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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식 판사는 구하라 영상 꼭 봐야했나···법정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2020.04.08 05:00
그룹 카라 출신의 가수 고 구하라(씨의 모습. 구씨는 지난해 11월 2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그룹 카라 출신의 가수 고 구하라(씨의 모습. 구씨는 지난해 11월 2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법원이 오덕식 판사를 대신해 고(故) 구하라씨를 둘러싼 논란을 해명했다.
 

고(故)구하라 측 "중요한건 최종범 형량 낮다는 것"

김병수(52)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은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김 수석부장은 이메일에서 "(오 판사가 구하라씨의) 동영상 확인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것 같다""변호사의 반대에도 오 부장님이 판사실에서 동영상을 확인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형사부를 총괄하는 수석부장이 오 판사를 대신해 지난해 7월 구씨의 전 연인 최종범(29)씨 재판에서 있었던 '동영상 논란'을 해명한 것이다. 하지만 SNS에선 오 판사가 구씨 변호인의 반대에도 최씨가 구씨를 협박할 때 언급한 '성관계 영상' 시청을 강행했다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날 두 사람의 재판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난해 7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던 최종범씨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던 최종범씨의 모습. [연합뉴스]

최종범·구하라 재판의 재구성

2019년 7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0 단독(오덕식 부장판사)에선 최씨의 세 번째 공판이자 결심이 열렸다. 이날 구씨도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2시간가량 비공개 증언을 했다. 최씨는 구씨에게 성관계 동영상을 유출하겠다고 협박하고, 소속사 대표에게 무릎을 꿇은 사과를 강요하고, 구씨의 의사에 반하여 구씨의 모습을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는 이날 최후 변론에서 구씨를 협박하는데 사용했다는 영상은 "유포를 목적으로 촬영하지도, 유포를 할 수도 없는 영상"이라 말했다. 이어 "성관계 영상은 구하라가 제안해 제가 동의하고 찍은 것이다. 90% 이상 제가 나오며 구하라는 옷을 입고 저는 옷을 벗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는 구씨를 협박할 의사가 없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최씨의 말을 들은 오 판사는 검사에게 "영상의 내용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판정에서 비공개로 영상을 확인하자고 제안했다. 김병수 수석부장은 이를 "협박사실의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므로 (오 판사의)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씨에게 적용된 또다른 혐의 중 하나인 불법촬영은 이 영상과는 다른 촬영물이 증거로 제시됐다.  
 
 녹색당과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녹색당과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성적폐 재판부에 여성들을 잃을 수 없다'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변호인 반발 수용했던 오덕식

오 판사의 제안에 구씨의 변호인이 강력히 반발했던 것은 사실이다. 구씨의 변호인은 "아무리 비공개라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다시 재생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역시 2차 가해다"고 말했다. 다만 구씨의 변호인도 양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오 판사가 영상을 개인적으로 확인하는 것까지 반대하진 않았다. 오 판사는 변호인의 요청에 한발 물러서 법정이 아닌 판사실에서 해당 영상을 확인했다. 
 
오 판사는 그 과정에서 검사에게 "영상이 유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고 공판 검사는 법원의 실무자를 거치지 않고 오 판사에게 직접 영상을 전달했다. 오 판사는 동영상을 확인한 뒤 최씨측 주장을 배척하며 협박죄를 적용했다. 당시 재판에 참석한 검찰 측에선 "김 수석부장의 해명이 당시 사실관계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구씨의 1심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세종 측에선 구체적 답변은 하지 않았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억울함을 주장하며 증거 내용을 다툰다면 판사는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누가 옷을 입었든 구하라엔 충분한 위협 

오 판사의 결정에 법조계가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동영상을 보지 않았더라도 최씨의 양형을 판단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현직 시절 성폭력범죄 전담 검사였던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구씨가 옷을 입고 최씨가 옷을 벗은 영상도 구씨에겐 엄청난 위협이다. 최씨의 진술에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협박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오 판사가 영상을 반드시 볼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오덕식 판사 퇴출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7일 기준 44만여명이 서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청와대홈페이지 캡처]

오덕식 판사 퇴출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 7일 기준 44만여명이 서명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청와대홈페이지 캡처]

오 판사가 최씨에게 강요·협박·상해죄에 집행유예를, 불법촬영엔 무죄를 선고한 것도 일각에선 형량이 낮다는 반발을 샀다. 오 판사는 최씨가 보유한 구씨의 사진 등이 "명시적 동의를 받진 않았지만 의사에 반해 촬영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며 최씨와 구씨의 만남 계기·동거 사실·성관계 관련 내용을 언급한 것도 '성인지 감수성'에 둔감한 기계적 판결이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지방법원의 한 현직 판사는 영상 논란과 별개로 "중범죄인 성범죄를 경범죄로 만들어버리는 법원의 양형들이 문제"라며 "오 부장판사에 대한 비난에 법원 구성원이 자유롭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구씨의 2심 재판을 맡고있는 변호인은 "중요한 것은 오 판사가 최씨에게 선고한 집행유예가 너무 가볍다는 것"이라며 "2심에선 최씨에게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의 항소심 첫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김재영 부장판사)에서 5월 21일에 열린다. 1심에서 구씨가 남긴 2시간의 법정 증언은 2심에도 여전히 증거의 효력을 갖는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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