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코로나가 한국 경제에 준 기회

중앙일보 2020.04.01 00:27 종합 25면 지면보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얼마 전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이 신음하고 있을 때이니 대화는 자연스레 코로나19의 여파로 이어졌다.
 

전 세계에 시련 안겨준 코로나19
저성장 한국 기업에 오히려 기회
과감한 규제 완화로 희망 찾아야

“어렵죠. 매우 어렵죠. 갑자기 실적이 이렇게 곤두박질치는데 어렵지 않은 회사가 어디 있겠어요….” 회사 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한 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췄다. 다시 말을 이었다. “잠시 시간을 벌었으니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면 기회가 올 겁니다. 위기에는 항상 기회가 있잖아요.”
 
시간을 벌었다니? 그의 설명은 이랬다. 한국 기업이 온갖 노력을 해가며 기술력을 쌓아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놓을 위치가 되자 이 분야가 미래산업이라 판단한 중국이 행동에 나섰다. 중국 정부의 무차별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막아도 막아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중국 기업을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6·25전쟁 때 중국 공산군이 썼던) 인해전술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시장이 멈춰 서자 어느 정도 체력을 비축할 틈이 생겼다는 뜻이다.
 
서소문 포럼 4/1

서소문 포럼 4/1

경제전문가는 요즘 한국 기업이 처한 상황을 산악 마라톤에 비유한다. 산악 마라톤은 편평한 들판을 지나기도 하고 진흙길, 오솔길, 자갈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한참 앞서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을 쫓기 위해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뛰었다. 격차는 차츰차츰 줄었다. 예전엔 보이지도 않던 선두그룹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은 이내 바닥났고 길은 온통 진흙과 자갈투성이였다. 갈수록 지쳐갔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 뒤에 있던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중국 선수는 각종 중장비와 페이스메이커(정부 지원)를 이용해 성큼성큼 앞서나갔다. 중장비와 페이스메이커를 이미 다 써버려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는 한국으로선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라는 초대형 태풍이 불어닥쳤다. 마라톤 구간에 거대한 물줄기가 생겼고 대회는 잠시 중단됐다. 태풍이 지나가고 구간이 복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진맥진한 한국은 잠시 숨 돌릴 틈을 얻었다.
 
해방 이후 한국경제는 세계 경제학자의 연구사례가 될 정도로 극적인 반전을 거듭했다. 농지개혁, 민간기업 육성 등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던 1940~50년대,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기인 60~70년대, 민간 중심의 성장기인 80~90년대, 성장 속도가 줄어든 2000년대 등 변곡점이 여러 번 있었다. 98년 외환위기에서도 부도옹(不倒翁)처럼 일어났지만 그 후 한국 경제는 성장세가 확연히 꺾였다. 2000년 10%대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로 쪼그라들었고,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저성장, 분배 악화 등이 고착화하자 정부는 기업에 대한 규제를 통해 분배 문제를 완화하려 했다. 이 시기 이후 기업에 대한 규제가 급증한 이유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기업 규제는 더욱 강화됐다. 주52시간제, 최저임금제, 환경 관련법 등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 주류를 이뤘다. 지쳐가고 있는 마라토너에게 배낭을 메고 달리라고 한 꼴이었다. 더더욱 기업을 주눅 들게 한 건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초리였다. 친기업이라는 말은 반노동자와 동일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기업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역효과는 투자 감소로 나타났다. 기업이 정부 눈치를 보며 투자를 주저하니 투자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했다. 세계 경쟁자에 뒤처질 수밖에 없었고 경쟁력은 뚝뚝 떨어졌다. 이는 일자리 급감으로 이어졌다. 다급한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도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확산했다. 전 세계 공장이 잇따라 멈춰섰다. 직격탄을 맞은 국내 유통업체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항공사 직원의 80%가 쉰다.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가 위기 극복을 위해서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 각종 규제를 붙들고 요지부동이다.
 
코로나19는 세계에 시련을 안겼다. 과감한 규제 완화로 이 시련만 이겨낸다면 한국이 다시 달릴 기회가 온다. 현 정부에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진영 논리가 아니라 한국 경제만 보면 해결책이 보인다. 굳이 새로운 지원안을 마련할 필요도 없다. 기존 규제만 풀면 많은 게 풀린다. 이 기회를 놓치면 추락하는 일만 남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김창규 경제 디렉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