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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ILO 긴급성명 "입항 거부된 선원들 인권 존중하라"

중앙일보 2020.04.01 11:18
미국 핵항공모함 루즈벨트호. 중앙포토

미국 핵항공모함 루즈벨트호. 중앙포토

핵항모 루즈벨트 함장 "지상에 내려 달라" 호소 

"승조원을 죽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미국 핵항공모함 루즈벨트함의 브렛 크로지어 함장이 "지상에 우리를 내려달라"는 긴급조난(SOS) 편지를 해군에 보냈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지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 항공모함에선 100여 명의 승조원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크로지어 함장은 "4000명이 넘는 젊은 군인을 그대로 두는 것은 신뢰를 깨는 행위"라며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다. 승조원을 죽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선박의 입항 거부로 승객·선원 위험 노출

이뿐이 아니다. 전 세계 상당수 국가가 크루즈선을 비롯한 선박의 입항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해 있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뒤 입항 거부는 확산하는 추세다. 이로 인해 선박 내 승객은 물론 선원들까지 바다 위를 표류하며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태평양을 표류 중인 크루즈선 잔담호에선 130여 명이 의심증상을 보이고, 4명이 숨졌지만 여전히 하선할 항구를 찾지 못한 채 바다를 떠다닌다. 인천항에 입항 예정이던 크루즈선도 줄줄이 입항이 취소됐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크루즈선 뿐 아니라 화물선 등 다른 선박의 선원들도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작업 중인 선원들. 국제노동기구(ILO)

작업 중인 선원들. 국제노동기구(ILO)

ILO "세계 무역의 90% 담당하는 선원 200만명 위험"

ILO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선원과 선주, 정부를 대표하는 '특별 ILO 3자 해사 위원회' 명의로 긴급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ILO는 이 성명에서 "세계 무역의 90%를 이동시키는 전 세계 해운과 이에 종사하는 200만명의 선원이 위험에 노출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선박의 입항을 거부하고, 선원들에게 마스크, 작업복, 기타 개인보호 장비를 제공하려 선박에 탑승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국가가 많아서"라고 했다.
 
ILO는 "필수 의료용품, 연료, 물, 식품, 예비 부품과 선박에 필요한 물품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회원국은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ILO는 "선원들은 (무역과 같은)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이 서비스를 계속 제공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엄과 존중으로 대하라"고 덧붙였다.
텅빈 부산항 국제크루즈터미널. 연합뉴스

텅빈 부산항 국제크루즈터미널. 연합뉴스

ILO "연료와 물품, 의료용품 원활하게 공급하라"

가이 라이더(Guy Ryder) ILO 사무총장은 "어려운 시기에 선원들이 코로나19로부터 적절히 보호되고 있는지,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필요에 따라 선박이 왕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인을 회원국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선원의 권리는 2006년 체결된 ILO의 해사노동협약(MLC)에 명시돼 있다. 고용 조건, 근로시간과 휴식시간, 본국 송환, 해안 휴가, 숙박시설, 건강 보호, 의료, 복지와 사회보장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선원은 12개월 이내에 교대토록 하는 등 최대 승무 기간도 제시돼 있다. 그러나 각국이 하선 제한이나 입국 금지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이 또한 이행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 협약은 96개 ILO 회원국이 비준했다. 비준국은 전 세계 상선 운송의 91%를 담당한다.

해수부 "해사협약 이행 어려움 많다" ILO에 대책 촉구

이에 앞서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17일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MLC 이행에 어려움이 많다. 선원 최대 근무 기간 등 비상상황에 대비한 ILO의 신속한 조치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ILO에 발송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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