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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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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피해자 "선물 보낼 주소 달라더니···지옥 시작됐다"

중앙일보 2020.04.05 16:00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어차피 그놈이 제 얼굴, 집 주소 다 알고 있잖아요. 감옥 간다고 해도 금방 나올 텐데 저한테 복수할까 봐…그게 아직도 무서워요."

 

<제28회> n번방 피해자 인터뷰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이렇듯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조주빈(25) 등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이 하나둘 검거되고 있지만, 미성년자인 A씨는 여태 피해 사실을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조차 말 못한 상태예요.  
 
그는 올해 초 관련 기사를 보고서야 자신이 당한 피해가 'n번방 사건'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n번방'이 뭔가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기사 첫 줄에 '텔레그램'이라고 쓰여있는 걸 봤어요. 그 순간 '내가 당한 게 이거구나' 싶었죠."
 
A씨는 "n번방에 대한 사실을 모두 알려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n번방과 유사한 채팅방도 모두 다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면서 밀실팀과의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돈·선물 보낼테니 이름·주소 알려달라"

A씨가 가해자를 알게 된 건 어느 모바일 채팅앱을 통해서입니다. 누군가 "월 400만원 줄테니 '스폰 알바' 해볼 생각 없냐"고 말을 걸어왔죠.
 
어떤 아르바이트인지 묻자 가해자는 "오프라인 만남은 하지 않는다.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처럼 이야기만 하면 되고, 내가 원하는 영상과 사진을 가끔 보내주면 된다"며 A씨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는 A씨에게 "'텔레그램'이란 앱으로 오면 자세히 설명하겠다"며 본인의 아이디를 건넸습니다. 텔레그램에서 가해자는 "돈을 보낼테니 이름과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고 해요. 다음엔 "선물을 보내줄 테니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알고보니 A씨를 협박하기 위한 개인정보를 빼내려 했던 거였죠. 반신반의하던 A씨도 결제명세서, 배송확인서까지 제시하는 가해자의 치밀한 수법에 속고 말았다고 합니다. 물론 가해자는 실제로 돈이나 선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협박과 위협에 떨면서도 주변에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는 '텔레그램 지옥'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래픽=이정권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기자 gaga@joongang.co.kr

 

요구 거절에 "기어오르자 마라" 영상 유포 협박 

대전여성단체 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이용자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대전여성단체 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이용자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스1

처음에 가해자는 '얼굴이 나오지 않은 영상'을 요구했다고 해요. 다음엔 "얼굴이 나온 영상을 보내라"고 했고요. 시간이 갈수록 요구는 심해졌습니다. "교복을 입고 영상을 찍어라", "학교 화장실에서 찍어 보내라"라는 식이었죠.
 
A씨는 꼼짝할 수 없었다고 해요. "그 사람이 내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거절하기 어려웠다. 시키는 대로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시엔 '지금 거절하면 내 영상과 개인정보를 유포할 것 같으니, 조금만 더 시키는 대로 하고 그만하겠다고 말하자'는 생각에 계속 영상을 보냈다고 하더군요.
 
가해자는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가학적인 지시를 지속했습니다.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러 번이고 다시 찍어 보내라고 했고요. 
 
A씨가 거절 의사를 밝히자 가해자는 A씨가 보냈던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너에 대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으니 기어오르지 말라. 내 말만 따르라'고 했다는 군요. 
 
보름 동안 가해자에게 보낸 영상만 80개에 이릅니다. 겁먹은 A씨는 학교 수업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몰래 가지고 있었어요. 가해자가 언제 연락할 지 몰랐고, 답장을 하지 않으면 어떤 보복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죠.
 
그러던 어느 날, 가해자가 사라졌습니다. 가해자는 마지막으로 "이제 모을 거 다 모았네. 영상 유포할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놀란 A씨는 "정말 죄송하다""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유포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빌었지만, 가해자는 아무런 대답 없이 텔레그램 방을 나갔습니다.
 

"털어놓을 곳 없어" '2차 가해'에 상처 커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지난달 25일 성착취 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 1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지난달 25일 성착취 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 1

수개월간 두려움에 떨었던 A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께도 차마 말할 수도 없었죠. 그는 "당시엔 '이제 난 어떡하지'라는 생각뿐이었다. 친구 한명이라도 이걸 보고 소문이 쫙 퍼질것 같아 너무나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죄책감에도 시달렸다고 합니다. "내가 영상을 보낸건 맞으니까 '내가 정말 피해자일까', '내가 잘못해서 시작된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고 털어놨습니다.
 
학교에 상담센터가 있었지만,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A씨는 "학교 상담센터에선 성 관련 상담은 부모에게 바로 알린다"고 알고 있어 익명으로 이용하는 '고민 상담 앱'에만 간간히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고 해요.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려고 했지만, 얼마 전 함께 n번방관련 뉴스를 보던 어머니가 '내 딸이 피해자가 아니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는 걸 보니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고 해요.
 
n번방 사건 관련 기사에 으레 붙는 피해자들에 대한 비난 댓글도 A씨를 괴롭히고 있어요. 성폭력 사건에 자주 발생하는 '2차 가해'입니다. 
 
A씨는 "최대한 n번방 기사에 달린 댓글은 최대한 안 보려고 하지만, '너희들이 먼저 찍어 보냈으면서 왜 가해자 탓하냐', '가해자가 떡밥을 푼 것이고 그 미끼를 문 게 잘못 아니냐'는 댓글은 잊히지 않는다"고 털어놨습니다.
 

"복수당할까 무서워…영원히 감옥에 있었으면"

A씨는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원합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입장을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범죄자도 인권이 있고, 미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 인권과 미래를 짓밟은 건 가해자 아니냐"고 했습니다. "솔직히 사형했으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감옥에라도 평생 있으면 좋겠다. 어차피 몇 년 살다 나올 텐데, 내 정보를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하러 올까 봐 겁난다"고 덧붙이더군요.
 
n번방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A씨는 미성년자들이 유사 범죄의 피해자가 될 위험성은 여전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미성년자에게 '기프티콘 줄 테니 벗은 사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걸 봤다. 심지어 몇몇 언론사 홈페이지에 조건만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앱에 대한 광고가 떠 있다"고 했어요.
 
A씨는 자신과 유사한 피해를 겪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나 역시 가끔 내 탓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분명 가해자들 때문"이라며 "다른 피해자들도 혼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김지아·최연수·남궁민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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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위한 무료 법률 지원
한국여성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17명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무료법률지원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n번방 피해자법률지원변호사단' 모집을 시작한지 단 5시간만에 변호사 111명이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은 한국여성변호사회 홈페이지(www.kwla.or.kr) 등을 통해 연락하려면 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국내 디지털 성범죄 처벌이 가볍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단체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물을 유통해온 ‘웰컴투 비디오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미국 법원은 아동 성범죄 영상을 촬영해 해당 사이트에 업로드한 남성에게 22년형을 선고했지만, 국내에서는 운영자인 손모씨는 1심에서는 집행유예를,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했지요. 사이트 이용자들 중 소지죄로 처벌받은 223명은 대부분 150만~1000만원 정도의 벌금형이었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번 n번방 사건에서 매우 강력한 처벌이 나와야만 여성들이 나아가 시민들이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고, 유사범죄를 막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성착취물의 피해여성들이 영상이 유포되는데 대해 갖는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만큼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성착취물을 올린 이들을 끝까지 추적해 온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데 성실히 조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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