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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의 의학노트] 마스크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중앙일보 2020.04.03 00:22 종합 27면 지면보기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부상당한 부위를 절단한 병사들의 대부분이 수술 부위의 감염으로 사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헝가리 태생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가 고안한 손 소독법과 (1847년) 영국의 의사 조셉 리스터가 시작한 무균 수술법(1865년)이 도입되며 감염률이 극적으로 줄었다. 수술할 때 의료진이 사용하는 장갑이나 마스크 역시 같은 목적으로 고안됐다. 수술용 장갑은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윌리엄 할스테드 교수가 1889년 겨울에 지금은 타이어로 유명한 ‘굿이어’ 고무 회사에 주문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최초다. 그러나 마스크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다.
 

코로나19 사태 속 마스크는
내가 아닌 공동체를 위한 것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아닌
배려와 연대의 상징이어야

1895년 독일의 세균학자 카를 플뤼게 박사가 사람들 입 속에 다양한 병원균이 있다는 것을 밝힌 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입 안에 있는 균들이 재채기하거나 기침할 때, 심지어는 조용히 얘기할 때도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려졌다. 그러자 여러 의사들이 다양한 수술용 마스크를 고안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활약하던 유명한 외과 의사 폴 베르제 박사는 자신이 치아나 잇몸 염증으로 고생할 때 수술했던 환자들의 수술 부위가 덧나는 것을 몇 번 경험한 후 혹시 그 두 가지가 연관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심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수술 도중 흘러나온 자신의 침이 환자의 몸에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곧바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은 변화라도 갑론을박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수술용 마스크 착용의 지지자였던 영국의 로버트 캠벨 교수는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튀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재치 있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스크는 내가 아니라 남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의학노트 4/3

의학노트 4/3

코로나19 대유행 시대에 우리가 가장 선망하는 N95 마스크의 출발은 전혀 다르다. 정확한 이름은 ‘N95 호흡기’다. 마스크처럼 생겼는데도 굳이 그렇게 부르지 않는 이유는 사용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침방울 속의 균이나 바이러스를 남에게 퍼뜨리지 않기 위해 쓰는 마스크와는 달리, N95 호흡기의 역할은 공기 중에 떠 있는 아주 작은 입자까지 95% 이상 걸러내 호흡기 전염병을 가진 환자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는 것이다. 의료진이 N95 호흡기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환자들을 위해서다. 의료진이 건강해야 환자를 치료할 수 있고, 혹시 감염되면 수많은 환자에게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호흡기를 누구나 써도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연히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이 N95 호흡기는 제대로 착용하기가 어렵다. 오랫동안 사용해온 의료진조차도 적절하게 착용했는지를 평가하는 ‘핏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또 아주 답답하고 불편하다. 몇 시간씩 쓰고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잘못 착용했다는 뜻이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KF94 마스크는 훨씬 덜 불편하지만 원래 황사나 미세먼지 차단용으로 개발된 것이라 N95 호흡기만큼 믿음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N95 호흡기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의료진은 KF94 마스크라도 반드시 써야 한다. 그런데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병원들이 의료진 모두에게 값이 꽤나가는 KF94 마스크를 매일 하나씩 지급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대신 저렴한 치과용 마스크를 나눠주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국민은 K94 마스크를 워낙 좋아해 호흡기내과 진료실에서도 의사는 치과용 마스크를 쓰고 도리어 환자는 KF94 마스크를 쓰는 어색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어떤 경우엔 당황한 환자들이 마스크 한두 개를 슬며시 꺼내놓고 가기도 한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무증상 확진자도 있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도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있는 데는 온 국민이 애용하는 마스크가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제대로 착용하기도 힘든 의료인용 마스크가 아닌 간단한 마스크면 충분하다. 우리가 쓴 마스크는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아닌 배려와 연대의 상징이어야 한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교수·의학교육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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