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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청춘을 바쳤는데…회사 나와 분노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2020.03.28 09:00

[더,오래] 박영재의 은퇴와 Jobs(66)

김선우(52)씨는 음료회사 마케팅 부서장으로 퇴직했다. 김씨에게 회사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인데, 당시에는 규모도 크지 않은 중소기업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한 동료와 비교하면 열등감도 있었지만, 규모가 작은 만큼 가족적인 분위기도 있었고, 함께 잘 해보자는 분위기도 충만했다.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김씨가 그 중심에 있다는 생각에 큰 자부심도 느꼈고, 은연중에 회사의 성장이 곧 김씨의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김씨에 대해 주변에서는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20세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했지만, 김씨는 “우리 회사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되면서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고 의욕적으로 출시한 신상품의 반응이 나빠지면서 결국 김씨도 원치 않게 퇴직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인 음료회사 마케팅 부서장으로 퇴직한 김씨(52). 자부심을 가지고 20대에서 40대까지 열정적으로 청춘을 바쳤지만,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원치 않게 퇴직하게 되었다. [사진 pxhere]

중소기업인 음료회사 마케팅 부서장으로 퇴직한 김씨(52). 자부심을 가지고 20대에서 40대까지 열정적으로 청춘을 바쳤지만,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원치 않게 퇴직하게 되었다. [사진 pxhere]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 현관을 나오는데 바람은 왜 그렇게 부는지. 찬바람을 맞는 김씨의 마음에는 20대에서 40대까지 인생 황금기의 청춘을 바친 회사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부르투스 너마저?”라고 외쳤던 줄리어스 시저가 느꼈을 배신감뿐이었다. 집에 들어가면서 아내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그저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만 들었다.
 
김씨는 집안에서만 칩거하고 있다. 항상 새벽에 일어나서 정신없이 출근하던 김씨에게는 아침에 아파트 1층에서 보이는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 모습이 그렇게 생경할 수 없었다. 이제 50대 초반인 김씨가 평일 엘리베이터에서 아파트 입주민과 마주치게 되면 왠지 모르게 루저가 된 거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퇴직 전과 비교해서 전화벨 울리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평소 뜸하던 친구로부터 “무슨 신상에 변동이 있느냐”는 전화가 왔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회사 이메일이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김씨 입장에서는 친구에게 퇴사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소문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친구의 전화도 받지 않게 된다.
 
김씨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그때 내가 이렇게 그 일을 처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회사에 남아있는 조상무는 능력도 없으면서 내 실적만 가로챘고, 그렇게 윗사람에게 아부만 하던 사람인데”…. 김씨가 근무하던 회사에는 능력은 없고 아첨만 잘하는 사람만 남아있는 것 같았고, 그들에 대한 미운 마음만 생겼다. 어느 날 김씨가 자신을 돌아보니 혼자 외톨이가 돼 다른 사람만 원망하는 오십 대 중늙은이의 모습만 남아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취업도 결혼도 커다란 변화다. 퇴직도 삶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변화이면서 또 한 번은 꼭 거쳐야 하는 변화다. 하지만 퇴직이라는 변화는 우리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이 퇴직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끼는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로,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심장병·위궤양·고혈압 따위의 신체적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불면증·신경증·우울증 따위의 심리적 부적응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다들 스트레스를 두려워한다. 김씨의 경우는 퇴직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음에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반퇴세대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지난 2월 고용노동부에서는 이직예정 노동자에게 재취업지원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고령자 고용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5월 1일부터는 1000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1년 이상 재직한 50세 이상 노동자가 정년, 희망퇴직 등 비자발적인 사유로 이직하는 경우 생애설계 등 진로설계와 상담, 직업 훈련, 취업 알선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많은 직장인이 퇴직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거나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생애경력설계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 pixabay]

많은 직장인이 퇴직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거나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생애경력설계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 pixabay]

 
이는 퇴직예정자가 심리적인 안정과 퇴직 후 진로에 대한 대안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대상기업이 1000인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상기업이 900여개에 불과하고, 수혜자가 4만 명 정도로 극히 일부만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법 시행 초기이니 대상 기업을 더욱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무화 대상 기업에서 제외된 중소기업 노동자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운영하는 ‘생애경력설계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0세 이상 재직자와 구직자를 대상으로 기대여명을 고려해 생애 경력을 미리 설계하고 인생 후반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을 통해 신청하거나 각 지역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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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박영재 한국은퇴생활연구소 대표 필진

[박영재의 은퇴와 Jobs] 잘나가는 광고인이었다가 IMF때 35세에 강제로 잘려 일찌감치 백수생활을 경험했다. 이른 나이에 험한 꼴을 당한 뒤 월급쟁이에 염증을 느끼고 PC방 창업, 보험설계사 등 자영업 세계를 전전했다. 지금은 저술과 강의를 통해 은퇴의 노하우와 정보를 제공한다. 좋아하는, 평생 할 수 있는 일, 평생 현역으로 사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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