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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렌지색 지붕이 빼곡한 언덕…아~포르투

중앙일보 2020.04.03 13: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39)

 
산티아고 포르투갈 루트 걷기 18일차가 되는 오늘, 드디어 포르투(Porto)에 입성한다. 나처럼 리스본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티아고 포르투갈 루트를 걷는 사람들 대다수는 포르투를 출발점으로 잡는다. 포르투에서 산티아고까지는 대서양을 끼고 걷는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코스로 유명하거니와 걷기 편한 보드워크가 잘 정비되어 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에 이르는 400km가량의 험난한 길을 피하고 2주 정도의 기간이면 완주할 수 있는 포르투-산티아고 코스가 일반적인 이유다. 리스본 출발 순례자들도 주문을 외우듯 ‘포르투’를 외쳤다. 포르투는 일종의 ‘고생 끝,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포르투의 도우루강이 대서양 하구로 이어지고 히베이라지구, 가이아지구를 보여주는 포르투의 대표적인 전경. [사진 박재희]

포르투의 도우루강이 대서양 하구로 이어지고 히베이라지구, 가이아지구를 보여주는 포르투의 대표적인 전경. [사진 박재희]

 
“오늘이 바로 그날인데 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포르투를 외치며 힘을 내던 조안이 아침에 걷기를 포기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비교적 짧은 거리 17km만 걸으면 되는 날이지만 며칠째 발목과 무릎 통증을 호소하던 조안은 택시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순례 중 탈것을 이용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꼼수라도 부리는 것 같아 마음의 부담이 크기 마련이지만 걸음마다 절뚝거리는 조안의 상태로는 더 이상은 무리였다. 산티아고까지 완주하려면 도시에서 며칠 쉬고 치료를 받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조안은 택시를 부르고 조안에게 보조를 맞춰주느라 천천히 걸어야 했던 페이지가 모처럼 자기 페이스에 맞춰 노르웨이의 백두대간 청년 타리아이와 함께 속도를 냈다. 나는 느림보 핀란드 그룹에 합세했다.
 
“포르투에 가면 일단 퍼지고 싶어. 와이너리 투어로만 이틀쯤 보낼 거야”, “난 맛있는 해산물로 하루에 다섯끼를 먹어주겠어”…. 포르투에서 어떻게 보내길 원하는지 각자 희망하는 대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걸었다. “포르투의 라틴어 이름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가 포르투갈(Portugal)의 유래가 된 거 알지? 리스본이 수도라고 해도 포르투야말로 포르투갈의 상징이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히는 렐루서점. 해리포터의 움직이는 계단에 영감을 주었다고해서 유명해져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꼽히는 렐루서점. 해리포터의 움직이는 계단에 영감을 주었다고해서 유명해져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포르투갈을 지극히 좋아하고 수개월 동안 구석구석 여행한 경험이 있는 투야는 포르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꼽았다. 포르투갈 건국의 도시 기미랑이스도 꼭 다녀와야 한다며 포르투에서 일주일도 부족하지만 순례를 이어가려면 너무 오래 관광객 모드가 되는 것은 피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포르투에서 무얼 제일 하고 싶냐고 물어왔다.
 
포르투를 구석구석 걸어서 여행하는 중에 쉽게 글레리구스 성당을마주치게된다.

포르투를 구석구석 걸어서 여행하는 중에 쉽게 글레리구스 성당을마주치게된다.

 
“난 포르투의 골목을 구석 구석 걸어보고 싶어.” 
 
영화 ‘포르토’를 본 후에 생긴 로망이었다. 미국 남자 제이크와 프랑스 여자 마티가 포르투에서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영화였다. 운명적 사랑에 개연성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관객이 공감할 새도 없이 급하게 격렬한 사랑에 빠지는 연인의 감정과 나는 불통했다.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거나 주인공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는데도 배경이 되는 도시에는 반해버렸다. 포르투에 가면 골목을 따라 구석구석 걷다가 길을 잃어보고 싶었다. 그들이 만나고, 헤매고, 걷는 도시의 도우루 강변, 히베이라 광장과 좁은 골목길의 계단에 놓인 쓸쓸한 낭만. 걷기 힘들어 죽기 직전이라면서도 포르투에 가서 제일 하고 싶은 것은 다시 골목을 헤매며 걷는 것이었다.
 
도우루강변. 히베이라 지구의 중앙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도우루강변. 히베이라 지구의 중앙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포르투의 오래된 언덕과 골목이 아름답다. 영화 포르토(Porto) 의 영감을 준 소재는 도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포르투의 오래된 언덕과 골목이 아름답다. 영화 포르토(Porto) 의 영감을 준 소재는 도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부드럽고 따스한 초가을의 오후를 걸었다. 해가 왼쪽 뺨을 비추기 시작할 무렵 피로감으로 다리를 멈춘 곳은 작은 공원이다. 모로 정원에서 지친 다리를 달랜 후 공원을 벗어날 때 끝이 물결모양으로 말리는 바람이 불면서 급작스럽게 눈앞의 풍경을 바꾸어 버렸다. 핑크빛으로 물드는 도우루강, 동루이1세 다리가 오른쪽에 있었고 케이블카는 노을을 반사하며 천천히 다가오는데 정면에 오렌지색 지붕들이 빼곡한 언덕이 내려다보인다. ‘아~ 포르투구나!’ 포르투가 꿈처럼, 꿈보다 더 꿈같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포르투가 내려다보인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다. 다른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깜짝 놀랐을 만큼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하아… 이건 정말 말이 안되는 거잖아!”
 
파리의 에펠탑처럼 랜드마크가 된 철골 아치형태의 동루이다리.

파리의 에펠탑처럼 랜드마크가 된 철골 아치형태의 동루이다리.

상벤투역의 아줄레주. 세계에서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히는 상벤투역사 안에는 약 2만개의 아줄레주 벽화로 장식되어있다.

상벤투역의 아줄레주. 세계에서가장 아름다운 역으로 꼽히는 상벤투역사 안에는 약 2만개의 아줄레주 벽화로 장식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상벤투 역을 통해 포르투로 오는 사람들은 광장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차근차근 도시의 하이라이트를 만난다. 남쪽에서 두 다리로 걸어 포르투에 들어가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숨 막히는 전경은 기습이었다. 강가 언덕을 가득 채운 연인들이 핑크빛 노을을 받고 누워있다. 영화 속 제이크와 마티처럼 사랑에 빠진 것이 분명한 연인들이다. 지친 순례자를 기습한 포르투의 오후 풍경을 한마디로 하자면 젊은 낭만이다. 포르투는 사랑의 도시이다. 나는 여기서 아픈 무릎을 달래고 이어질 순례를 준비하며 보낼 며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는데 갑자기 혼자인 것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포르투의 핑크빛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포르투의 핑크빛 노을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당신도 내가 할 말을 미리 알잖아. 우린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 모든 게 너무 자연스러워.” 
 
연인들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고 고백했다. 다가오지 않았던 그 사랑을 포르투에 와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여기선 그 말도 안 되는 급하고 격렬한 열정과 사랑이 말이 되는 것 같다고 되뇌며 핑크빛 노을 속에 앉아 있었다. 순해진 햇살이 서쪽 하늘로 모두 저물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 포르투를 바라보았다. 루이스 다리 위로 트램이 지나고 있었고 난 포르투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더 확실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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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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