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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코로나19 : 솔로크라시와 글로벌 판옵티콘

중앙일보 2020.04.08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우리 인류는 지금 과연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나. 인류의 대위기 시에, 단기적 고통과 비관을 견디게 해주며 우리를 위로하던 장기적 기대와 낙관마저 지금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인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간외적 문제의 압도적 크기와 인간들의 집단무능을 동시에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개인자유와 공공안전 조화 절실
서구G7과 중국시대 넘어서야
한국과 호주 포함한 G9설립 시급
민주주의와 보편주의 회복이 해답

가장 먼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다. 기후변화를 포함해 자연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변경하려고 할 때 자연의 보복은 실로 무섭다. 인간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자연 핍박을 계속한다면 동물 서식지 파괴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자연의 인간 핍박은 더 강력해질 것이다. 인류의 자업자득이다.
 
첨단과학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감염질병 대응은 항상 힘에 부쳤다. 따라서 자연의 절대성과 인류의 유한성 사이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인류의 집단무능과 생태파괴가 계속 같이 간다면 인류 자멸은 더욱 앞당겨질 수 있기에, 나와 자녀들의 삶의 터전을 살리기 위해 각자가 최소한 70억 분의 1에 해당하는 역할과 의무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국제책임 문제다. 일차적으로는 중국의 정보미공개와 통제, ‘국제보건규칙’(2005년)에 따른 세계보건기구(WHO)에의 보고지연의 책임문제가 엄중하다. 영국은 이번 사태로 중국이 천민국가(pariah state)가 될 위기라고 비판한다. 이제 세계는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 모두에서, 즉 인구·무역·생산·소비·환경·관광·질병·안보의 차원에서 ‘중국의 시대’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한의 집단감염 발발 이후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태만과 허송 역시 심각한 문제다. 여기에는 아시아에 대한 일종의 인종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이 내재되어 있지 않은지 냉철히 돌아봐야한다. 특히 그동안 지구발전을 주도하며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 동시에 문제해결의 해법도 선도했던 선진국들의 방역실패는 깊이 주목할 만하다.
 
서구는 초기에 ‘중국 발 바이러스’를 말하다가, 지금은 ‘아시아로부터의 교훈’을 이구동성 말하고 있다. 한국,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이 사례다. 인식의 급변인 동시에 ‘중국’과 ‘아시아’의 날카로운 구별이다. G7국가들의 방역붕괴와 최근의 협력불능 상황을 고려할 때 인류는 코로나19 이후를 향한 새로운 국제기구-예컨대 한국과 호주가 포함된 G9과 같은-를 적극 모색할 때다.
 
세계와 사회와 개인의 관계는 가장 중요하다. 핵심문제는 데이터 프라이버시·개인 정보보호와 공공의료·공중보건 사이의 조화와 충돌의 문제다. 공공 대 사사, 개인과 사회의 근본 관계를 말한다. 이제 우리는 빅 데이터가 빅 브라더가 될지도 모를 가공할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세계사태와 개인안전이 즉각 연결되며 전자가 후자를 직접 통제하는 상황이다.
 
보건의 경우 일종의 지구적 감시체제로서의 판옵티콘(panopticon)을 말한다. 반면 개인의 자기지배 체제인 솔로크라시(solocracy)도 함께 등장하고 있다. 모순적인 지구적 감시체제와 개인의 자기지배 체제의 동시 등장이다. 자기정보의 관리기구에의 제공과 공중보건체계로부터 보호를 교환하는, 감시와 보호의 기묘한 교환체계가 도래한 것이다. 금번 감염질병의 경우 개인 마스크, 개인 세정제, 개별 자가격리를 넘어 개인 동선 추적, 개인 자기진단 앱 설치 및 정기보고에서 보듯, 개인안전과 공공보건을 위한 감시기제와 보호체계의 교환이 전면화하고 있다.
 
이번에 서구자유주의 국가들의 초기 방역실패에는 개인자유와 정보보호, 인권을 중시하는 가치가 크게 작동하였다. 반면 방역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들은 공중보건과 공공안전을 우선하였다. 긴급상황에서 자신과 타인 생명보호를 위한 감시와 보호의 교환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예외상태 이후까지 솔로크라시와 판옵티콘이 지속되어선 절대 안된다. 현재는 전시 언술과 법령과 조치들이 세계를 장악하며 정상적 민주주의를 압도하고 있다. 예외조치는 예외상황에 한정되어야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전지구적 보편주의와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예리한 경각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 최근 인류는 혹독한 역설의 상황이었다. 평화시대였음에도 세계대전 이상의 난민숫자, 사상 최악의 지구적 불평등 정도와 최대의 비자연적 사망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를 ‘평화적 재앙’ ‘재앙적 평화’라고 불러오곤 했다. 예컨대 WHO에 따르면 2012년 지구의 공기오염 사망자는 물경 700만명에 달했다. 주로 저소득, 또는 개발도상 국가들에서였다.
 
선진국과 강대국들이 집중적인 피해당사자들이 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전지구적 관심의 폭발과 비교할 때, 공기오염 700만의 생명망실도 똑같은 인간생명의 지평에서 접근하는 보편주의가 절실하다. 솔로크라시도 글로벌 판옵티콘도 안된다. 지구 어디서나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은 같은 크기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연결된 지금 인류는 함께 멸망으로 치닫는 행진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아니, 더욱 재촉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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