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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는 현대판 위리안치"…불안·비난 대신 긍정·격려가 백신

중앙선데이 2020.03.28 00:20 679호 10면 지면보기
‘… 가시 울타리 속에서 봄을 만나니 심사가 더욱 간절하거니와 ….’

“코로나19에 갇히느니 스스로 가두자”
SNS에 조선시대 형벌 ‘위리안치’ 거론

추사 김정희, 고독 속 '세한도' 남기고
서포 김만중도 '사씨남정기' 쓰며 극복

불만·외로움 털고 긍정 마인드 가져야
독서·글쓰기·스트레칭·햇볕쬐기 등 좋아

갈암 이현일(1627~1704)이 함경도로 유배된 뒤 쓴 편지의 일부다. 그는 인현왕후 폐비와 관련,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숙종은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내렸다. 탱자나무를 집 주위에 촘촘히 둘러 외부와 차단하는 형벌이다. 죗값은 외로움과 불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조선 시대의 형벌인 위리안치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자가격리·외출자제 강화 방침이 내려졌다. 기업은 재택근무·무급휴직을 늘리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매출감소에 따른 막막함, 시민들은 감염 불안감에 갇힌 신세가 됐다.
위리안치는 탱자나무를 집 주위에 둘러, 유배된 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사진=남해유배문학관

위리안치는 탱자나무를 집 주위에 둘러, 유배된 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사진=남해유배문학관

온라인상에는 ‘현대판 위리안치. 코로나 물러가라(인스타그램)’ ‘코로나19 조심하세요. 파이팅, 파이팅. 저는 셀프 위리안치 중입니다(트위터)’ ‘갇히느니 스스로 가두자. 안으로 침잠하자. 자발적 위리안치(페이스북)’ 등의 메시지가 올라와 있다. 과거의 위리안치처럼 갇힌 신세지만 이를 긍정적으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런 내용도 있다. ‘인간 존엄의 한계…개인적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의 위리안치(페이스북)’ ‘집콕을 하니 하루가 참 길어졌다. 아내와 신경전도 잦다(블로그).’ 해외 교민 중 한명은 자신의 블로그에 ‘미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주 정부로부터 위리안치 명령 같은 걸 받는 지경…강제력이 내재된 ORDER(지시)’라고 올리기도 했다.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학예연구사는 “위리안치는 극한의 형벌”이라며 “조선 시대 이미 유배된 정적을 몰아붙이기 위해 왕에게 위리안치를 건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치는 거주를 제한하는 유배형이다. 왕족이나 고위관리에게 적용했다. 죄의 경중에 따라 고향에 두는 본향(本鄕)안치, 먼 변방에 두는 극변(極邊)안치, 섬에 두는 절도(絶島)안치, 위리안치 등이 있다. 이 중 위리안치는 가장 엄했다. ‘산 자의 무덤’이라고도 불렸다.
 
영업 중 확진자와 접촉해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A씨는 “답답하고 불편해서 무덤이 따로 없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에서 귀국한 뒤 자가격리를 했던 직장인 B씨는 “집에 있으니 스트레스가 쌓여 가족들과 다툼이 잦았다”고 말했다.
긍정은 코로나19의 백신이다. 자가격리 중인 벨기에 브뤼셀의 시민들이 지난 19일 소중한 물건을 들어 보이며 웃음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긍정은 코로나19의 백신이다. 자가격리 중인 벨기에 브뤼셀의 시민들이 지난 19일 소중한 물건을 들어 보이며 웃음 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코로나19 위험 인식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71.5%는 자신이 격리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27.9%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응답했다. 또 자가격리가 연상되는 이미지는 ‘외출금지’가 20.2%, ‘불안·두려움·무서움·공포’가 15.3%, ‘감금·구속·봉쇄’ 등이 10%였다.
 
전문가들은 부정적 감정을 털어버리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은 “불안·비난·혐오 같은 부정적 감정은 바이러스만큼이나 전염력이 높아, 결국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면서 “확진자·격리자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치료와 격리를 끝내고 돌아온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불안과 불만이 쌓이면서 예민해지거나 코로나 블루라 부를 정도로 우울해지는데, 병이 아니라 정상 반응”이라며 “자칫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지면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편지 쓰기와 독서를 통한 마음 다독이기, 스트레칭 같은 실내운동과 햇볕을 쬐며 걷는 야외활동 등의 몸 추스르기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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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는 55세 때 제주도 대정으로 유배된 뒤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에 답하는 미증유의 명작 세한도를 남겼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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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극한의 위리안치 상태에서도 마음을 다잡으며 예술과 문학으로 만개한 이들도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군신을 이간시켰다는 죄로 8년간 제주에 위리안치됐다. 박용범 제주 추사관 학예연구사는 “제주는 한양과 가장 먼 곳이라 정치범을 유배 보낸 절해고도인데, 헌종의 미움을 단단히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추사는 이곳에서 추사체를 완성했고 걸작 ‘세한도’를 탄생시켰다. 박 연구사는 “세한도에서 드러나는 공허함은 위리안치 상태의 외로움을 달랜 흔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위리안치와 지금의 ‘코로나 위리안치’는 죄와 벌의 측면에서 보면 차이가 있지만, 몸과 마음의 격리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위리안치는 아니지만, 전남 강진 등지에서 18년간 유배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경세유표』를 썼다. 그의 형 손암 정약전(1758~1816)은 흑산도에서 18년간 유배 중에 『현산어보(자산어보)』를 완성했다. 
다산이 저술한 목민심서.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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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전남 신안군 흑산도 '사촌서당'.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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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을 반대하다 숙종의 노여움을 사 남해 노도로 위리안치된 서포 김만중(1637~1692)은 그곳에서 소설 『사씨남정기』를 남겼다. 김연희 남해 유배문학관 학예연구사는 “서포는 한양에서 멀어진 심리적 박탈감 속에서도 문학적 발산을 한 것”이라며 “유배자들은 한양에 복귀할 때의 구상도 종종 드러내는데, 현재의 우리가 코로나19 이후 어떻게 삶을 이어갈지 고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페이스북 계정에는 ‘도래할 모든 질환과 어떻게 공존할지, 위리안치 기간 모색해야지’라는 내용이 올라와 있다.

서포 김만중이 위리안치 중 쓴 '사씨남정기'.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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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속 불안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에게 현재 상황을 털어놓는 것 자체만으로 치유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이훈 한양대 관광경영학부 교수는 “접촉과 활동이 제한되는 현재의 국면에서 시민들은 과거의 위리안치를 소급하며 역설적으로 불안감을 달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기업들도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달래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독서플랫폼 ‘밀리의서재’는 자가격리자에 2개월 무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업체 ‘왓챠플레이’도 격리 기간 중 해당 플랫폼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확·찐·자’가 되지 않기 위한 '홈트(홈트레이닝)' 동영상도 인기다. 삼성·LG는 자가격리·재택근무 임직원에게 격려 메시지와 물품을 전달했다.
 
기사 첫머리에서 언급한 갈암 이현일의 편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다만 옛사람이 말한 ‘만나는 데 따라 편안하다’는 말과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을 갖고 스스로 힘쓸 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내자는 뜻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수주관규록』을 남겼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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