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천안함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서해수호의 날, 유족의 울분

중앙일보 2020.03.31 05:00
“천안함이 죄인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고 민평기 상사 형 민광기 씨 인터뷰
"서해수호의 날에 천안함은 없었다"
"북한 만행 덮어두고 평화 온다는 건 착각"

'천안함 46용사' 중 1명인 고 민평기 상사의 형 민광기(50) 씨가 지난 27일 '제5회 서해수호의 날'에 참석한 뒤 3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밝힌 소회다. 그는 당시 행사에 대해 “천안함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천안함 용사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2011년 3월 25일 '3.26 기관총' 기증식에서 해군 영주함에 설치된 '3.26 기관총'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해군은 윤여사의 기탁금 1억898만8000원으로 이들 K-6 기관총을 도입한 뒤 천안함 용사를 기리기 위해 천안함 폭침일인 3월 26일을 따 이를 '3·26 기관총'이라고 명명했다. [중앙포토]

천안함 용사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가 2011년 3월 25일 '3.26 기관총' 기증식에서 해군 영주함에 설치된 '3.26 기관총'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해군은 윤여사의 기탁금 1억898만8000원으로 이들 K-6 기관총을 도입한 뒤 천안함 용사를 기리기 위해 천안함 폭침일인 3월 26일을 따 이를 '3·26 기관총'이라고 명명했다. [중앙포토]

 
민 씨는 또 “천안함과 관련된 대통령 언급에 진정성이 있는지도 의심이 간다”라고도 했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대해서다. 
 
이날 민 씨 형제의 어머니 윤청자(76) 여사는 분향 중 문 대통령에게 다가가 “이게(천안함 폭침) 북한의 소행인지 누구의 소행인지 말씀 좀 해달라”고 묻고, 이 같은 답변을 끌어냈다. 민 씨는 “대통령이 부디 말을 넘어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참석한 서해수호의 날을 어떻게 평가하나.
"내 생각의 결론은 ‘이번 서해수호의 날에 천안함은 없었다’는 거다. 천안함 폭침에서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최원일 (당시) 함장이 본 행사 때 분향도, 헌화도 못 한 채 행사장 뒤편에 있는 모습을 보고 그런 확신이 들었다. 행사장에 온 다른 천안함 생존 장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죄인 취급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패잔병으로 여기는 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민 씨는 “이전 행사에선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유족들과 함께 천안함 생존 장병 대표도 함께 단상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27일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은 천안함 폭침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해군 중령과 장병들이 고인들을 참배하고 있다. 서해수호의 날(3월 넷째 금요일)은 제2연평해전(2002년6월29일)과 천안함 폭침(2010년3월26일),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11월23일) 등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과의 3대 교전 도중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27일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린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은 천안함 폭침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해군 중령과 장병들이 고인들을 참배하고 있다. 서해수호의 날(3월 넷째 금요일)은 제2연평해전(2002년6월29일)과 천안함 폭침(2010년3월26일),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11월23일) 등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과의 3대 교전 도중 전사한 장병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 측에서 왜 그랬다고 보나.
"천안함을 부담스러워 하는 거 아니겠나. 이번 정부는 지금껏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말하는 데 미온적이었다. 지난해 6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 가족 초청) 오찬 때 천안함 유족들이 ‘정부가 앞장서 천안함 음모론을 잠재워달라’, ‘전사자들의 한을 풀어달라’고 대통령에게 거듭 부탁을 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머니께서 대통령에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한 건 계획돼 있었나.
"전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지 그날 아침 행사 직전에 알았다. 어머니가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대통령에게 하소연할 생각을 했겠나. 여기엔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부하들의 명예를 지켜달라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고 본다."
 
전날(29일) 프로야구 선수 출신 방송인 강병규 씨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그런 윤 여사의 행동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들이댄 할머니를 보고 경악했다”며 “코로나바이러스를 대통령에게 옮길 수도 있는 비상 상황에 동정은 금물이다. 사람 좋다고 만만하게 대하면 죽는다는 거 보여줘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 일부 지지층에선 천안함 유족을 비난하기도 한다.
"(강 씨 말대로) 어머니가 불법이나 잘못을 저질렀나. 그러면 누구든 고발하라. 잘못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수용하겠다. 대통령에게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인지 밝혀달라고 유족이 문제 제기를 못 하는 게 말이 된다고 보나."
 
그나마 문 대통령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 건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그 말이 진심이라면 대통령이 이제라도 나서달라. 좌초 같은 황당한 설을 잠재우는 동시에 북한을 향해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이 서해수호의 날 추모사에서 언급한 ‘평화’에도 명분이 생긴다. 대통령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유족들은 그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윤청자 여사가 2017년 10월 천안함 46용사인 고 민평기 상사 흉상 제막식이 열린 민 상사 모교 충남 부여고등학교에서 아들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슬퍼하고 있다. [중앙포토]

윤청자 여사가 2017년 10월 천안함 46용사인 고 민평기 상사 흉상 제막식이 열린 민 상사 모교 충남 부여고등학교에서 아들의 흉상을 어루만지며 슬퍼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추도사에서 “가장 강한 안보가 평화”라며 “평화가 영웅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민 씨는 “과거 북한의 만행을 덮어둬야 평화가 온다는 건 착각”이라며 “그런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