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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로 공공부문 3.3조 당겨쓰기...고꾸라진 소비 불쏘시개 될까

중앙일보 2020.04.08 17:34
정부가 8일 내놓은 소비 보완책은 민간에서 불고 있는 ‘착한 소비’의 확장판 성격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심리가 고꾸라지며 벼랑 끝에 내몰린 외식업체, 항공업 등에 향후 내야 할 돈을 미리 결제해주는 형태다. 이런 소비 방식을 공공 부문이 앞장서서 시행하겠다는 얘기다. 공공 부문이 쓸 돈을 앞당겨 지출해 급한 불을 끄자는 의도인데,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하게 된 이후 공공 부문의 경기 부양 지원 여력이 쪼그라들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연합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성윤모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연합

 

식당, 항공권 선결제...업무용 차량 미리 구매 

정부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4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내수 보완방안’을 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강력한 방역 대응 과정에서 경제의 이동성이 크게 위축되며 경제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며 “코로나19 이후의 미래 소비와 투자에 대해 미리 현금 유동성을 제공해 준다면 지금 목말라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들에 작은 단비와도 같은 실질적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전까지 132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놨다. 하지만 경기가 살아날 기미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지속되며 ‘소비 쿠폰 지급’과 같은 정책 효과도 반감되고 있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지만, 누구에게 언제 얼마나 줄지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코로나19 확산 대책과 덜 충돌하면서 경기 진작책의 온기가 영세 상인 등에게까지 퍼지게 하는 방안으로 정부는 ‘선결제’와 ‘선구매’를 내놨다. 공공기관이 인근 식당에 업무추진비를 통해 선결제하고, 하반기에 필요한 항공권을 미리 구매하는 식이다. 연기되거나 하반기에 미뤄진 국제행사 계약은 미리 체결한다. 하반기에 사기로 한 업무용 차량 1600대는 앞당겨서 산다. 이런 식으로 3조3000원 규모의 돈이 시중에 미리 돌게 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착한 소비에 세금 혜택

착한 소비 운동의 민간 확산을 위해 세제 혜택과 같은 인센티브를 준다. 4~6월에 음식‧숙박업, 관광업, 공연 관련업, 여객운송업 등에 신용카드를 쓸 경우 소득공제율을 80% 적용한다. 앞서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이 기간 공제율을 신용카드 기준 15%에서 60%로 늘렸는데 식당 등 취약업종에 대해선 공제율을 더 높인다. 소상공인으로부터 물건을 미리 살 경우 소득세와 법인세에 1% 세액공제 혜택도 준다.

 

"일시적 대책...소비 수요 진작에는 한계" 

감염 방지와 소비 진작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어 선택지가 제한적인 정부 입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선 결제‧선 구매를 통한 소비 진작의 방향이 나쁘지는 않다”며 “다만 급한 불을 끄는 차원의 일시적인 대책으로 소비 수요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임대료 인하 유도를 위한 ‘착한 임대인’운동 지원과 비슷한 방향성인데 실제 정부의 지원 발표 이후에도 임대료 인하 바람이 크게 불지는 않았다”며 “공공기관이 선도하는 선결제‧선구매 정책이 민간으로 크게 번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의 모습.   이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여객 수가 감소해 출입국장과 주기장 등 공항 시설 운영을 축소하는 '비상운영'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연합

지난 7일 인천국제공항의 모습. 이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여객 수가 감소해 출입국장과 주기장 등 공항 시설 운영을 축소하는 '비상운영'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연합

일부 정책의 경우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항공권 선 구매 방침에 대해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권 가격은 스케줄 등 결정 구조가 복잡한데 어떤 기준으로 선구매를 할지 의문”이라며 “항공권을 미리 샀는데 선구매한 공직자의 스케줄이 바뀔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선결제‧선구매 정책은 큰 틀에서 재정 조기 집행과 유사한 형태다. 미리 돈을 쓰면 나중에 쓸 돈이 사라지는 ‘재정 절벽’이 벌어질 수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정책은 예산 조기 집행과 궤를 같이하는 정책으로 보인다”며 “그러면 코로나19 이후 소비심리가 꿈틀거릴 때 회복을 지원할 수 있는 공공부문의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가능성을 인정하며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 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는 추가적으로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한 소비진작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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