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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연희 놀이터 기획자 “작은 가게 살아야 골목도 산다”

중앙일보 2020.03.31 00:06 경제 6면 지면보기
서울의 매력있는 동네로 꼽히는 연남동·연희동에서 활동하는 도시 기획자 ‘어반플레이’의 홍주석 대표. 장진영 기자

서울의 매력있는 동네로 꼽히는 연남동·연희동에서 활동하는 도시 기획자 ‘어반플레이’의 홍주석 대표. 장진영 기자

신촌과 홍대는 서울 서쪽의 대표적인 대형 상권이다. 예술적 분위기가 넘치는 홍대 인근은 2000년대 초반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올랐고, 2010년대 초중반부터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이 시작됐다. 홍대 인근을 일명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었던 예술가와 창작자들이 임대료가 더 저렴한 상수동과 망원동, 연남동, 연희동 일대로 흘러든 배경이다.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
도시+놀이 결합한 회사이름처럼
지역문화 발굴해 동네 되살려내
창작자·소상공인 어울리는 공간
대자본 젠트리피케이션 막아야

연남동엔 경의선 숲길을 따라 유명 맛집과 개성 있는 공방이 들어섰다. 전통적 부촌 정도로 여겨졌던 연희동은 인기 카페로 북적이는 동네가 됐다. 낡은 구도심, 허름한 골목길을 놀이하듯 탐방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두 동네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놀이터다.
 
‘어반플레이’는 연남동과 연희동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회사다. 도시 문화 콘텐트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동네의 숨겨진 ‘맛집’과 ‘멋집’을 발굴해 알린다. 도시(urban)와 놀이(play)를 결합한 회사 이름처럼 지역의 문화 콘텐트를 발굴해 도시를 재생시킨다.
 
‘연희대공원’은 반려 동·식물을 키우는 도시인이 다양한 콘텐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사진 어반플레이]

‘연희대공원’은 반려 동·식물을 키우는 도시인이 다양한 콘텐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사진 어반플레이]

어반플레이 홍주석(37) 대표는 도시 문화 기획자이자 동네 브랜딩 전문가로 불린다. 한양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카이스트(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진학, 도시 문화 기획자의 길을 택했다. 2013년 도시 문화와 콘텐트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어 연남동의 반지하 작업실에 스타트업 ‘어반플레이’를 차렸다.
 
초반엔 동네 콘텐트 발굴에 관심이 있는 지자체나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지역 관련 이벤트를 만들어주는 일을 주로 했다. 2014년 공유숙박서비스 ‘에어비앤비’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 ‘숨은 연남 찾기’가 대표적이다. 연남동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10개의 공용 공간을 빌려 전시를 하고 공연과 플리마켓, 문화 체험 등의 이벤트를 기획했다.
 
연남동 일대 골목길에서 시작된 지역 재해석 및 기록 작업은 ‘아는 동네’ 시리즈로 이어졌고, 지자체·기업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쌓은 콘텐트를 묶어 온라인에서 ‘아는 동네’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는동네 아는연남』(사진) 『아는동네 아는을지로』 『아는동네 아는이태원』 등 서울 각 지역의 개성 있는 도시 문화를 담은 단행본을 펴내기도 했다.
 
2015년엔 ‘연희, 걷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네의 경쟁력 있는 공간을 알리자는 취지로 소상공인, 창작자들과 협업해 만든 마을 축제다. 소규모 갤러리들의 공용 공간을 오픈해 연계 전시를 마련하고, 연희동과 연남동을 하나의 커다란 백화점처럼 100개의 상점을 연계해 손님을 끄는 식이다.
 
지역 창작자들을 위한 라운지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연남장’. [사진 어반플레이]

지역 창작자들을 위한 라운지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연남장’. [사진 어반플레이]

2018년부터는 공간 만들기에 나섰다. 온라인 비즈니스 성행과 함께 오프라인은 ‘경험’을 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트렌드에 착안했다. 전시와 작업실, 공연장 등의 기능을 하는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을 필두로 창작자들의 공용 쇼룸 역할을 하는 ‘연남 방앗간’, 건축 관련 창작자들의 편집숍과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정음철물’,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기록상점’ 등을 만들었다. 최근엔 반려 동·식물을 키우는 도시인들을 위한 공간 ‘연희대공원’을 열었다. 공간을 만들고 기획하는 일은 어반플레이가, 이곳에 입주해서 콘텐트를 만드는 건 창작자들과 소상공인들이 한다. 사람들은 이 공간과 콘텐트를 소비하러 온다. 지난주 홍주석 대표를 연남장에서 만났다.
 
왜 연남동·연희동을 택했나.
“2013년 창업 당시, 문화 콘텐트 제작 회사들이 몰려 있던 홍대 주변은 비싸 연남동 반지하에 들어갔다. 지내보니 동네의 매력이 상당했다. 일단 콘텐트 생산자들이 많고, 식음료 업장도 젊은 층이 많이 들어와서 자기만의 브랜드와 레시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역을 지켜내는 힘인 다양성이 있고, 단독주택이 많은 지역이고 평지라 거닐기 좋다는 물리적인 장점도 있다.”
 
요즘엔 공간 사업을 주로 하는데.
“공간을 흔히 부동산 사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콘텐트 사업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물론 유료지만, 공간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서비스하는 개념이다. 같이 모여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모이게, 공간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준다.”
 
‘연남장’이나 ‘연남 방앗간’이 그런 곳인가.
“연남장은 지역 창작자들을 위한 라운지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아래층엔 전시나 공연을 열 수 있는 넓은 무대가 있고, 위층에는 창작자와 스타트업들이 입주해있다. 연남방앗간은 ‘참깨 라떼’가 맛있는 카페로 알려졌지만, 지역 브랜드들의 공용 쇼룸이다. 쇼룸을 갖고 싶지만 본인들 제품만으로 어려울 때,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반플레이

어반플레이

홍 대표는 “새벽에 늘 같은 자리에서 빵 냄새를 풍기는 빵집이 동네 주민에게 주는 안정감은 큰 가치를 지닌다”며 “하지만 온라인 활성화로 오프라인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몇 년 안에 오프라인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좋은 동네 콘텐트를 만드는 방법은.
“좋고 나쁨은 없다. 다만 다양해야 한다. 개인 브랜드가 다양해야 동네와 골목이 살아난다. 결국은 역시 사람이 중요한데, 조그만 사탕 가게를 해도 자기만의 것을 해야 한다. 사실 일본이나 유럽 등 문화적 감수성이 높은 나라는 소상공인이나 창작자들이 꽃피운 골목 문화, 지역 문화가 상당하다. 하지만 한국은 골목 하나가 뜨면 금세 대형 프렌차이즈 상점으로 뒤덮인다. 지금은 아이돌 키우듯 소상공인도 키워서 동네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다.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작은 상점들이 대형 자본에 짓밟히고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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