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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눈 앞에 펼쳐지는 서사시 ‘마왕’

중앙일보 2020.03.31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오스트리아 빈 외곽에 자리한 중앙 묘원 32구역에는 음악가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은밀하고 감미로운 유혹, 마왕
절규에 귀 기울이지 않은 아버지
겸허·지혜가 위기 극복의 힘

모차르트의 허묘(虛墓) 양옆에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그 주변에 브람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 등 빈에서 명멸한 위대한 작곡가들이 잠들어 있기에 음악을 사랑하고 빈에 들를 기회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찾는 곳이다. 33년의 짧은 삶을 마친 후 누울 곳조차 찾지 못하고 사라진 모차르트의 묘비에 슬피 고개를 떨군 여인의 조각상이 놓여있다. 반면 그보다 짧은 31년의 삶을 산 슈베르트의 묘비에는 그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우고 있는 여신의 부조가, 이곳으로 이장(1888)되기 전까지 그가 묻혀있던 배링 묘원의 묘비에는 “음악은 여기에 소중한 보석을 묻었지만, 더 아름다운 희망이 남아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600여 곡의 주옥같은 가곡을 남기며 독일 낭만주의 가곡의 눈부신 서막을 연 슈베르트의 작품번호 1번(Op. 1)은 괴테의 서사시 ‘마왕(魔王, 1782)’에 의한 동명 가곡(1815)이다. 짧은 생 가운데 남긴 1000여 곡 중 328번째 곡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네 번의 개작을 거쳐 1821년 공식 출판할 때 상징적 무게감이 절대 가볍지 않은 작품번호 1번을 부여했을 만큼 이 곡은 그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보석’임에 틀림없다.  
 
반면 슈베르트의 열렬한 후원 모임 슈베르티아데의 회원이자 절친한 친구 슈파운(1788~1865)이 악보 출판을 앞두고 괴테에게 추천의 글을 부탁했을 때 정작 괴테는 아무런 언급 없이 이를 그냥 돌려보냈다. 이 곡이 통절 가곡(반복되는 선율이 없는 가곡)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대 대문호의 편협한 음악적 식견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괴테의 ‘마왕’은 그의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덴마크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요정들의 왕’ 이야기에 근거한 것으로서 그의 노래극(Singspiel) ‘고기 잡는 여인’의 한 부분으로 쓰인 것이다. 어찌 됐든 괴테의 ‘마왕’은 18세기 후반 독일 20, 30대 시인들의 낭만주의 문학사조 ‘질풍노도(Sturm und Drang)’가 사랑 노래에 빠져있을 때 홀로 자연과 마법을 읊은 그의 대표적 서사시로서 슈베르트뿐만 아니라 베토벤·뢰베·슈포어·체르니 등 수많은 작곡가에 의해 20여 곡의 가곡으로 재탄생했다. 그중 슈베르트의 그것이 압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피아노의 긴박한 말발굽 소리를 배경으로 선율적·조적·화성적 변화에 힘입어 표현이 극대화된 비극적 이야기가 귀와 가슴을 넘어 눈앞에 장대하게 펼쳐진다.
 
깊은 밤 어둠을 뚫고 급히 말을 달리는 아버지에게 안겨 어린 아들이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호소한다. 마왕이 보이지 않느냐고, 마왕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저 음침한 곳에 있는 마왕의 딸들이 보이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아들에게 그것은 엷은 안개고, 마른 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소리고, 잿빛 버드나무 가지를 잘못 본 것일 뿐이라며 오직 말을 달리는 데만 집중한다. 그 사이 마왕은 겁에 질린 아이를 참으로 끈질기게 유혹한다. 나와 함께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백사장에는 꽃이 만발하고 황금 옷이 많이 있다고, 너를 기다리고 있는 내 딸들이 네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즐거운 노래와 춤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그래도 따라나서지 않는 아이를 향해 마왕은 결국 돌변하여 “완력으로 데려가겠다”라며 소리친다. 그리고 아버지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그 가여운 아이가 저 무력한 아버지의 품속에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마왕이 어린아이를 유혹하는 수단은 상당히 직접적이다. 아이가 가장 좋아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나열한다. 절규하는 아이와 아이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반하여 마왕은 언제나 따뜻한 장조로 노래한다.  
 
슈베르트가 돌체(부드럽게)와 소토보체(속삭이듯이)로, 뢰베가 ‘은밀하게 속삭이며 유혹하듯이’라는 나타냄 말로 표현했듯이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이렇게 감미롭게 다가온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으며 무작정 말을 달린 끝에 결국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마는 아버지의 모습 또한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니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언제나 우리 국민 몫이다. 비록 ‘귀 기울이는 겸허함’과 ‘유혹을 이기는 지혜’가 부족할지라도 이름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해 달리는 말과 같은 ‘헌신’을 통해….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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