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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된 美루스벨트함 함장에 "영웅"…루스벨트 증손자도 지지

중앙일보 2020.04.05 12:23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험에 처한 승조원의 하선을 허용해달라”는 'SOS' 편지를 군 수뇌부에 보냈다가 경질된 미 핵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의 브렛 크로지에 함장에 대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증손자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해당 함정의 승조원은 물론 미국 정치권 등 대체적인 여론이 군 당국의 조치를 비판하는 양상이다.
 

"함장은 증조부의 길을 걸었다"
승조원은 물론 미 여론도 함장에 우호적

지난달 26일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이 예인선에 끌려 괌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지난달 26일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CVN 71)이 예인선에 끌려 괌에 입항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증손자이자 롱아일랜드 대학 시어도어 루스벨트 연구소장인 트위드 루스벨트는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크로지에 함장은 영웅'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함장은 부하들을 구하려면 즉시 행동해야 한다고 느끼고 강력한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의 경력 면에서 최고의 접근법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결과를 얻어냈다”며 “증조할아버지도 나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도 아닌 데 수병들이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는 내용의 편지로 군 수뇌부에 신속한 승조원 하선을 요구한 크로지에 함장은 이 편지가 언론에 유출됐다는 이유로 지난 2일 함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토머스 모들리 미 해군장관 대행은 “크로지에 함장의 편지 유출은 해군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며 “직접 그를 경질하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군 안팎에선 크로지에 함장의 경질이 괘씸죄에 따른 수뇌부의 보복 조치라는 시각이 강하다. 루스벨트 소장은 "해군은 크로지에 함장을 경질하면서 그의 편지가 승조원들 사이에 극심한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실수라고 했지만, 당시 항모 내의 끔찍한 상황을 볼 때 그가 다른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군 수뇌부는 함장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승조원 하선에 미온적이었다. 지난 1일 필수인력을 제외한 승조원들에 대한 수뇌부의 하선 결정이 나온 건 사실상 편지가 불러일으킨 여론의 힘이었다. 미군 수뇌부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모들리 대행은 당시 “편지를 작성한 행위에 대한 보복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편지를 외부로 유출한 인원에게는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루스벨트 소장은 “크로지에 함장이 이끌던 항모의 이름을 가진 자의 후손으로서 이런 상황에 증조할아버지는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1898년에 거의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는 점을 보면 증조할아버지가 어떻게 했을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미·스페인 전쟁 당시 '러프 라이더스'(Rough Riders)라는 자원 기병대를 지휘했던 일을 떠올렸다. 전쟁이 거의 끝난 상황에서 쿠바에 남아있던 병사들이 황열병과 말라리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루스벨트 소장은 “증조할아버지를 포함해 전장의 사령관들이 병사들을 고국으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미 정부 지도부, 특히 러셀 앨저 당시 육군 장관이 정치적 반발을 우려해 이를 거절했다”며 “직업 군인 장교들도 의견을 냈다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기 자원자여서 잃을 것이 없는 증조할아버지가 동료 사령관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언론에 강렬한 공개서한을 보냈다”며 “이 편지로 병사들을 당장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어 결과적으로 부대를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격리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보복 조치를 당했다가 명예 회복이 된 점도 거론했다. 루스벨트 소장은 “화가 난 앨저 장관이 증조부가 명예훈장 후보에 오르자 이를 받지 못하도록 막았다”며 “하지만 증조할아버지는 사후인 2001년 이를 받았고, 결국 그가 승리했다. 오늘날 누가 앨저 장관을 기억하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증조부처럼 크로지에 함장도 같은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함정을 떠나는 크로지에 함장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승조원들. [사진 페이스북 화면 캡처]

함정을 떠나는 크로지에 함장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승조원들. [사진 페이스북 화면 캡처]

 
루스벨트함 승조원들은 지난 3일 함정을 떠나는 크로지에 함장을 향해 환호로 감사함을 표한 바 있다. 미 의회 군사위원회의 위원들도 “크로지에 함장이 지휘 계통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승조원들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직면한 이 중대한 순간에 경질된 것은 불안정한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미 해군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루스벨트함에 탑승한 승조원 5000여명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55명으로 전날보다 13% 늘어났다. 승조원 54%가 검사를 받았고, 1548명이 하선한 상태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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