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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총선 후 그려질 정치 곡선

중앙선데이 2020.04.04 00:28 680호 31면 지면보기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코로나19 영향으로 인한 향후 세계경제 전망이 다양하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교수 같은 이는 끝 모를 급전직하의 ‘I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벤 버냉키 미 연준의장 같은 사람은 짧은 침체 후 바로 반등하는 ‘V 곡선’을 예상한다. 극단적인 두 전망 사이에 침체가 좀 더 길게 이어진 뒤 서서히 회복하는 ‘U 곡선’도 있고, 하강한 경기가 장기침체로 이어지는 ‘L 곡선’도 나온다. 또 급속히 하강했다가 더딘 회복세를 보이는 ‘나이키 곡선’까지 등장한다.
 

급조된 위성 비례정당 목표인
조국 구하기와 윤석열 내몰기
경제 위기 속 더욱 가열될 것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이 중요

어쨌거나 한동안 세계경제가 얼어붙을 것은 분명한데, 버냉키 의장의 예상이 맞기를 바랄 뿐 경제 문외한인 내가 세계 경제를 내다보기란 역부족이다. 하지만 이런 시국에 총선을 맞는 한국 정치가 선거 후 어떨지는한눈에 알겠다. 불행하게도 최악의 경우인 ‘I 곡선’이다. 새로 구성될 때마다 ‘역대 최악’이라는 치욕적 기록을 손쉽게 경신해버리는 대한민국 국회지만 21대 국회는 그간의 최악이 무색할,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회가 될 공산이 크다. 정당들 색깔이 그렇고 후보들 면면이 그렇다.
 
이미 선거 전부터 악의 씨가 뿌려졌다. 집권당과 군소정당들이 야합해 선거 룰을 바꿨다. 범여권을 규합해 재집권하려는 여당 전략과 비례대표로 몸집을 키워보려는 군소정당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였다. 선거법 개정에서 소외됐던 제1야당은 틈새를 파고들어 ‘비례정당’이라는 묘수(?)를 생각해냈다. 집권당은 비상이 걸렸다. 꼼수라고 야당을 비난했었지만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허겁지겁 비례정당을 따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분업’이 이뤄지는 기대 밖 효과도 거뒀다. 또 하나의 비례정당을 덤으로 얻은 것이다. 이 당의 목표는 노골적이다. 조국 살리기다. 이 당에는 조국 자녀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청와대 비서관, 조국을 조광조에 비유한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당선 가능성 높은 상위 순번의 비례후보로 올라있다. 선거가 ‘조국 대 반(反)조국’ 프레임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 조국을 싫어하는 표도 얻으면서, 조국 지지자들의 표까지 따로 흡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당의 후보들은 총선 후 윤석열 검찰총장을 손보겠다고 공공연히 벼르고 있다.
 
선데이칼럼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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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맞춰터져 나와 이슈가 된 범죄 전력자들의 증언도 모두 한곳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국 살리기와 윤석열 내몰기다. 윤석열 장모와 측근 검사장이 타깃이 되고, 여권과 행정부가 공격에 가담한다. 총선 후 이 땅의 정치판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태섭 의원처럼 눈치 없이 조국을 비판하던 여당 내 인사들은 이미 제거된 상태니 거침이 있을 게 없다.
 
급조된 정당이 정치적 가치 추구보다 특정 인물 수호에 매달리고 있는 모양새는 2008년 총선에서 등장한 ‘친박연대’와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표가 분산돼 상대에게 어부지리를 안길 위험이 있는 지역구와, 조국과 거리를 두다 자칫 잃을 수 있는 전국의 친(親)조국 표를 오롯이 모아 담을 수 있는 비례대표가 같을 수 없다. 여당이 엄살을 떨고 있지만 크게 표정이 나쁘지 않은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비례정당 하나는 좀 줄겠지만 대신 다른 비례정당이 얻는 수를 더하면 결국 범여권은 야당 의석을 한두 개라도 빼앗아 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결국 합칠 테니 남는 장사다. ‘조국 비례당’의 창업주인 인물도 “문재인 대통령과 끝까지 갈 것”이라고 공언한다. 그가 말하는 대로 자기 당 후보 중 “김의겸은 문 대통령의 입이요, 최강욱은 문 대통령의 칼이며, 손혜원은 김정숙 여사의 친구고, 주진형은 20대 더불어민주당의 공약 입안자”니 가려야 갈 다른 곳도 없다. 의석 욕심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버리고 조국을 옹호했던 정의당만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총선 결과는 도로 합쳐진 여당의 조국 살리기와 윤석열 내몰기의 강도만 결정하게 될 것이다. 여당이 승리하면 그 강도가 커질 테고 크게 승리하면 더욱 거세질 것이다. 설령 패배한다 하더라도 계속될 것이다. 선거 때문에 미뤄뒀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처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개의치 않고 또다시 이념 없는 이념 대립이 반복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이유다. 그렇게 되면 버냉키 의장의 ‘V 곡선’ 예상이 맞는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초부터 치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할지 고민해보자는 말이다.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는 “재화마다 지배하는 나름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복지는 궁핍한 사람에게, 명예는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정치권력은 도덕성을 가진 사람에게, 직책은 적임자인 사람에게, 사치품은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신의 은총은 독실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찍으려는 사람이, 정당이 그런 원칙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가 못한 코로나 방역을 민간이 해냈듯, 정치권에 기대하기 어려운 경제 곡선을 유권자들이 조금이나마 끌어올리자는 얘기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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