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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같이 되살린 순정만화 읽던 시절

중앙선데이 2020.04.04 00:20 680호 21면 지면보기
안녕, 나의 순정

안녕, 나의 순정

안녕, 나의 순정
이영희 지음

 
“광맥을 찾아다니는 광부처럼 덕질할 대상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콘서트를 위해 조퇴 계획을 치밀히 짜고, 좋아하는 배우 ‘오빠’의 한밤 라디오 방송을 들은 다음 날은 친구들과 토론회를 열었다. 그런 인생 전체에 가장 짙은 영향을 미친 덕질이 있으니 바로 순정만화라고 한다. 저자가 책을 쓴 이유다.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던 순정만화 이야기가 잔뜩 등장한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으로 시작해 『아르미안의 네 딸들』 『걸스』 『점프트리 A+』 『프린세스』 『오디션』까지 14편. 같은 시기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면 모를 수가 없는 만화들이다.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수업 시간에 몰래 읽던 친구가 엄청난 반전에 놀라 “어떡해!”를 외쳐 선생님까지 깜짝 놀라는 일이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기원전 5세기 왕족부터 동시대의 대한민국 고등학생까지 등장하는 이 순정만화들의 책장을 넘기며 저자는 10대와 20대를 보냈다고 했다. 작품들의 스토리에 알맞은 옛 기억이 함께 등장한다. 가장 친한 친구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전학을 가고, 끼고 싶은 친구들 무리에 들어가지 못해 고민하고, 여고생에게 강요되던 여성다움을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이며 의아해하던 시절이다.
 
분명히 읽었던 만화인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십 년 덕질 공력이 만화의 자잘한 내용과 명대사를 깨알같이 복기해 독자의 기억까지 살려낸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과 감정을 들춰내 고백한다.
 
지금 순정만화를 불러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순정만화는 고유의 독창성, 고정관념에 대한 용감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다시 기려야 할 장르다. 또 어린 시절을 지나온 누구에게든 멋진 이야기들은 힘이 된다. 고민하고 움츠러들며 불안했던 시절에 만화로부터 받았던 위로를 독자들도 느끼길 원하며 순정을 소환한 책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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