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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찰·휴업에 사업권 반납… ‘호황 카나리아’ 면세점의 굴욕

중앙일보 2020.03.26 16:07
12일부터 휴업에 들어간 롯데면세점 김포공항점 셔터가 내려있다. [연합뉴스]

12일부터 휴업에 들어간 롯데면세점 김포공항점 셔터가 내려있다. [연합뉴스]

26일 오전 서울 롯데면세점 소공본점. 올 초만 해도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代工)으로 가득했지만,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매장 블록 하나를 감싸 안을 정도로 길게 늘어섰던 계산대 줄에는 관광객 20여명만 서 있었다. 미화원은 소독액을 묻힌 걸레로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연신 닦아냈다.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얘기하고 있었다. 면세점 관계자는 “문을 열어도 손님이 뚝 끊긴 지 오래됐다”며 “그나마 본점이라 이 정도지 다른 곳은 사람이 더 빠졌다”고 말했다.
 
하늘길 곳곳이 뚝 끊기면서 면세업계에 불황의 후폭풍이 몰아닥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 이어 면세업계가 2차 타격을 입는 모양새다. 과거 면세점 사업권 입찰을 두고 대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건 옛말이다. 면세업계에선 “올 상반기 매출이 1년 전의 50% 수준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항공업과 면세업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만큼 불황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분석했다. 24일 기준 인천국제공항 이용객 수는 9316명으로 집계됐다. 일평균 이용객 수가 1만 명을 밑돈 건 공항이 문을 연 2001년 이후 처음이다. 2018년 18만7000 명, 2019년 19만4000명 수준이었다. 그랬던 일평균 이용객 수가 이달 1~15일 2만7800명으로 뚝 떨어졌다.
 
발길 뚝 끊긴 인천공항.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발길 뚝 끊긴 인천공항.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불황의 신호는 지난달부터 두드러졌다. 올해 8월 계약이 끝나는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면세점 사업권 입찰에서 ‘금싸라기’로 꼽히는 향수ㆍ화장품(DF2)과 패션ㆍ기타(DF6) 구역 사업권이 유찰됐다. 향수ㆍ화장품의 경우 면적당 매출(연 매출 3500억원)이 가장 높은 데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어 대기업의 전쟁터였지만 모두 외면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면세점 입찰에서 유찰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공사에 제시한 최저 낙찰가 대비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했다”며 “죽느냐 사느냐 상황인데 체면 차리기보다 냉정하게 수익성을 따졌다”고 설명했다.
 
면세점 문을 닫는 곳도 늘었다. 롯데ㆍ신라ㆍ신세계 ‘빅3’ 면세점은 하루 2~7시간 단축영업을 하고 있다. 롯데 김포공항점은 12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신세계는 명동ㆍ강남점이 월 1회 휴업한다. 앞서 면세점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면서 며칠씩 휴업하기도 했다. 빅3는 지난달 매출이 전달 대비 4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처음 연 매출 20조원을 넘기며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호황 신호를 먼저 알렸던 면세점의 굴욕”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 불황’닥친 면세업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코로나 불황’닥친 면세업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소ㆍ중견 규모 면세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SM면세점은 25일 2015년부터 운영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반납한다고 밝혔다. 올해 9월 30일 문을 닫는다. 직영 판매사원은 인천공항에 배치하고 도급 사원은 계약을 해지할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달 공항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입점한 업체 임대료를 내리겠다고 발표했지만, 대상을 중소기업으로 한정하면서 중견기업인 SM면세점은 제외됐다. SM면세점 관계자는 “출혈 경쟁 속에서 비싼 임대료에도 버텼지만, 신종 코로나까지 덮쳐 더는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 입점한 중소ㆍ중견기업 면세점 4곳(시티ㆍ엔타스듀티프리ㆍSMㆍ그랜드)은 20일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임대료 인하, 휴업 시 임대료 면제를 요구했다. 항공사가 공항 이용료 감면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SMㆍ그랜드 면세점은 25일까지 인천공항공사에 2월분 임대료를 내지 못했다. 그랜드면세점 관계자는 “이달 매출이 3억에 못 미칠 전망인데 내야 할 임대료는 12억원에 달한다”고 털어놨다. 인천공항공사는 공항 면세점 임대료 감면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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