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호 논설위원
광우병 때 “퇴진 반대, MB 도와야”
열혈 지지층에 포용과 협치 강조
여권은 그 정신 흉내는 내고 있나
지금 봐도 놀라웠던 건 노무현이 이명박을 도와주라 하는 대목이다. 그는 광우병 시위에 대해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 청와대에 살아봤는데 겁은 안 나고 기분은 나쁘고, 별 소득이 없다.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상이 잘못됐다고 정권 퇴진을 밀어붙이는 것은 헌정질서의 원칙에 맞지 않다. 멀리 보고 가자”며 “(이 대통령이) 일하도록 잘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뜩하지 않을 이명박에 대해 노무현이 포용과 협치를 얘기한 것이다. 그것도 핵심 지지층에게.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장면이다. 노무현은 지지층에게 손을 내밀어야 같이 갈 수 있다는 걸 강조했다.
지금은 어떤가. 조국 사태 이후 진영간 대결 구도가 극대화하고 타협이 실종된 정치는 참담하다. 총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친문 패권주의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단적으로 조국을 비판한 의원에게 ‘자객’이 달라붙고 끝내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게 그 예다. 더 가관인 건 열린민주당이다. 대놓고 친조국 인사들을 비례대표로 추천하며 강경 노선으로 지지층 끌기에 혈안이다. 강경 친문과 친조국 지지층만 본다. 전형적인 편 가르기다. 대표적 타깃은 윤석열(검찰총장)이다. 조국 직계 최강욱(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석열이 수사대상 1호가 될 수 있다”고 했고, 황희석(전 법무부 인권국장)은 윤석열이 포함된 ‘조국 쿠데타 살생부’를 흔들었다. 이들은 ‘채널A기자와 검사장 간 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윤석열을 향해 총공세를 폈다. 노 대통령이 이 장면들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노무현은 특유의 정치적 소신도 피력한다. “다 해보고 나서 딱 생각해 보니 대통령이 역사를 주도하는 것도 정치가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신껏 뜻을 세우는 길로 가도록 밀어주는 것은 시민이다. 국민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소신을 갖고 가는 정치인을 키울 수 있다. 뜻을 바로 세우는 정치인을 성공시켜 준다.” 이 대목에선 민주당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야 한다. ‘쓰레기’라 했던 위성정당에 들어가며 정의당을 배신했다. 의원 꿔주기를 “후안무치하다”고 욕하고 당 대표까지 고발해놓고 그 길 그대로 갔다. 뜻을 굽혔고 소신을 버렸다. 특히 선거제 개편은 노무현이 “권력의 반을 주고서라도 개편하고 싶다”고 한 사안인데 이를 누더기로 만들어놨으니….
노 대통령이 연설에서 정말 힘주어 말한 건 국회의 중요성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 있는 가지 수는 몇 가지 안된다. 구조적으로 대통령이 다 하는 게 아니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국회가 행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중요하다 했다.
여권은 의석수 늘리기에 정신이 팔려 누구를 국회로 보낼지에 대해 소홀했다. 더불어시민당은 공약을 제출했다 철회하고 다시 민주당 공약을 그대로 올려 비웃음을 샀다. 정의당까지 나서 “졸속 창당에 따른 예견된 참사”라 했다. 이런 당의 비례대표 후보의 자질이라면…. 열린민주당은 어떤가. 김의겸(전 청와대 대변인)은 ‘부동산 투기’ 논란이 걸림돌이 돼 민주당 공천을 못받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번복했다. 최강욱은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노무현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국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면면들이다.
총선이 12일 남았다. 누더기 선거법으로 사달이 났는데 민주당에선 아직 책임지겠다는 사람 하나 없다. 민주당은 물론 열린민주당까지 가세한 총선 난맥상에 대해 문 대통령도 아무런 말이 없다. 도대체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무현의 길이 아니라 제 길을 갈 거라면 계승이란 말로 더는 그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신용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