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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우리 개는 특별해! 큰소리 치고 훈련소 데려갔더니

중앙일보 2020.04.08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35)

 
남편의 요양 차 우리 부부가 시골로 내려가던 날, 배웅하는 지인들이 누렁이 진돗개와 호피무늬 진돗개를 차에 실어 주었다. 두 달 정도 지난 어린 녀석들이라 처음엔 방에서 함께 살다시피 했다. 하나(암놈)와 순돌이(수놈), 개의 이름이다.
 
그 녀석들은 십만 평의 넓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랐다. 1년 정도 되니 가끔 고라니 산토끼 등을 잡아 와 칭찬을 받았다. 남편은 개의 행동을 보며 삶의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50m도 걷기 힘들다며 종일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 반나절도 넘게 개들과 산을 돌아치곤 했다. 주인의 칭찬에 힘입어 점점 큰 고라니도 잡아 마당에 물어다 놓고는 컹컹 짖었다. 남편은 점점 더 기운이 났다. 하루는 사냥 온 사람들이 고라니 잡은 걸 보더니 같이 흥분했다. 그러면서 아랫마을에 가면 사냥개 전문 양성소(?)가 있다며 가서 시험을 쳐 보라고 소개해주었다.
 
똑똑한 자식들이 시골에 처박혀 더 많은 재능을 발휘 못 한다는 핑계처럼, 최고의 교육을 받아 실력을 발휘하는 멧돼지 잡는 사냥개 ‘하나와 순돌이’, 그 모습이 남편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자연 속에서 그냥 어우러져 살고자 했지만, 이미 저만치 앞서가는 남편 머릿속의 그림은 지울 수 없었다.
 
시골로 내려오던 날 지인에게 선물 받은 진돗개 두마리. 그 녀석들은 십만 평의 넓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랐다. 1년 정도 되니 가끔 고라니 산토끼 등을 잡아 와 칭찬을 받았다. [중앙포토]

시골로 내려오던 날 지인에게 선물 받은 진돗개 두마리. 그 녀석들은 십만 평의 넓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랐다. 1년 정도 되니 가끔 고라니 산토끼 등을 잡아 와 칭찬을 받았다. [중앙포토]

 
며칠 후 전화하니 개들도 구경할 겸, 차나 한잔하러 오라고 한다. 트럭 뒤에 개를 싣고 그곳을 찾아갔다. 훈련소장은 우리 개들을 보더니 개가 영리해도 이미 다 자란 놈들이라 훈련이 힘들 거라고 했다. 특히 진돗개는 고집이 세서 더 힘들단다. 이곳에는 타고난 사냥개의 혈통에 맹수의 성격과 강한 지구력, 체력을 갖고 태어난 놈들을 선별해 어릴 때 데려온다. 가끔 사냥을 잘하는 일반 개들이 추천되어 특별 케이스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낙제되어 제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년이 지난 개들은 말도 안 듣지만, 성견들의 텃새와 왕따(?)로 단체 교육이 전혀 안 된단다.
 
훈련장의 한 울타리에는 6개월 정도 자란 듯한 야생 멧돼지 한 마리가 훈련용 샌드백이 되어 그 안에 있었다. 이어 훈련을 잘 받은 개들의 시범 경기가 있다. 그들은 몇 마리씩 한조가 되어 훈련을 받는데 대장 격인 한 놈이 진두지휘한다. 리더의 신호에 급소를 공격하는 놈, 짖는 놈, 몰이 팀이 합세해 멧돼지를 공격하며 한쪽으로 몰아세운다. 구경하는 내내 조기교육과 학습효과에 감탄했다. 훈련이 끝난 후, 조련사는 한 놈 한 놈을 안아주며 고기와 함께 칭찬 바가지를 퍼붓는다. 얼마나 많은 연습과 훈련을 했는지 알 것 같다. 멧돼지 퇴치 기간에 사냥꾼과 함께 뛰며 멧돼지를 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개들은 그런 특수훈련을 받은 개들이다.
 
 
남편은 고집을 부렸다. 우리 개는 지구력, 추진력도 앞서서 일반 개와는 다르다고 큰소리친다. 소장은 울타리 안에서 멧돼지를 보고 짖기만 해도 훈련에 참여시켜 보겠다고 말하며 두 녀석을 울타리로 들여보냈다. 남편의 고집을 꺾을 말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그 후 ‘하나와 순돌이’는 울타리에 들여보내자마자 짖기는커녕 울타리를 타고 넘어 똥줄 빠지게 도망치느라 한참 후에 우리 차 근처에서 찾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충격은 트라우마를 갖게 하고, 또 그 일로 인해 앞으로의 생활에도 무기력을 준다. 그들은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았다. 근처에 작은 동물이 지나가도 제비같이 날렵하게 달려가던 녀석들은 그 날 이후 본 둥 만 둥 쳐다보다가 똬리 틀 듯 고개를 처박고 앉아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냈다. 아마 그날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는지 성취욕도 사라진 것 같다.
 
도시의 부잣집에서 개린이 유치원을 다니며 자란 애완견과 시골집 마당에서 크는 동물이 다르듯이 자란 환경이 다르면 성격도 습성도 다 다르다. 스스로 멧돼지를 잡을 능력이 충분히 되면 저절로 성취욕을 일으켜 잡았을 텐데, 우리가 ‘하나와 순돌이’의 야망과 개생을 망친 셈이다. ( ‘ㅇㅇ개린이 유치원(애완동물 맡김)’ 차량을 보며 그 녀석들을 생각해본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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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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