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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멈춰야 보이는 올림픽

중앙선데이 2020.03.28 00:24 679호 34면 지면보기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2020 도쿄 올림픽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개막식(7월 24일)을 넉 달 앞두고서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는 일본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두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124년 근대 올림픽 역사에서 대회가 연기되는 건 처음이다.
 

도쿄올림픽 연기, 당연해도 아픔은 있어
변질·타락한 올림픽 정신 성찰 계기 돼야

일본 열도에는 당혹과 침통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 1년 연기에 따른 경제 손실이 최대 7000억엔(약 7조8000억원)일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돈도 돈이지만 이번 올림픽을 통해 동일본대지진(2011년)의 상흔을 씻고 ‘부흥하는 일본’ ‘도쿄의 도시 재창조’를 야심 차게 기획했던 판이 헝클어진 게 더 아플 것 같다. 지난해 12월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담당 장관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이번 대회는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회복되어 가는 일본의 부흥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했다.
 
국내 반응은 “당연하다” “잘 됐다” 일색이다. 방사능 유출 문제를 덮고 가려 했던 일본,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이 탄 크루즈선의 입항을 막았던 일본이 사필귀정의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1년 연기가 아니라 아예 대회를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가대표 훈련원인 진천선수촌에도 먹구름이 들이닥쳤다. D-100을 앞두고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통 속에 자신을 연단하던 선수들은 맥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이번 주말까지 선수들을 다 소속팀으로 돌려보낸다. 선수촌은 3주간 문을 닫고 청소와 방역, 수리 등을 한다.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극한의 훈련을 견뎌 왔던 선수들이 허탈감을 이기지 못해 일탈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신 촌장은 “올림픽은 지구촌 모든 스포츠 선수에게 꿈이다. 이 무대를 위해 인생을 바쳐 극기하고 기량을 쌓는다. 솔직히 올림픽 입상으로 큰 부(富)가 생기거나 인생 역전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올림픽은 이들에게 명예와 자부심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장애인체육회 훈련원의 공기는 더 무겁다. 정진완 훈련원장은 “지난 한 달간 선수와 직원들이 외출·외박을 못 하고 거의 자가격리 상태에서 훈련에 전념해 왔다. 우리도 다음 주에 선수들을 다 내보낸다”고 말했다. 장애인 선수들에게 패럴림픽은 올림픽보다 훨씬 더 절박한 외줄이다. 운동선수 외 다른 직업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 패럴림픽 메달과 연금(올림픽 연금 액수와 동일, 최대 월 100만원)의 기회가 날아가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정 원장은 “장애인 대표팀 지도자와 선수 다수는 월급제가 아니라 수당제로 급여를 받는다. 훈련과 대회가 없으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최저생활안전자금을 장애인스포츠에도 지원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최근 전 세계 스포츠 선수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올림픽 취소는 206개 각국 올림픽위원회와 IOC 난민올림픽팀에서 훈련하고 있는 1만1000명의 올림픽 선수들과 패럴림픽 선수들을 비롯해 그들을 지원하는 코치, 팀 닥터, 임원, 훈련 파트너, 친구들 및 가족 모두의 올림픽 꿈을 짓밟는 것입니다.’
 
올림픽은 다시 열려야 한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지구에서 가장 강하고 빠르고 힘센 사람을 뽑는 경연장’으로서 본원적 가치가 있다. 온 세상 모든 분야로 퍼져나가는 스포츠 생태계의 꼭짓점에 올림픽이 있다. 그러나 이쯤에서 성찰해야 할 것이 있다. 올림픽이 국가와 체제·이념의 선전 도구로서, 상업 자본의 홍보 무대로서, IOC를 포함한 ‘스포츠 귀족’의 놀이터로서 얼마나 많이 변질되고 타락했는가를. 올림픽 연기는 올림픽을 바로 세우기 위한 잠시의 멈춤이어야 한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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