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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의 생활건축] 춤 출 발코니가 없다

중앙일보 2020.04.03 00:17 종합 26면 지면보기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사람들이 집에 갇혔다. 세계 각국에서 앞다퉈 봉쇄 정책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세계인이 이동의 자유를 잃었다. 기약 없는 ‘집콕’ 시대다. 집 밖은 위험하고 안은 갑갑한 상황인데 어디선가 노래가 피어오른다. 그러다 떼창이 된다. ‘발코니 합창’이다.
 
사람들이 발코니로 나와 노래 부르며 서로를 위로하는 영상이 SNS에서 인기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한 공동주택 발코니에서 시작된 팝송 ‘아브라치아미(Abbracciami·안아주세요)’가 발코니를 따라 동네로 퍼진다. 또 어느 나라에서는 일렉트로닉 댄스뮤직(EDM)에 맞춰 춤추기도,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 속 지친 영혼의 대피처이자, 이웃과 연대하는 중간지대로 발코니가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발코니가 없어서다. 흔히 아파트에서 베란다라고 부르는 공간의 법적 명칭이 발코니다. 건축물의 외벽으로부터 돌출된 구조물이다. 베란다는 아래층이 더 넓어 그 위로 생기는 여유 공간을 일컫는다. 폭 1.5m 이내인 발코니는 확장이 합법화되어 있지만, 베란다 확장은 불법이다.
 
발코니에서 연주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민. [로이터=연합뉴스]

발코니에서 연주 중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민. [로이터=연합뉴스]

아파트 발코니는 대피공간이다. 고층 건물에서 화재와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바깥 공간에 면한 공간이 필요하다. 『아파트』의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발코니 확장이 불법이다. 피난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웃집과 발코니를 붙여 설치하게 하고, 일본에서는 발코니 바닥에 여닫이 장치를 만들기도 한다. 유사시에 옆집 또는 아랫집으로 대피할 수 있게 하는 용도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공간으로 쓴다. 2005년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면서 건설사들이 앞다퉈 확장형 상품을 내놨다. 20평대 아파트인데, 방 3개와 거실이 나란히 남향으로 있는 4베이 평면이 가능해졌다. 누워서 편히 자기도 힘든 방을 쭉 일자로 놓고, 발코니를 둘렀다.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으면 방으로 쓸 수 없을 정도다. 즉 발코니 확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발코니 확장으로 얻어지는 면적 덕에 요즘 새 아파트는 20평대가 옛 30평대랑 면적이 비슷하다.
 
마법처럼 실내 공간은 넓어졌지만 바람 쐬고 볕 쬘 공간은 잃었다. 그래서 옥탑 또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사람들이 몰린다. 최근 다가구 주택이나 오피스 빌딩의 경우 베란다나 발코니가 있는 공간의 월세가 훨씬 비싸게 나간단다. 발코니를 왜 꼭 확장해야 하는 걸까.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 볼 일이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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