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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한항공 극약처방…외국인 파일럿 모두 조종간 놓는다

중앙일보 2020.03.31 17:18

퍼지는 항공사 무급휴직 사태

인천공항에 서 있는 대한항공 항공기. 연합뉴스

인천공항에 서 있는 대한항공 항공기. 연합뉴스

국내 최대 항공사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는 모든 외국인 파일럿(조종사·pilot)이 4월 1일부터 3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무급휴가를 떠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부진한 경영 실적을 일부 만회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한항공이 스스로 희망하는 일부 직원(연차미소진자·장기근속자)을 대상으로 단기 휴직을 실시한 적은 있지만, 특정 업종 근로자 전원을 강제로 쉬게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3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는 390명의 외국인 파일럿은 모두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의무적으로 휴가를 사용한다. 휴가 기간 월급은 지급하지 않는다. 이들 중 60여명은 이미 3월부터 무급으로 조종간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무급으로 휴가를 떠난 이들 60여명은 모두 자발적 신청자였지만, 4월부터는 전원 무급 휴가를 가야 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이다. 뉴스1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가 한산한 모습이다. 뉴스1

대한항공이 창사 이래 최초로 외국인 파일럿을 대상으로 장기간 무급휴가를 실시하자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대한항공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지금보다 경영 상황이 더 악화하면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급여 삭감과 순환 휴직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돌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순환 휴직은 시간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대한항공 임직원은 짝수달에 기본급의 100%를 상여급으로 지급한다. 때문에 홀수달에 휴직하는 것보다 짝수달에 휴직하면 상대적으로 임금을 덜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 때문에 이런 문제를 조율하면서 공평하게 모든 임직원이 골고루 기간을 나눠 휴직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 직원 순환휴직 소문에 뒤숭숭”

한진칼·대한항공 주주총회가 끝나고 난 이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9일 “뼈 깎는 자구노력”을 강조하자, 대한항공은 이런 방안을 포함한 다양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비상경영체제)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휴가 소진 독려, 유휴 부지 매각 등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자구 노력을 최대한 실시하면서 버티는 중”이라며 “전 직원 대상 급여 삭감과 순환 휴직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항공기정비고에서 여객기 기내 소독을 실시하는 대한항공. 사진 대한항공

인천국제공항 대한항공 항공기정비고에서 여객기 기내 소독을 실시하는 대한항공. 사진 대한항공

이처럼 대한항공이 외국인 파일럿 휴직을 시행하고 각종 자구책을 검토하는 건 고정 비용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다. 국내 항공사 역시 올해 상반기 기준 6조3000억원 안팎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한항공은 노선의 90%가량을 운휴·감편한 상황이다. 비행기가 날지 못하면 매출이 줄지만, 리스비(비행기 임차비용), 주기료(비행기를 세워놓는 데 드는 비용) 등 고정비는 꾸준히 빠져나간다. 따라서 항공사들은 인건비라도 줄여서 버티겠다는 자구안을 시행하고 있다.
 
앞서 대한항공은 이달 초 2년 차 이상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단기 희망 휴직을 받았다. 또 이달 중순에는 인턴 승무원을 포함한 모든 승무원을 대상으로 단기 휴직 신청을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전 직원 순환 휴직에 돌입하면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3만8000여명의 임직원 중 약 3만여명이 휴직을 했거나 휴직을 하게 된다. 항공 업종에 직접 종사하는 국내 근로자 80%가 일손을 놓게 된다는 뜻이다. 국내 항공사들의 상반기 매출 손실 추정치는 6조3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각국은 앞다퉈 자국 항공사 지원에 나섰다. 미국은 지난달 27일 항공 업종에 320억 달러(38조9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싱가포르 정부도 국부펀드(테마섹)가 105억 달러(13조원) 규모의 주식·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항공사들은 “한국 정부도 미국·싱가포르처럼 신속하게 항공업계를 지원하지 않으면 국내 항공산업이 공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여객가가 인천국제공항에 서 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여객가가 인천국제공항에 서 있다. 연합뉴스

전 세계 항공사 사실상 개점휴업

대한항공에 앞서 국내 다른 항공사는 이미 대대적인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당장 4월 1일부터 일반직·운항승무원·객실승무원·정비직 등 모든 직원이 최소 15일 이상의 무급휴직에 돌입한다. 이로 인해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월 급여의 절반을 못 받는다. 그간 급여 일부를 반납하고 있던 아시아나항공 임원은 다음 달 급여 반납 규모(50%→60%)를 확대한다.
 
진에어 객실승무원은 3월부터 순환 휴직 중이다. 에어서울·에어부산은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임원이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급여를 일부 반납하고 있다. 에어부산은 전 직원이 40일간 유급휴직, 에어서울은 직원의 90%가 무급휴직 중이다. 제주항공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유급휴직을 시행 중이며, 경영진은 임금의 30%를 반납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역시 주당 근무일을 4일로 단축하고 희망자에 한해 무급휴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항공사들의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서도 감축 및 운항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항공사들의 유럽 등 장거리 노선에서도 감축 및 운항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뉴스1

이스타항공의 경우 임금 체불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 2월 급여의 60%를 지급하지 못한 데 이어, 3월에도 급여를 전혀 지급하지 못했다. 유동성 부족으로 1∼2년 차 수습 부기장 80여명과 체결한 고용계약까지 해지를 통보한 상황이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24일부터 모든 국내·국제선 노선 운항을 완전히 중단했다. 티웨이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플라이강원도 모든 국제선 운항을 멈춘 상황이다.  
 
문희철·허정원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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