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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위치 추적, 어기면 5년 감옥 "러시아, 소련때보다 지독"

중앙일보 2020.03.27 05: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가운데,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21세기판 빅브라더'에 가까운 강력한 사회 통제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러시아다.  
마스크를 쓴 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근처를 걷고 있는 젊은이들. [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 광장 근처를 걷고 있는 젊은이들.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당국이 얼굴 인식 카메라를 동원하고, 의무 격리를 어긴 이에게 최대 5년 형을 선고하는 엄격한 조처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가격리 어기면 감옥서 5년…당국 "5년도 충분치 않다"    

WP는 러시아 현지 언론을 인용, 사흘간 스페인에서 여행하고 돌아온 러시아 의사 이리나 산니코바가 14일간의 의무 격리 기간을 지키지 않아 당국에 붙잡혔다고 전했다. 러시아 사법 당국은 산니코바를 생명에 위협을 끼친 혐의로 기소했다.  
 
격리 기간에 평소대로 대학 출강을 다니던 산니코바 때문에 1200여 명이 신종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이들 중 최소 11명은 신종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만일 이들 중 한 명이라도 치명적인 상황에 이른다면, 산니코바는 감옥에서 5년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 러시아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창 너머로 신종 코로나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창 너머로 신종 코로나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당국은 5년 형도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23일 "의무 자가 격리를 어기는 사람을 위해 더 강력한 처벌을 도입하라"고 정부 부처에 주문했다.  
 

얼굴 인식 카메라 동선 추적에 경찰 잠입까지

러시아는 이미 코로나 확산을 막는단 명분으로 자가 격리자들의 얼굴을 인식해 추적하는 기술도 도입했다. 휴대폰 지리 정보를 이용한 위치 모니터링 기술도 정부 차원에서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국경 봉쇄 이전에 중국에서 입국한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경찰과 의사들이 호텔, 학교 기숙사, 아파트 등지에 잠입해 있다"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소뱌닌 시장은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잠입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조치"라며 "실제로 중국에서 온 학생이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가 감시 카메라에 걸리기도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주립대 안에 있는 식물원에서 직원이 의료 장비를 착용한 채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주립대 안에 있는 식물원에서 직원이 의료 장비를 착용한 채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WP는 이런 조치를 소련 시기의 "숨 막히는 감시"에 비유했다. WP는 이 보도에서 "소비에트 시기, 규율은 숨이 막힐 정도였지만 사람들은 곧 적응 방식을 찾았다"며 "당시엔 '금지된 것이더라도 정말 원하는 것이면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전했다. 지금이 예전보다 더 감시가 삼엄하다는 뜻이다. 
 
WP는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부 당국이 정치적 반대파를 감시하는 데 쓰던 '감시 장치'를 이젠 보건 통제 용도로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비슷한 정부 통제 사례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잡기 위해 드론을 띄우는 중국 정부, 확진을 받기도 전에 디지털 기록과 감시 카메라를 동원해 동선을 추적하는 싱가포르와 한국 사례를 언급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달 안에 모스크바에 얼굴 인식 카메라 17만8000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들어온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다. 모스크바 경찰 관계자는 지난주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가 격리를 어기고 밖에 나갔다가 얼굴 인식 카메라에 잡혔다고 밝혔다.  
  
러시아 경찰은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러시아로 들어온 모든 이들의 신상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9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신종 코로나 감염과 관련해 경찰의 감시를 받는 셈이라고 WP는 전했다.  
 

"집단 격리 병동 상황 열악해…자가 격리자 감시 타당한지 의문"  

25일 러시아 샤스트로이의 한 공장에서 전기차가 화장실용 휴지를 운반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러시아에서는 휴자 사재기가 발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5일 러시아 샤스트로이의 한 공장에서 전기차가 화장실용 휴지를 운반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러시아에서는 휴자 사재기가 발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 인권 단체 아고라 소속의 키릴코로티브는 WP와의 인터뷰에서 "자가 격리 상황에 있는 사람을 감시까지 하는 정부 당국에 대해 대중은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며 "당국은 이미 14일의 자가 격리 기간이 끝나거나,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까지도 무작위로 주립 감염 병동에 가둬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티브는 또 "이런 감시는 의학적 대응이 아니라 사법적 대응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리나라는 이름의 러시아 여성은 러시아 당국이 관리하는 격리 병동으로 옮겨졌는데, 음식과 물은 물론 앉을 곳조차 없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의 위협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온 마리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6명의 경찰에게 집에서 체포됐다. 마리나의 딸은 소셜미디어(SNS)에 "나는 엄마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고 적었다.  
 
러시아 당국은 또 신종 코로나 관련 루머를 퍼뜨리는 경우도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WP는 "신종 코로나 관련 루머라고 정부에 신고가 들어오는 건수만 하루에 50건"이라며 "이런 거짓 정보를 올리면 건당 3만 7500달러(약 46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인구가 약 1억4600만명에 이르는 러시아에는 26일 기준으로 확진자가 658명, 사망자가 3명뿐이다. 미국 언론은 러시아 정부가 1월부터 국경 봉쇄를 검토하는 등 빠른 초동 대응에 나선 점을 감염병 예방 비결로 꼽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국민 사이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정부가 확진자 통계 수치를 축소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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