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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천둥ㆍ바람소리 노래하는 북극 소녀의 슬픔

중앙일보 2020.03.29 05:00
캠브리지베이 항구에 배가 정박해 있다. 작은 항구마을이지만, 미국 동부와 북극을 이어주는 북서항로의 중간 지착지이기도 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캠브리지베이 항구에 배가 정박해 있다. 작은 항구마을이지만, 미국 동부와 북극을 이어주는 북서항로의 중간 지착지이기도 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⑮캐나다 캠브리지베이

 
‘오흠바 추크 오흠마 추크…’.

북위 69도, 캐나다 북쪽 끝 외딴 오지마을인 캠브리지베이 원주민 센터에서 조용하게 비트박스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원주민 소녀 둘이서 서로 손을 잡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마주보며 몸을 좌우로 흔든다. 리듬에 맞춰 뜻도 알 수 없고 글로도 표현하기도 어려운, 언뜻 듣기엔 신음소리 같은 노래가 점점 격정적으로 홀을 가득 채운다.
 
이 노래는 원주민 이누잇 사람들이 호흡과 성대를 이용하여 자연과 동물들이 내는 소리를 음악으로 담아낸 독특한 형식을 가진 ‘목 노래’(Throat Singing)라는 원주민 음악이다. 마주한 두 학생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숨소리와 의성어를 빈틈없이 주고 받으면서 퍼포먼스를 이어간다. 마지막에 이르자 환한 웃음과 포옹으로 마무리한다.
캠브리지베이. 캐나다 북부 북극권 지방인 누나부트주의 작은 마을이지만 미국 동부~북극권~베링해협으로 이어지는 북서항로로 들어가는 캐나다의 마지막 관문이다.

캠브리지베이. 캐나다 북부 북극권 지방인 누나부트주의 작은 마을이지만 미국 동부~북극권~베링해협으로 이어지는 북서항로로 들어가는 캐나다의 마지막 관문이다.

 

목 노래가 울려 퍼지는 북극마을 

 
사람의 소리인지 동물의 소리인지 자연의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오묘하다. 오랜 시간 동안 북극의 차갑고 어두운 공간을 채워온 원시적 형태의 비트박스다. 그 속에는 눈과 얼음ㆍ천둥ㆍ바람ㆍ동물과 사람이 내는 소리ㆍ비명이 담겨있다. 이곳 원주민들은 이렇게 오롯이 자신의 몸만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이 극한의 땅 북극에서 수천 년의 삶을 지켜왔다. 수년 전 북극이사회 옵저버 국가 대표 자격으로 인구 1500명에 불과한 이 마을을 처음 찾았을 때의 경험이다.
  
하지만 원주민 소녀들의 자부심 가득한 퍼포먼스의 이면도 느낄 수 있었다. 북극권 오지마을이긴 하지만, 그곳도 이젠 인터넷과 유투브가 있었다. 젊은 세대들은 유튜브를 통해 북극권 밖 세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신년맞이 불꽃축제 모습과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밝힌 화려한 조명, 아열대 지역 해변의 온화한 태양빛, 그리고 같은 시간 다른 세상에서 즐기는 눈을 현혹하는 문화와 놀이는 이곳 젊은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심리적 고통인 듯하다.

캠브리지베이의 레이다 기지. 냉전 시절이던 1950년대 미국이 이곳에 레이더기지가 세우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캠브리지베이의 레이다 기지. 냉전 시절이던 1950년대 미국이 이곳에 레이더기지가 세우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젊은이들

 
해외에서 온 손님들과 마을 어른들이 다함께 흥겹게 즐긴 전통적인 목 노래가 끝나자 또래의 다른 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 소녀는 긴 얘기 끝에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부모세대의 보존노력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자기들이 아직 갖지 못했고 앞으로 기회조차 잡기 힘들어 보이는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이내 어른들이 달래서 그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원주민 사회로서는 현대문명과 어쩔 수 없이 융합해가는 모순과 갈등의 시간임을 보여준다.
 
이방인인 필자의 눈에 신비하고 멋지게만 보이던 북극 해변마을의 풍광들이 차츰 익숙해지자, 비로소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극지역의 마을들은 대부분 동토층 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일년 내내 땅이 얼어 있다. 이 때문에 땅속 파이프로 연결되는 상ㆍ하수도는 엄두도 못 낸다. 짧은 여름철이 지나면 곧 파이프가 얼어 터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물을 실어 나르고 분뇨와 생활 오폐수를 싣고 가는 위생트럭이 운영되고 있다.

 
캠브리지베이 원주민센터에서 만난 소녀. 북극권 원주민 특유의 '목노래'를 불렀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캠브리지베이 원주민센터에서 만난 소녀. 북극권 원주민 특유의 '목노래'를 불렀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갑자기 100명이 넘는 외지인들이 모여들자 평소 1500여 명 사는 조그만 마을이 가진 서비스 역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외지인들의 물 소비량은 원주민들보다 다섯 배 이상 많아, 물이 금방 부족해지고 오폐수 처리에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자가 1주일간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도 이틀 만에 물이 동났다. 같이 간 동료는 머리에 비누칠을 한 채로 닦아내어야 했고, 다음날까지 물 공급이 안돼 결국 마을 원주민센터에 몰래 들어가 세수와 필요한 일을 처리해야했다. 제일 큰 문제는 이렇게 모은 쓰레기와 오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마을 바깥쪽 외진 곳에 묻거나 모아두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북극을 지키려고 시작한 일이 평화로운 마을의 환경을 더 오염시켰다는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미군기지가 세운 캐나다 원주민 마을

 
집을 짓거나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주변에 마을 건설에 필요한 건축자재나 중장비를 모두 수천㎞ 떨어진 곳에서 배로 운반해야 한다. 캐나다 정부가 북서항로(북극항로의 하나)와 북극과학활동의 거점으로 삼은 이곳 캠브리지베이에 야심 차게 건립하는 북극과학연구센터인 찰스(CHARS)기지 건설도 같은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건축에 필요한 자재는 몬트리올에서 가져와야 할 뿐만 아니라, 얼음이 얼지 않는 3~4개월 동안 그해 건설공정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공급되어야 하는 어려움을 기지건설 총괄책임자인 마틴 소장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8개 북극권 국가 중에서 캐나다는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북극계선(북위 66.5도) 내 관할 면적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찰스기지뿐만 아니라 인근 나니스빅 해군기지 건설, 공군 운송체계 현대화, 북극 및 원양 경비함선과 다목적 쇄빙선 건조, 북극해 대륙붕 조사 등을 통해 북극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한편 캐나다는 자국의 북극권 섬 사이를 지나는 북서항로를 내수(內水)로 선언하고 외국 선적의 통항을 엄격히 제한하는 조치를 함으로써 미국이 주장하는 국제항로로서의 지위에 반대하고 있다. 원주민말로 ‘이콰루툭티악’(좋은 낚시터라는 뜻)이라고 불리던 캠브리지베이는 1921년 공식적인 마을로 등록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냉전 시절 미국이 설치한 레이더기지가 완공된 1957년부터 그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다. 기지건설공사에 참가했던 원주민들이 그대로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기지 건설이 아이러니하게도 마을이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이후 이곳은 북서항로로 들어가는 캐나다의 마지막 관문으로 지정학적인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인구 1500명에 불과한 캠브리지베이의 유일한 슈퍼마켓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인구 1500명에 불과한 캠브리지베이의 유일한 슈퍼마켓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마지막에 얻은 감동, 아쉬움 그리고 희망.

 
회의가 끝난 마지막 날, 두 번의 놀라움을 경험했다. 하나는 마을회관에서 지역민들이 마련한 환송파티에 참석할 때였다. 원주민들의 화려한 전통패션쇼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다가 무심코 회관 내부 벽에 걸린 액자들을 보았다. 벽에 걸린 액자는 이 마을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초상화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초상화가 주인공들이 살아 있을 때 모습을 너무나 그대로 그렸다는 점이었다. 속칭‘뽀샵처리’가 얼마든지 가능했을 텐데 그분들이 가졌던 장애와 아픔까지 고스란히 초상화에 담은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렇게 해야 그 분들의 기억을 오래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린 이와 자손들이 가진 소중한 진정성이 그 어떤 화려한 미술기법보다도 깊은 감동을 남긴다.
 
또 하나는 이 북극마을 끝에서 놀랍게도 한국계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당시 캠브리지베이의 유일한 변호사로 활동하던 글로리아 송이란 분이다.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30대 초반의 나이에 북극 원주민들의 인권과 빈곤문제를 위해 일하는 그녀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웠다. 같은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캐나다 캠브리지베이의 원주민들은 이누이트답게 아시안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캐나다 캠브리지베이의 원주민들은 이누이트답게 아시안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캠브리지베이에서 내가 살던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중간기착지인 에드먼튼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완행버스처럼 같은 비행기가 세 곳의 공항을 들러야 했다. 공항이랄 것도 없는 비좁은 조립식 가건물에서 매번 꼬박 2~3시간씩 대기를 해야 했다.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원주민 소년소녀들이 공항을 통해 들어온 담배를 익숙하게 피우는 모습이 무척 마음 아팠다. 그럼에도 이 항공노선은 고립된 마을에 사는 이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또 내가 탔던 저 비행기가 이들이 바라는 대로 언젠가 타임스퀘어와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으로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1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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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