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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총선 불복’마저 우려되는 선관위의 편파 행태

중앙일보 2020.04.02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논설위원

강찬호논설위원

4.15 총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의 편파 행태가 도를 넘고있다. 자칫하면 ‘총선 불복’시비에 휘말릴 우려마저 있다. 미래통합당 유력 후보인 오세훈·나경원은 친북·반일 단체 회원들이 유세를 방해하는 행위가 잇따르는데도 선관위가 팔짱만 끼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세훈측은 "김정은을 추종하는 한국 대학생 진보 연합 (대진연) 학생들이 자신을 ‘ㄷ’자로 둘러싸고 위협했는데도 경찰은 바라만 봤고, 선관위는 대진연 측에 ‘위법을 저지르지 말라’는 공문 한장 보낸 것 외엔 손을 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합당 대표 황교안과 원내대표 심재철도 지역구에서 비슷한 선거 방해 피해를 입고 있다.
 

노골적 야당 유세방해 소 닭 보듯
선관위원 구성, 기울어진 운동장
김기식 날린 김대년 “적군” 비토

참다못한 통합당 선대위는 지난달 25일 선관위를 항의 방문했다. 그런데 선관위는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며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가 전달한 항의 서한 받기를 거부했다. 선거를 앞두고 야당 수뇌부가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것은 최근 십수년간 전례가 없다. 선관위에 근무했던 인사는 “과거 선관위라면 즉각 경찰과 출동해 저지하고, 심하면 고발한다. 어쩌다 선관위가 이리됐나 부끄럽다”고 했다.
 
2017년 ‘5월 대선’이나 2018년 6월 여당이 압승한 지방선거 때만 해도 선관위는 신뢰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 총선 정국에선 해괴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유한국당이 위성비례정당을 만들면서 정한 ‘비례자유한국당’ 명칭 사용 불허다. 선관위 사무처는 헌법상 ‘정당 설립의 자유’에 따라 당명은 폭넓게 허용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선관위원 전체회의에서 ‘불가’로 뒤집혔다. “기성 정당과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당장 논란이 불붙었다. 2016년 지금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창당했을 때 이미 정당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민주당’ 이 반발했다. 당명의 요부(중요 부분)인 ‘민주당’이 똑같아 피해를 보게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선관위는 “유권자들이 민주당과 더불어민주당을 구별할 줄 안다”며 더불어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이 선례에 따르면 ‘비례 한국당’도 허용이 당연하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민주당)가 있지만 ‘비례한국당’은 한국당이 직접 작명하고 쓰기 원한 이름이니 피해자도 없다.
 
선관위가 이렇게 편파적인 행태를 보이는 건 위원회 구성부터 여당에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진보 5명, 보수 2명이다. 게다가 선관위의 투톱(위원장과 상임위원)이 모두 친여 성향 인사다. 특히 상임위원인 조해주씨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특보를 지낸 경력이 민주당 대선 백서에 명시(민주당은 착오였다고 주장)된 인물이다. 차관보급(1급)에서 퇴직한 조해주가 선관위 상근직 ‘일인자’이자 장관급인 상임위원에 오른것은 "선관위 내부를 잘 아는 ‘우리편’이 상임 위원을 맡으면 선관위를 쉽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란 여권의 판단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그가 상임위원이 된 후 선관위의 편파행태가 두드러지게 늘었다는 게 야당의 시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 선관위는 9명이 정원인 중앙선관위원이 7명밖에 없는 절름발이 체제란 점이다.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관위원이 2명이나 공석인 건 초유의 일이다. 이렇게 된 것은 민주당이 3월 임기가 만료된 선관위원 자리에 김대년 전 선관위 사무총장을 앉히기로 야당과 합의했다가 돌연 번복했기 때문이다. 김대년은 1988년부터 30년 넘게 선관위에서 근무하며 사전 투표 정착에 공을 세우는 등 공정한 일처리 능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공무원이다. 그는 선관위 사무총장이던 2018년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정치 후원금 ‘셀프 기부’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당시 선관위 사무처는 정권 실세였던 김기식의 행동이 ‘위법이 아니다’는 의견을 올렸다. 그러나 김대년은 즉각 회의를 소집해 “법과 판례에 따르면 셀프 기부는 위법”이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결국 선관위는 ‘위법’이라 결론 내렸고 김기식은 낙마했다.
 
여권 소식통은 “당초 문재인 정부는 사법에 조국, 경제에 김기식 ‘투톱’체제로 국정을 운영하려 했다. 그런데 김대년 때문에 김기식이 날아가며 첫 단추를 못 끼게 된 거다. 이게 굉장히 아팠다고 한다. 이런 김대년을 위원에 앉히면 선관위 장악에 방해가 될 것으로 보고 비토한 것”이라고 전했다.
 
선관위가 신뢰를 잃으면 선거에서 사소한 실수만 나와도 ‘불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2년·2017년 대선에서 선거관리에 아무 문제가 없었음에도 패배한 후보 측 지지자들이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불복 운동을 펼쳤다. 이번 총선은 유달리 진영 간 대립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치러진다. 이런 마당에 선관위가 편파적인 행태를 이어간다면 총선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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