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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전] 칼

중앙일보 2020.04.08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정철-사람사전

정철-사람사전

 사람 몸을 향한다. 의사의 칼도 무사의 칼도 사람 몸을 향한다. 칼끝이 향하는 방향보다 중요한 건 누가 그 칼을 손에 쥐느냐.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칼을 누구에게 맡기느냐. 선거란 의사와 무사를 가려내는 일이다.
 
『사람사전』은 ‘칼’을 이렇게 풀었다. 선거는 칼의 이동이다. 헌법에 등재된 국민의 칼을 정치인 손에 넘기는 일이다. 꽤 위험한 주고받음이니 칼을 건네기 전에 잘 살피라고 한다. 칼을 쥐려는 사람이 의사인지 무사인지. 혹 의사 가운을 두른 무사는 아닌지.
 
 잘 살핀다. 의사와 무사를 가려낸다. 그런데 결론이 엉뚱하다. 남의 동네 의사는 안 됩니다. 차라리 우리 동네 무사로 갑시다. 신앙이다. 뿌리 깊은 신앙이다. 신앙의 힘은 칼을 이긴다. 내가 선택한 무사의 칼에 내 허벅지를 찔려도 아픈 줄을 모른다. 다음 선거 땐 허벅지에 붕대 감고 장딴지를 내민다. 뭐 어쩌겠는가. 신앙인데. 펜 끝으로 신앙을 상대할 도리는 없으니 패스. 
  

사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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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안타까운 건, 내 칼을 길바닥에 내던지고 누가 가져가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럴 수 있다. 기권도 당당한 의사 표현이니 그래도 된다. 대신 맛있는 권리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정치를 욕할 권리. 정치의 비겁을, 배신을, 탐욕을 술안주 삼아 아작아작 씹을 권리. 그 통쾌한 권리와 이별해야 한다. 칼을 내던지는 순간 혀를 휘두를 자격도 사라지니까.
 
 걱정이다. 술자리에서 정치 씹지 않으면 무얼 씹을지. 이것저것 씹을 거리 찾다보면 안줏값에 허리가 휠 텐데.
 
정철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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