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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년 3월, 집엔 역병 걸린 아들뿐" 조선때도 자가격리 했다

중앙일보 2020.04.08 11:23
영화 킹덤의 한 장명. [넷플릭스, 중앙포토]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영화 킹덤의 한 장명. [넷플릭스, 중앙포토]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킹덤은 원인 모를 역병이 나라 안에 돌고 이 병에 걸린 백성들이 하나둘 사람을 물어뜯는 '좀비'로 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처럼 대유행(팬더믹) 감염병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엔 어떻게 역병을 이겨냈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이 8일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기와 실록을 통해 역병 극복 사례를 소개했다. 자체 웹진 '談담'4월호를 통해서다. 
 
 조선시대에도 역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있었다. 의료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인 활인서(活人署)는 출막(出幕)이라는 임시 시설을 만들었다. 성 밖에 출막을 설치해 감염병 환자를 별도로 격리해 관리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생활치료시설이나 거점병원과 비슷한 시설이다. 하지만 이 시설엔 역병에 걸린 환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역병 유행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백성들이 먹을 것을 찾아 들어오기도 했다. 
 
먹고살 만한 양반들은 출막을 가지 않았다. 집에서 자가격리하며 치료를 했다. 일부 뜻이 있는 선비들은 자신들의 집에 병에 걸린 백성들을 들여서 돌보기도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자체 웹진 담담을 통해 조선시대 감염병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이 자체 웹진 담담을 통해 조선시대 감염병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역병이 나도는 가운데 타지에 나가 있는 자식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건강한 다른 가족은 다른 곳으로 보내 격리한 사례도 있다. 16세기 경북 안동의 양반 금난수(1530~1604)가 남긴 ‘성재일기(惺齋日記)’에는 감염병을 앓는 가족을 치료하고 돌본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자체 웹진 담담을 통해 조선시대 감염병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이 자체 웹진 담담을 통해 조선시대 감염병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1579년 3월 2일 일기다. 그는 석 달 넘게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끝에, 암자에 나가 있던 큰아들 금경이 병에 걸리게 된다고 적었다. 그래서 말을 암자로 보내 금경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때 건강한 다른 가족은 모두 다른 곳으로 보내 2차 감염을 막았다고 했다. 금난수의 당시 집이 현재의 자가격리 공간인 병상 개념이 된 것이고, 다른 곳으로 가족을 보낸 행위는 현재의 예방 수칙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된 셈이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심각했던 대구·경북에 서울 등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처럼 감염 공포 속에서 과거에도 연대와 돌봄이 있었다. 권상일의 청대일기(淸臺日記)에는 감염병에 걸린 백성을 거둔 대승사라는 절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755년 12월, 경상도에 감염병이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오랫동안 병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경북 문경에 있던 대승사(大乘寺)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사찰로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였다고 한다. 승려들은 감염을 각오하고 죽을 끓여 이들을 먹이며, 병을 돌봤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자체 웹진 담담을 통해 조선시대 감염병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이 자체 웹진 담담을 통해 조선시대 감염병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측은 "현대 의학의 혜택을 입을 수 없었던 조선시대. 갑자기 몰아치듯 다가와 생명을 앗아가는 역병 앞에서 백성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아픈 이를 돌보려는 마음은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상존하는 것인데 다양한 돌봄 실천 사례가 놀랍다"고 했다. 
 
안동=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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