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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내 몸이 아는 맛, 앉은뱅이밀을 소개합니다

중앙일보 2020.04.03 10:00

[더,오래] 강병욱의 우리 식재료 이야기(2)

세상에는 오만가지 식재료와 음식이 존재한다. 각 지역의 기후와 위치만큼 다양하며, 나름의 이야기와 삶을 담고 있다. 우리는 평소 별생각 없이 먹어왔던 것에 관해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전국 각지의 특산물서부터 잘 알려지지 않는 식재료, 사라져 가는 우리 음식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다. 〈편집자〉 

 
밀은 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식량 작물로 뽑힌다. 또한 밀은 쌀에 이어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먹는 곡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발 빠른 고도성장과 변해가는 사회 속에 자리에 앉아 편히 밥 한 상 먹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에 밥 1.5공기 미만으로 먹는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지금 글을 쓰는 내 옆에 있는 빵조각을 보더라도 크게 추가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럼 쌀을 대신할 대체 식량 작물은 무엇일까? 바로 밀가루 음식이다. 밥 대신 빵이나 간편한 국수, 특별한 날은 파스타를 먹으러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이렇게 밀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식량 작물로 변화해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밀을 98%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요즘엔 먹거리 건강을 위해 토종 밀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나라의 토종 밀인 ‘앉은뱅이 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토종 ‘앉은뱅이 밀’

기원전 300년 전부터 이미 우리와 함께했던 ‘앉은뱅이 밀’. 일반 밀보다 키가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는 한국토지농산 조사를 시행해 앉은뱅이 밀’을 일본으로 가져가 ‘농림 10호’라는 이름으로 개량에 성공했다. 그리고 앉은뱅이 밀의 우수성을 알아챈 미국 농학자 노만 볼로 그만은 다시 그 품종을 개량해 ‘소노라 64호’라는 육종으로 개량에 성공했다. 병충해에 약한 기존의 서양 밀보다 수확량이 60%나 증가해 인류 식량 증산에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세계가 인증한 우리의 밀은 1960~1970년만 해도 경남 서남부 지역인 진주, 함안, 사천, 고성, 남해에서 전통적으로 재배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밀 자급률은 15% 이상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당시의 황금 같은 시절은 사라졌다. 한국 밀보다 값싼 수입산 밀이 들어오면서 정부는 결국 밀 수매를 중단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가격과 물량에서 수입산 밀에 밀린 토종 밀은 빠른 속도로 우리의 곁에서 사라져갔다. 결국 1990년도에는 밀 자급률이 1% 밑으로 떨어지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났다. 
 
상황을 인지한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전국으로 펼쳤고, 토종 밀을 다시 개량해 명맥을 이어 가기 위해 많은 지역에서 노력하고 있다. 2000년 초 앉은뱅이 밀이 국제 슬로우푸드의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가 되는 성과를 올렸고, 2018년에는 앉은뱅이 밀로 만든 라면을 미국에 수출하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주었다.

 
일제 강점기 한국토지농산 조사를 시행해 ‘앉은뱅이 밀’을 일본으로 가져가 개량하여 ’농림 10호‘라는 이름으로 개량에 성공하였다. [사진 강병욱]

일제 강점기 한국토지농산 조사를 시행해 ‘앉은뱅이 밀’을 일본으로 가져가 개량하여 ’농림 10호‘라는 이름으로 개량에 성공하였다. [사진 강병욱]

 
그럼 앉은뱅이 밀은 수입 밀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우선 일반 밀은 흰색을 띠고 딱딱한 성질이 있지만, 앉은뱅이 밀은 붉은색을 띠며 껍질이 무른 특색이 있다. 실제로 압력을 가했을 때 일반 밀은 딱딱하게 잘 부서지지 않지만, 앉은뱅이 밀은 작은 압력에도 부서지는 것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 앉은뱅이 밀은 일반 밀보다 열량과 지방 그리고 단백질 함량이 낮다. 단백질 함량이 낮다는 것은 소화불량, 아토피 원인인 글루텐이 적다는 뜻이다. 빠른 식습관과 쌀 대신 밀을 주로 먹는 바쁜 현대인의 고질병인 소화 장애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앉은뱅이 밀이다.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온 앉은뱅이 밀은 일상 속에서 우리의 입맛을 어떻게 즐겁게 해주었을까. 앉은뱅이 밀은 병충해에 강하고 생육 기간이 짧아 과거 우리 농가의 대표적 겨울 작물이었다. 식량이 귀했던 시절 토종 밀로 수제비를 만들어 삶을 이어 갔다고 한다. 일반 밀보다 구수한 맛이 강한 앉은뱅이 밀은 빵이나 과자 같이 밀보다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보다는 밀 고유의 맛을 내는 요리에 가장 잘 어울린다. 또한 글루텐이 적게 포함된 토종 밀은 금강 밀 같은 국산 개량종보다도 우리 전통요리에 적합하다. 주로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빵을 만드는 주재료로 사용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책상에 앉아 바라본 창문에는 보슬비가 마치 밀이 흩날리는 모습으로 내리고 있었다. 앉은뱅이 밀로 무엇을 만들어볼까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비가 오는 날은 역시 전이 아니던가. 앉은뱅이 밀을 활용해 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곤드레를 활용해 고소한 맛을 더했다. 뜨거운 팬에 반죽이 된 밀을 올려 요리를 하면서 특이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밀을 사용했을 때보다 더욱 빨리 바삭바삭해졌다. 조금 시간을 들여 조리를 해보니 생각보다 밀이 타들어 가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소리로 전해지는 바삭함과 코로 느껴지는 고소한 향으로 기대감은 점점 높아져 갔다. 실제 앉은뱅이 밀로 만들어본 전은 일반 밀에서 느낄 수 있는 텁텁한 맛이 아닌 끊김 없이 목으로 넘어가는 기분 좋은 느낌이 느껴졌다. 이게 밀이 맞는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부감이 없었다. 우리 땅에서 만난 내 몸이 아는 맛. 그게 바로 우리의 앉은뱅이 밀이었다.

 
비가 오는 날은 역시 전이 아니던가? ’앉은뱅이 밀‘을 활용해서 전을 만들어보았다.

비가 오는 날은 역시 전이 아니던가? ’앉은뱅이 밀‘을 활용해서 전을 만들어보았다.

 
생각해보니 마트에서 쌀을 구매할 때는 쌀이 출하된 지역에 가장 많은 우선순위를 정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하지만 밀을 구매할 때는 어디의 밀인지 확인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인지하지 않고 강력분, 박력분 등 그 목적만 확인했다. 요리사지만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일을 해왔다는 것에 크게 반성했다. 1차 산업이 무너지고 농가를 멸시하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리치테이블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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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욱 강병욱 넘은봄 셰프 필진

[강병욱의 우리 식재료 이야기] 해외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근무를 하면서 느꼈던 한국 식재료의 우수함, 버려지는 식재료 등에 대한 아쉬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방면의 음식 공부를 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으며 직접 여러 농가를 다니며 B급 농작물과 한국의 사라져가는 식재료, 지역의 식재료에 대한 발굴과 기록, 음식을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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