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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항공사들의 ‘환불 불가 배 째라’ 백태, 뿔난 소비자는 집단행동

중앙일보 2020.04.01 07:00
항공사 환불 갑질 피해 사례
① 취소 수수료 59만원 물었어요 
“4월에 동유럽 여행을 준비했다가 포기했습니다. 카타르항공에 취소 문의를 했더니 취소 수수료를 내고 환불하거나 나중에 쓸 수 있는 바우처를 받으라네요. 광화문 사무실을 찾아가 항의했습니다. 상담 직원은 아무 권한이 없더군요. 결국 수수료 59만원(2인)을 물고 항공권을 취소했습니다.” 
 
② 여행사에서 샀으면 수수료 내래요 
“여행사를 통해 싱가포르 항공권을 샀습니다. 3월 초, 싱가포르 정부가 한국인 입국을 막았길래 3월 말로 예정된 여행을 포기하고 항공권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한데 취소 수수료를 내랍니다. 황당하게도 여행사를 거치지 않고 싱가포르항공 홈페이지에서 항공권을 산 지인은 무료로 환불을 해줬습니다.” 
 
③ 환불 안 되고 날짜 변경만 가능하대요 
“3월 말 발리 여행 계획을 접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한국인 입국을 막은 건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해외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라 했기에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에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환불은 아예 안 되고 날짜만 바꿀 수 있답니다.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데 난감합니다.” 
 
④ 날짜 변경도 차액 내래요 
“오는 7월로 계획했던 유럽 배낭여행을 내년으로 미루려고 합니다. 루프트한자독일항공에 항공권 환불을 요청했더니 무료 환불이 안 되니 차라리 올해 안에 다른 날짜로 바꾸라네요. 한데 새 일정의 항공권이 처음 산 항공권보다 비싸면 차액을 내랍니다. 더 저렴하면 차액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하고요.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나요?”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전 세계 항공사가 운항을 대폭 축소했다. 평소 빽빽히 차 있던 인천국제공항의 출도착 안내판이 텅 비어 있는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전 세계 항공사가 운항을 대폭 축소했다. 평소 빽빽히 차 있던 인천국제공항의 출도착 안내판이 텅 비어 있는 모습. [중앙포토]

코로나19 탓에 항공권 환불 대란이 일어났다. 앞서 열거한 것처럼 일부 항공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전 세계 항공사가 환불을 거부하거나 지연하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뾰족한 대책이 없어 더 문제다. 
 
환불 대란은 2월 말 본격화했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면서다. 항공사는 비행기 운항을 대폭 줄이거나 전면 중단했다. 현재 상당수 항공사가 4월까지 운항을 중단했거나 최소화한 상태다. 5월 이후도 알 수 없다. 소비자가 예약을 취소한 게 아니라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운항을 중단했으니 수수료 없이 환불해주는 게 타당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항공사 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 세계 항공업계는 패닉 상태에 있다. 급격한 매출 감소로 돈줄이 막혔다. 파산 위기에 몰려 국유화된 항공사가 있는가 하면, 승무원 5000명을 임시 해고한 항공사도 나왔다. 항공사가 환불 대신 1년 이내에 쓸 수 있는 대체 항공권을 주겠다고 우기는 까닭이다. 여러 외국 항공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는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현금을 쥐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더 많은 항공사가 고객 환불을 거부하고 여정 변경을 유도하거나 쿠폰 개념의 ‘크레딧’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항공사가 유례 없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국인 입국을 차단한 탓에 비행기를 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P=연합뉴스]

전 세계 항공사가 유례 없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국인 입국을 차단한 탓에 비행기를 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P=연합뉴스]

항공사 사정이 딱하다지만, 소비자는 항공사의 ‘배 째라’식 태도에 분통이 터진다. 수시로 바뀌는 환불 정책 탓에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 같은 일정을 예약한 소비자 중에도 원활히 환불을 받은 이가 있는가 하면, 막대한 수수료를 치른 이도 있다. 한 마디로 복불복이다.
 
애꿎은 여행사도 피해를 보고 있다.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을 구매한 고객의 취소 요청이 빗발치고 있어서다. 평소 같았으면 고객이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환불을 요청할 수 있지만, 상당수 항공사가 환불 절차를 복잡하게 바꿔놓았다. B여행사 관계자는 “여행업계 모두 어려운 상황인데 책임을 회피하는 항공사가 너무 얄밉다”고 말했다. 
 
결국 뿔난 소비자는 단체행동에 나섰다. 소비자원과 국토교통부에도 민원이 쏟아진다. 집단 소송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국토교통부 국제항공과 이호준 사무관은 “베트남항공, 싱가포르항공 등 소비자 피해를 야기한 항공사에 경고 메시지를 전해 개선을 끌어냈다”며 “계속 문제 항공사를 보면서 필요한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와 협력해 더 강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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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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