌렸다.
 

가계, 주택대출 줄고 신용 급증
증권예탁금 12조 등 ‘빚투’ 늘어

대기업 회사채 막히자 은행으로
2월보다 3.5배 뛴 18조7000억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3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은 9조6000억원 증가해, 지난달(9조3000억원)에 이어 역대 최대 증가액을 경신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전달보다는 소폭 줄었지만(7조8000억원→6조3000억원)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12·16 대책 이후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고가아파트 거래는 줄었지만 9억원 이하의 수도권 아파트로 ‘풍선효과’가 나타난 영향이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 기타대출 증가 폭은 크게 늘었다(1조5000억원→3조3000억원). 한국은행은 이를 빚내서 투자하려는 이른바 ‘빚투’ 수요로 해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모니터링 결과 사업·생계 관련 가계대출 증가압력은 크지 않다”며 “3월 중 증권사 투자자예탁금이 11조9000억원 급증하는 등 주식투자자금 수요가 늘어난 게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은행 기업대출, 역대 최대 ‘폭증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은행 기업대출, 역대 최대 ‘폭증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기업대출은 증가세가 더 가파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기업대출은 18조7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09년 6월 통계 작성 이래 최대일 뿐 아니라, 종전 최대치(2014년 1월 10조9000억원)를 훨씬 웃돈다. 대기업의 은행대출은 지난달 10조7000억원이나 늘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자금줄이 막히자 대기업들이 은행에 손을 벌렸기 때문이다. 실제 3월 중 회사채 시장은 5000억원 순상환(상환〉발행)을 기록했다.
 
중소기업 대출 역시 증가 폭이 전달보다 껑충 뛰었다(5조3000억원→8조원). 특히 중소기업 중 개인사업자의 대출 증가액이 크게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2조2000억원→3조8000억원). 코로나19로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자금 수요가 늘어난 데다, 정부가 정책 지원에 나서면서 증가 규모가 상당폭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은행 가계대출, 두달 연속 ‘역대 최대’ 기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은행 가계대출, 두달 연속 ‘역대 최대’ 기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가계·기업대출의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출 수요는 갈수록 늘고 있어서다. 이미 정부 주도로 시중은행은 4월부터 소상공인(신용등급 1~3등급 대상) 초저금리 대출 3조5000억원 공급에 나섰다.
 
이에 일부에서는 이러한 은행을 통한 경기 부양이 은행산업에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 시중은행 자본여력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충분치 않다”며 “코로나19의 영향이 일시적이 아니라 장기화한다면 무리한 정책지원으로 금융회사의 자금조달 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대출 부실화 위험을 근거로 한국 은행업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은행이 대출을 쉽게 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로 인한 연체율 증가도 예상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대출의 경우,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곳은 꼭 도와줘 연명시켜야겠지만, 평상시 체력이 약한 기업은 오히려 사전적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맞다”며 “건전한 금융시스템 유지를 위해서라도 꼭 긴급한 곳에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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