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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시선] PC방으로 가는 대학생들

중앙일보 2020.03.30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권혁주 논설위원

권혁주 논설위원

너무 순진했다. 신통방통한 정보기술(IT)이 다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그래서 대학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을 무릅쓰고 개강했다. ‘온라인 동영상 수업’이라는 솔루션을 들고서였다.
 

코로나19로 인한 동영상 수강
노트북PC 없고 통신비도 부담
초·중·고 원격수업은 괜찮을까

생각만큼 잘 돌아가지 않았다. 상당수 교수는 동영상 제작에 완전 초보였다. 찍고 보니 이상해 다시 찍기 일쑤였다. 스튜디오가 아니라서 촬영 중에 우당탕 퉁탕 잡음이 끼어드는 것도 예사였다. 찍고 망치고 또 찍고, 시간이 모자랐다. 주말도 반납하고 집에서 열심히 촬영하는데 택배 벨이 울린다. NG!
 
강의 동영상 만들었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실제 강의 시간에도 매달려야 했다. 실시간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기 위해서다. 준비에서 수업까지, 강의실에서 마이크 잡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훨씬 더 들었다. 교수들은 “곱절은 힘들다”고 툴툴거렸다.
 
막상 온라인 개강하자 다른 문제가 터졌다. 대학교 서버가 용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동영상은 툭하면 끊겼다. “혹시 안 보이거나 안 들리는 사람?” 교수 질문엔 침묵만 흘렀다. 이상이 전혀 없는 건지, 아니면 아무도 못 듣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대학을 향해, 또 교수들을 향해 비난이 쏟아졌다. “지금이 어느 땐데….”
 
갈수록 나아지고는 있다. 교수들은 조금씩 강의 동영상 만들기에 익숙해진다. 서버와 통신선 용량도 해결해 주겠다고 통신 회사가 나섰다. 그러나 정작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숨어 있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들을 더 괴롭힌다. 다닥다닥 침상이 붙은 요양병원 어르신들이 집단으로 코로나19에 걸렸다. 옮을까 걱정은 자가용보다 대중교통 출퇴근족들이 더 한다.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아 점심을 건너뛰는 이웃이 생겼다. 개학과 급식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이들은 배고픔을 참아야 하게 됐다.
 
코로나19는 대학 온라인 강의에서도 취약 계층을 할퀴었다. PC방으로 가는 대학생들이 있다. 대체로 멀리 집을 떠나 자취하는 학생들이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노트북PC를 장만하지 못했다. 사립대 지방 캠퍼스에 다니는 L(24)씨는 “PC방으로 등교해 온종일 보내는 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 없으면 잇몸’이니, 노트북 대신 휴대폰으로 동영상 강의 들으면 되지 않느냐고? 속 편한 소리다. 자취방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다. 동영상 데이터 요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아르바이트조차 끊겼다. 카페에서 5000원짜리 음료 주문하면 데이터 마음껏 쓸 수 있지 않으냐고? 대학생 강의는 적어도 하루 3~4시간이다. 그것도 띄엄띄엄. 눈치 보지 않으려면 하루에 음료 여러 잔이 필요하다. 그것도 매일매일. 아르바이트가 끊긴 마당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소득 격차가 낳은 ‘정보 격차(digital divide)’다.
 
생각다 못해 학생들은 PC방으로 갔다. 정부가 “가능한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곳에서 매일 몇 시간씩 보내게 됐다. 강의를 들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19 해결책’이라던 동영상 강의는 이렇게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PC방으로 몰아넣었다. 코로나19와 정보 격차가 합작해 만든 아이러니다.
 
4월 6일이 다가온다. 미루고 미뤘던 초·중·고 개학 예정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미성년 확진자가 600명을 넘었다. 지난 주말 시·도 교육감들은 국무총리와의 간담회에서 일제히 개학에 반대했다. 교육부는 대학처럼 온라인 개학을 생각한 모양이다. 지난 27일 ‘원격수업 운영 기준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나름 학생 가정의 스마트 기기 보유 현황을 파악했다. 약 13만 가정에 지원이 필요한데, 각급 학교 등이 빌려줄 수 있는 기기를 고려하면 2200대 정도가 모자란다고 한다.
 
과연 기기 2200대만 확보하면 만사 OK일까. 그렇지 않다. 데스크톱·노트북·태블릿을 다뤄보지 않았던 어린 초등학생들이 원격 수업을 무리 없이 잘 받을 수 있을까. 집에 인터넷은 연결됐나. 통신비 부담은 또 어찌하나. 학교가 빌려준다는 기기는 성능이 괜찮을까. 형제·자매가 동시에 수업을 들어야 하는 집에 1대만 주면 어찌해야 하나.
 
공짜라서 ‘의무 교육’이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의무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는 기회와 여건이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에서 원격 수업은 아직 의무 교육이라 불릴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초·중·고가 온라인 개학하기 전에 정부가 챙길 일이 넘친다. 제발 바라느니 4월 6일 이후에 터덜터덜 PC방으로 가는 어린 학생들 모습은 보지 않게 되기를.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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