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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대신 일상생활 택했다···스웨덴의 '집단 면역' 실험

중앙일보 2020.03.31 17:02
 23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부의 식당에서 시민들이 맥주를 즐기는 모습.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중심부의 식당에서 시민들이 맥주를 즐기는 모습. [AP=연합뉴스]

 
“단기적으로는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사라질 질병이 아니다. 우리는 봉쇄가 아닌 완화(mitigation) 전략을 택했다” (스웨덴 공공보건청장)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휴교·외출 금지와 같은 봉쇄 정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이와 반대 노선을 택한 나라가 있다. 북유럽의 맹주, 스웨덴이다. 뉴욕타임즈(NYT) 등 외신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은 유럽 내 다른 국가와 달리 팬데믹 속에서도 일상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하고 직장인은 회사로 출근하며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는 스웨덴이 코로나 ‘무풍 지대’여서가 아니다. 스웨덴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4000명을 넘어섰으며 사망자도 100명 이상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학교 몇 달이고 닫을 순 없지 않냐"…집단 면역 '실험'

스웨덴은 ‘집단 면역’(herd immunity)을 기대하고 있다. 집단 면역이란, 바이러스가 완치돼 항체를 보유하거나 예방 백신을 맞은 집단 구성원의 상당수가 면역력을 갖게 된 상태를 말한다. 면역을 획득한 구성원이 늘어나면 바이러스가 옮겨 다닐 숙주를 찾기 어려워진다. 통상 인구의 50~70% 정도가 감염됐을 때 집단 면역이 생겼다고 본다. 백신은 1년 이내 개발이 힘들고, 바이러스의 확산은 막을 수 없으니, 그 사이에 바이러스 확산세를 최대한 느리게 만들어 인구 대다수가 코로나19에 면역력을 갖도록 한다는게 스웨덴 보건 당국의 계획이다. 현재 노인 등 취약 계층만 격리한 상태다.  
 
전염병 학자인 안데르스 텡넬 스웨덴 공공보건청장은 28일(현지시간) NYT에 한국과 주변국의 바이러스 억제 대책이나 ‘봉쇄 정책’을 지목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얼마나 이런 정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학교를 몇 달이고 계속 닫을 수는 없지 않냐”고도 덧붙였다. 적극적인 확산 저지대책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확산을 방치하는 ‘집단면역’ 방식이 장기전에 효과적이라는 게 스웨덴 보건당국의 정책 판단이다. 
 
만약 자녀를 맡길 학교가 문을 닫으면 의사와 간호사의 4분의 1은 일하기 어려워져 전체 의료서비스가 타격을 입는다. 게다가 결국 자녀를 맡길 곳이 없으면 조부모에게 양육을 부탁하게 돼 노인들이 오히려 더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웨덴 최대의 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뎃’이 20일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조치를 지지하는 국민은 52% 정도다.  
 
주요국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주요국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편 영국도 초기에 스웨덴과 비슷한 노선을 취했으나 런던 임페리얼칼리지가 “영국에서도 코로나19로 26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서둘러 방역 대책을 변경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3일(현지시간) 대국민 성명을 통해 “수퍼마켓과 약국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들은 즉시 문을 닫아야 한다”며 강경 대응책을 내놨다.
 

'플래트닝 더 커브'…확산 속도 늦춰야

결국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스웨덴 정부의 집단 면역 ‘실험’이 성공하려면, 확진자 숫자가 ‘얼마나 완만하게’ 조절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완화 전략의 일환인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를 주목하고 있다. 이는 2017년 미국 질병예방통제국(CDC) 리포트에 실린 연구 결과로,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감염 확산 속도를 최대한 늦춰 환자를 의료 자원 안에서 관리하고 단기간에 감염자가 급증하는 것을 조절해보려는 대책이다.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 모델.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보라색),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빗금)이다. [자료 미국 CDC]

플래트닝 더 커브(Flattening the Curve) 모델.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보라색),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빗금)이다. [자료 미국 CDC]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총 인구 수가 비슷하더라도 그 속도가 빠르면 의료 시스템에 마비가 와서 치명률이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프를 보면 하나는 단기간에 바이러스 발병률이 급증했음을 나타내는 가파른 봉우리고, 다른 하나는 오랜 기간 동안 점진적인 감염을 나타내는 완만한 곡선이다.
 
논문을 작성한 드류 해리스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학 연구원은 “감염병을 빨리 끝내는 것 만큼이나 속도를 늦추는 것도 중요하다”며 “커브를 평평하게 만들어야 (폭발적 감염을 막아야) 병원이나 백신 제조업체들이 압도당하지 않고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하다는 증명 없다는 점에서 취약" 

한편 집단 면역을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 전략이 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요아킴 로클뢰브 스웨덴 우메아대 감염병 학자는 29일 영국 일간지 더타임즈에 "집단 면역의 전제는 인구 대부분이 면역력을 가질 때까지 차분하게 감염이 진행된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과학적 증거는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며 "(정부 방침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가디언 또한 "인류 역사에서 어느 누구도 감염 그 자체를 허용하는 방식의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며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증명이 없다는 것이 최대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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