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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줄이자는 홍남기, 당·청 “선거 코앞인데” 압박

중앙일보 2020.04.01 00:04 종합 6면 지면보기
“아무리 나라 살림이 걱정된다 해도 선거 앞두고 국민이 다 죽어가는데 답답한 말씀만 하고 계십니다.”
 

일요일 삼청동 당·정·청서 격론
여당, 소득 하위80%까지 확대 주장
홍남기 “국가채무 늘어나 부담”
수용 안되자 “반대한 기록 남길 것”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지원금 지급 범위와 액수를 확정하기 위한 고위 당·정·청 협의회가 열린 자리였다. “지원금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부 측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더불어민주당이 2시간 가까이 맞섰다. ‘답답한 말씀’은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홍 부총리를 질타한 발언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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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지원금 지급 방안을 만들겠다며 한자리에 모였지만 당과 정부, 청와대의 입장이 제각각이었다. 홍 부총리는 나라 곳간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국가 채무와 재정 건전성을 신경 써야 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각 지역에서 터져 나오는 소상공인과 시민들의 절규와 17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염려했고, ‘돈 주고 욕먹는’ 어중간한 결론도 피해야 했다.
 
회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싸늘했다. 홍 부총리가 먼저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50%로 제한해야 한다. 지급 범위가 넓어질수록 국가 채무가 늘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지나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수용할 수 없다. 소득 하위 80%까지 지급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맞섰다.
 
이후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70%로 하되 50% 이하 구간에는 100만원을, 50~70% 구간에는 50만원을 주자”는 홍 부총리의 주장과 “균등 지급해야 한다. 지급 범위는 80%로 하고, 모든 재원은 100% 국고로 충당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조정식 의장과 윤호중 사무총장은 “소득에 따라 지급 금액을 달리할 경우 돈을 쓰고서도 국민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의 기 싸움은 앞서 당과 정부가 1주일 넘게 물밑 조율을 하고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팽팽한 대립은 말을 아끼던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이 당 의견에 힘을 싣고,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도 거들면서 기울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이 자리는 싸우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정리를 하기 위한 자리다. 다수가 민주당 의견에 동조하고 있으니 그쪽으로 뜻을 모으자”고 말했다. 다수 의견이 정리됐지만, 홍 부총리는 끝까지 “기록으로라도 (반대) 의견을 남기겠다”면서 뜻을 꺾었다.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기자들과의 차담회에서 “대체로 당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생계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정부는 앞으로 더 긴하게 돈을 쓸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재정 건전성을 쉽게 허물어선 안 된다며 매우 신중한 태도였다”고 설명했다.
 
총선이 약 2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민주당 입장에 힘을 실어줬다. ‘총선 승리를 통한 문재인 정부 후반기 안정적 국정운영’이라는 정치적 목표에 맞서기에는 재정적 명분의 힘이 달렸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 당에서 절박하게 호소했고, 이를 배려해 준 결과”라며 “지금까지 집권당의 협조로 정부 운영이 안정적이었던 만큼 당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진우·김기환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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