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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맨들도 구조조정 공포···“책상 뺄라” 재택 하래도 출근

중앙일보 2020.03.27 05:00
이달 10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앞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입주자들을 비롯한 주변 직장인들이 코로나19 검진을 받는 모습. 뉴스1

이달 10일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앞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입주자들을 비롯한 주변 직장인들이 코로나19 검진을 받는 모습. 뉴스1

대한항공 재직자인 A씨는 현재 무급휴가 중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해 말부터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일단 예정된 휴직일은 오는 5월 말까지 6개월가량이다. 하지만 A씨는 요즘 너무 심란하다.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서다. 실제 대한항공 임원들은 다음 달부터 경영 상태가 정상화될 때까지 급여를 반납하기로 한 상황이다. A씨는 25일 “20년 가까이 몸 바쳐 일해 온 회사인데,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복직하더라도 아주 애매한 자리로 발령을 내거나 한다면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는 건 아닌지, 무급휴가자들끼리 늘 얘기한다”고 한숨지었다.  
 
CJ그룹 계열사에 재직 중인 B 부장은 요즘 격일로 출근한다. 코로나 19 확산 때문에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3개 조로 나눠 근무하도록 했다. 산술적으론 3일에 한 번만 출근하면 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는 격일 출근을 택했다. B 부장은 “원칙은 재택근무라고 하지만, 임원들은 거의 매일 빠짐없이 나오는 데 마냥 집에만 있기에는 부담스럽다”며 “재택근무가 계속되는 동안은 이런 방식으로 출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롯데쇼핑 직원의 블라인드 게시글. 사진 블라인드 캡처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롯데쇼핑 직원의 블라인드 게시글. 사진 블라인드 캡처

코로나19 탓 조마조마한 직장인들 

코로나19의 여파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면서, 고용 불안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원칙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기업들에서도 임원이 아닌데도 매일 출근을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도 "회사는 필수 인원만 출근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직원이 자신이 핵심 인력이라고 생각하는지 출근을 고집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SK이노베이션 직원의 블라인드 게시글. 사진 블라인드 캡처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SK이노베이션 직원의 블라인드 게시글. 사진 블라인드 캡처

불안감은 직장인 전용 익명 앱인 ‘블라인드’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난다. SK이노베이션의 한 직원은 이스타, 에어부산 등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항공업계 임금삭감, 휴직 등을 정리한 글을 올리고 “우리도 이렇게 되는 거 아냐” 라고 불안해했다. “실제로 분위기 심각하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앞으로 3~5년 이내에 70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 중 200개가량을 줄이기로 한 롯데쇼핑의 한 직원 역시 두산중공업의 구조조정과 관련한 글을 올리고 “남의 일 같지 않다”고 걱정했다.  
 
실제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 구성원들의 절박감은 더하다. 최근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으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한 OCI의 한 직원은 “우리 네 식구 앞날이 무섭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OCI는 최근 가격 경쟁력 등을 이유로 태양광 패널의 기초 소재인 폴리실리콘의 국내 생산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OCI는 세계 2위의 폴리실리콘 생산업체다.  
 구조조정과 관련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OCI 직원의 블라인드 게시글. 사진 블라인드 캡처

구조조정과 관련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OCI 직원의 블라인드 게시글. 사진 블라인드 캡처

희망퇴직 신청 인원 극소수 

하지만 실적이 악화한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려 해도 희망퇴직 등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채용 시장이 말라붙은 탓에 이직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해서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만 45세 이상 직원 대상으로 최대 24개월 치 임금 지급하고, 20년 차 이상에는 위로금 5000만원 주기로 했지만, 신청자는 목표치에 한참이나 미달이다. 이 회사 창원 공장에선 사용자 측이 일부 직원들에 대해 휴업(임금 70% 지급)을 요청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창원공장 가동률 저하에 대응하고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일부 인력과 시설에 대한 휴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노사협의를 위해 노조에 보낸 공문. 사진 두산중공업

두산중공업은 최근 창원공장 가동률 저하에 대응하고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일부 인력과 시설에 대한 휴업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노사협의를 위해 노조에 보낸 공문. 사진 두산중공업

사정은 효성중공업도 비슷하다. 효성중공업은 올해 초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데 희망자가 거의 없어 사실상 멈췄다. 이 회사는 건설 부문 사업 부진에 주력 제품인 초고압 변압기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가 더해지면서 차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악화로 당분간 희망퇴직을 신청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10곳 중 7곳은 채용 중단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감은 신규 채용 시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인사 포털인 잡코리아가 최근 각 기업의 인사담당자 489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채용계획 변화’ 상황을 묻는 설문에 응답 기업의 74.6%가 채용을 미루거나, 관련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직장인들의 불안감이 추후 기업의 실적 등에도 이어질 수 있단 점이다. 업무 몰입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자 지난 24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그룹 내 주요 경영자들과 화상회의에서 “직원들의 정서 관리에 더 신경 써 달라”고 당부할 정도다.
 
이수기ㆍ이소아ㆍ강기헌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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