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조선이 일본의 속국? 이보다 계몽된 나라 없는데…

중앙일보 2020.03.26 00:21 종합 22면 지면보기

100년 전 미국인 헐버트가 본 글로벌 한국

지난해 8월 열린 호머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뉴시스]

지난해 8월 열린 호머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뉴시스]

최근 경남 진주에서 발견된 화석이 화제다.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없고 꼬리를 들고 다니며 물가에서 살았던 원시 악어 화석이다. 유럽에서만 보고되던 원시 악어 ‘크로코다일로포두스’가 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라고 한다. 고생물학 분야에서 학술적 의의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원시 악어가 한반도와 유럽에서 모두 서식했음이 흥미롭다.
 

영문잡지 ‘한국평론’서 올찬 활동
“이방인 사랑하는 다정한 한국인”
한국에 대한 외국의 오해 비판해
1975년 서울의 매력 그려보기도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고대 로마 유리그릇.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고대 로마 유리그릇.

한반도와 유럽은 언제부터 세계가 됐을까. 유리의 세계사는 한 가지 힌트를 준다.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평화를 배경으로 로마 유리가 동진해 신라 황남대총에서도 유리그릇이 발견된다. 그렇지만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위치한 두 지역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륙의 양단이 동서 교류의 세계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호 인식의 증진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유럽인의 한반도 인식에서 이정표가 된 문헌은 『몽골제국 여행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지은이 기욤 드 루브룩은 1254년 몽골 궁정에서 솔랑가의 외교사절을 만났는데, 솔랑가 사람들은 체구가 작고 피부가 검고 갓을 쓰고 다닌다고 기록했다. 그는 카울리 이야기도 전해 들었는데, 섬나라 카울리는 겨울이면 주변 바다가 얼어붙어 타타르인의 침략을 받았으며, 평화의 대가로 매년 막대한 금은을 바친다고 기록했다. 솔랑가와 카울리는 옛 몽골에서 고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신라 황남대총서 나온 로마 유리그릇
 
헐버트가 한국인을 가르치는 모습. [뉴시스]

헐버트가 한국인을 가르치는 모습. [뉴시스]

루브룩은 고려에 직접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몽골 제국에서 얻은 견문을 기록했을 따름이다. 이후에도 유럽인이 한반도에 관한 지식을 얻는 곳은 한반도와 인접한 지역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인은 일본 나가사키 무역관에서 병자호란 직후의 조선 정세를 분석한 보고서를 썼다. 프랑스 예수회 신부는 중국 강희제와 함께 만주 여행을 떠나 접경 산악지대에서 조선을 보았고, 중국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조선을 기록했다. 일본과 중국에서 바라본 조선이었다.
 
한반도를 직접 체험한 유럽인이 없지는 않았다. 네덜란드인 하멜이 13년간 조선에 억류됐다가 탈출해 자바섬의 바타비아 총독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1668년 네덜란드에서 출판됐다. 세칭 『하멜 표류기』라 하는 이 책은 곧 프랑스·독일·영국에서도 번역돼 한반도 지식의 확산에 기여했다. 그렇지만 지형이 험준하고 맹수가 우글대는 폐쇄적인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판본에 따라서는 악어 삽화와 함께 어린아이를 잡아먹는 악어 이야기까지 들어갔다. 올해를 예견하고 백악기의 원시 악어로부터 조선 악어를 상상한 것일까.
 
개항 이후 조선에 찾아왔던 서양 사람들조차 이국적인(?) 조선을 전달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하다. 각종 견문기에서 조선에 관한 그릇된 인상,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기가 일쑤였다. 조선에서 다년간 체류하며 조선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서양인의 조선 견문기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다. 서양인이 조선에 관해 지은 책도 드물지만, 그마저도 조선에 관한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표지. [중앙포토]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표지. [중앙포토]

헐버트가 1895년 영문잡지 ‘The Korean Repository’(한국휘보)에 기고한 영국인 새비지랜도어의 『코레아 또는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서평에는 그의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은 한여름에도 눈보라가 내린다. 조선인은 아프리카 흑인만큼 피부색이 검다. 조선의 도성에는 밤마다 맹수가 침입한다. 조선인은 세탁하면서 옷을 몽둥이로 팬다. 그는 이런 식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글을 쓰는 습관을 질타했다. 무더운 한여름 한낮에 시에스타 같은 낮잠을 자는 광경을 보고 한국인의 게으름을 논하는 서양인의 섣부른 인상 비평도 교정 대상이었다.
 
헐버트가 1901년 발간한 영문잡지 ‘The Korea Review’(한국평론)는 ‘리뷰’라는 제목에 걸맞게 당시 한국에 관한 지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평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월간지였다. 한국에 관한 견문 지식뿐만 아니라 역사 지식의 평론에도 힘썼던 근대 한국학의 주요 발신지였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이 조선에서 농사를 지은 덕분에 조선에서 비로소 벼농사가 도입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벼농사는 이미 서력기원이 시작할 때부터 시작됐고, 일본은 조선에서 벼농사를 배웠다고 반박했다.
  
“일본은 조선에서 벼농사 배워갔다”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기사. [중앙포토]

헐버트가 발간한 ‘한국평론’ 영인본 기사. [중앙포토]

아울러 ‘The Asiatic Quarterly Review’(계간 아시아평론)에 실린 스에마쓰 겐초(末松謙澄)의 한·일관계론도 비판했다. 조선이 수 세기 동안 일본에 공물을 바치며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을 논파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제국을 칭하고 중국과 맞먹으며 조선에 우월감을 보였으나 운요호 사건(1875)에 따른 강화도 조약에서 일본이 제국을 칭했다고 해서 그것이 조선에 대한 종속 관계를 부과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자인했다고 지적했다. 운요호 사건과 비슷한 시모노세키 사건(1861) 때 피격된 미국 측에서 일본 측의 배상금을 받았다가 후일 배상금을 돌려주며 일본 측의 자위권을 인정했는데, 일본 측은 조선 측에 그러한 조처도 없었음을 부기했다.
 
헐버트의 ‘한국평론’은 당시 영문으로 유통된 한국의 견문 지식과 역사 지식을 적극 리뷰하고 힘껏 교정한 매체였다. 그러나 한국 상황의 획기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인식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잡지 1906년 4월호 기사 ‘A Visit to Seoul in 1975’(1975년 서울 방문기), 곧 1906년 시점에서 약 70년 후의 한국을 상상한 미래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중앙포토]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에 있는 하멜 동상. [중앙포토]

신속한 경부선 급행열차(부산-대구-대전-수원-영등포-남대문 구간). 미국 뉴욕의 호화로운 월도르프 호텔을 닮은 서울의 그랜드 호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시팔을 공연하는 종로의 드로리엥 오페라 극장. 100만 권 이상의 책을 갖춘 제국도서관과 국립도서관. 가장 모범적인 대학 교육으로 저명한 극동 최대의 세 대학인 제국대학·서울대학·대동대학. 주정뱅이가 없고 범죄 소식이 없는 경건한 종교문화.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이방인을 환대하는 다정한 사람들. 이제 “물질적인 발달은 물론 정신적인 발달에서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수천만보다 더 계몽된 나라가 없으며 더 진보적인 민족이 없다”고 했다. 에필로그의 말이다.
 
올해는 2020년. 과거에 상상한 미래의 그 해로부터 다시 45년이 지났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지구의 위기 상황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슬기로운 국내 대처가 주목받고 있고 모범적인 국제 협력이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한국과 새로운 한국인의 자각은 이에 합당한 글로벌 지식을 지향한다. 식민지와 냉전의 논리로 편제된 낡은 한국 지식을 혁신하는 새로운 헐버트를 꿈꾼다.
 
한국의 수수께끼도 수집한 헐버트
사민필지. [뉴시스]

사민필지. [뉴시스]

호머 헐버트(H. Hulbert·1863~1949)는 흔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불린다.  한글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 띄어쓰기와 가운뎃점(·) 찍기를 도입했다. 1891년 순한글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사진)도 만들었다.
 
‘The Korea Review’(한국평론)는 한국학 연구자로 저명한 그가 편집한 잡지인 만큼 여기에는 한국에 관한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수수께끼다. 언젠가 한번은 헐버트가 한국인 두 명에게 한국 수수께끼를 수집해 오라고 시켰다. 서양 같으면 책이나 신문을 참조해야 할 텐데, 이들이 그런 것을 참조하지 않고도 단 이틀 만에 뚝딱 모은 수수께끼가 중복된 것을 빼고 무려 175개나 된다고 감탄했다.
 
여기서 잠깐 몇 개 소개해 본다. ‘늙어가면 살찌는 것 무엇이오’ ‘입은 하나라도 목구멍은 셋 있는 것 무엇이오’ ‘삼시 목욕하는 것 무엇이오’ ‘짐 실으면 가고 안 실으면 안 가는 것 무엇이오’.
 
그렇다면 정답은? 만약 이 수수께끼를 모두 맞힐 수 있다면 1900년대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생활에 상당히 친숙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정답은 차례대로 담벽, 아궁이, 사발, 신발이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