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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땐 꼭 오는 신종 금융병기···2008년 CDO, 코로나땐 CLO?

중앙일보 2020.03.25 10:52
 “이번엔 어떤 신종 금융병기일까?”
스위스 국제경제대학원(GIIDS) 리처드 볼드윈 교수(국제경제)가 며칠 전 전화 인터뷰 도중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기자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신종 금융병기란 위기 직전까지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금융상품”이라며 “2008년 CDO 같은 금융 발명품”이라고 설명했다.

[Crisis 스토리④]
역대 위기 순간엔 대중에 낯선 금융상품이 패닉을 키웠다.
2008년 때는 자산담보부증권(CDO)이 증폭기로 구실했다.
블랙먼데이 포트폴리오보험, 일본 거품 땐 토킨계정이 화근이었다.
이번엔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 유력 후보로 꼽힌다.

 
2008년 미국 뉴욕증시 참여자들은 손실을 파악하기 힘든 부채담보부증권(CDO) 탓에 패닉에 빠졌다.

2008년 미국 뉴욕증시 참여자들은 손실을 파악하기 힘든 부채담보부증권(CDO) 탓에 패닉에 빠졌다.

CDO는 우리말로 부채담보부증권이다. 우량과 비우량 채권을 뒤섞은 뒤 발행된 자산담보부증권(ABS)의 하나다. 여기에 부도를 대비한 보험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라는 파생상품이 곁들여졌다. 그 바람에 뮤추얼펀드 매니저들이 서브프라임이 뒤섞인 CDO를 안전자산이라고 믿고 사들였다.
 
CDO는 애초 규모가 200억~300억 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금융위기로 증폭시켰다. 2008년 1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를 강타한 뒤 그해 8월엔 리먼브러더스를 뒤흔들었다. 모두 이들 회사가 제조ᆞ판매한 CDO  에 대한 불신 탓이었다. 그 바람에 두 투자은행과 거래하지 않으려는 기피현상(카운터파티 리스크)이 팽배했다.

금융회사들 CLO 활용해 중국, 터키 등에 뭉칫돈 빌려줬다

이런 경험 탓에 월가 안팎의 플레이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직전부터 신종병기 찾기에 나섰다. 만약 시장 불안 채널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서다. 미국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의 수전 룬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CLO가 유력한 증폭기”라고 했다.
 
저금리 시대인 2012년 이후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발행이 가파르게 늘었다. 단위 10억 달러.

저금리 시대인 2012년 이후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발행이 가파르게 늘었다. 단위 10억 달러.

CLO의 우리말 이름은 ‘대출채권담보부증권’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하는 일종의 자산담보부증권(ABS)이다. 주로‘BB-’등급 이하 투자부적격 기업이 대상이다. 투자 위험이 높지만 연 5~10%대로 이자가 높아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 통한다.
 
CLO 규모는 미국에서만 1300억 달러(2018년) 가까이 된다. 2012년 이후 급증했다. 이런 급증 이면엔 양적 완화(QE)가 낳은 초저금리 현상이 똬리를 틀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달러와 유로 자금의 뚝 떨어진 2012년 이후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뭉칫돈을 대출해줬다. 주로 미국 셰일회사와 중국ᆞ터키 등 신흥국 기업이 대상이었다.
 
룬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2010~2017년 사이에 자국 안팎에서 조달한 자금이 1조4000억 달러(약 1700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달러화나 유로화 표시 채무다. CLO란 병기가 없었다면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신흥국 기업에 뭉칫돈을 빌려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CLO 사태 방아쇠가 될 수 있다

CLO 이면엔 여러가지 대출채권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실화하면 전체 CLO 가치가 흔들리기 십상이다.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시장이 CDO란 장치에 요동했던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무엇보다 CLO에 들어 있는 대출채권 가운데 사모펀드의 기업사냥 자금용 대출(레버리지론)이 들어 있다. 사모펀드는 저금리 시대에 인수합병(M&A)할 기업의 자산 등을 담보로 뭉칫돈을 빌렸다.  
 
이들 피인수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현금흐름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이들 기업이 최근 달러 자금을 흡입하는 바람에 달러 가뭄이 심해지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오래가면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 CLO 연쇄폭발의 시작이다. 

위기와 신종병기 조합은 오래됐다

CLO 우려가 현실화하면 위기와 신종병기의 역사에 한 페이지가 추가된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때 주가 추락을 증폭한 장치는 ‘포트폴리오보험(프로그램 트레이딩)’이었다. 컴퓨터가 사전에 설정된 등락폭에 따라 현물과 선물 등 파생상품을 자동으로 사고파는 매래 전략이다. 
 
포트폴리오보험은 마크 루빈스타인 전 UC버클리대 교수 등이 개발해 80년대에 월가에 확산시켰다. 포트폴리오 전체 가치를 안전하게 유지한다는 의미에서 보험이란 말이 곁들여졌다. 그 바람에 월가 사람들은 ‘안전한 전략’이라고 인식했다. 하지만 포트폴리오보험은 블랙먼데이 순간 매도주문을 쏟아 내놓는 주범이었다.
블랙먼데이는 마크 루빈스타인 전 UC버클리대 교수 등이 개발한 포트폴리오보험에 의해 증폭됐다.

블랙먼데이는 마크 루빈스타인 전 UC버클리대 교수 등이 개발한 포트폴리오보험에 의해 증폭됐다.

 
일본 전체를 80년대 후반 가미카제거품에 들뜨게 한 장치는 ‘토킨(투금)계정’이었다. 일본 기업들이 막대한 수출로 보유한 현금 등을 유치하기 위해 증권사 등이 경쟁적으로 토킨계정을 팔았다.
 
토킨계정 자금은 주가 급등 순간엔 추가 상승의 에너지였다. 반면 주가가 곤두박질할 때는 시장 전체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이 과정에서 시세조작 등에 토킨계정 자금이 동원되기도 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30년대 대공황 직전에 월가는 마진론에 취해있었다. 주식을 담보로 현금을 빌려 주식을 더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주가 상승 국면에선 추가 대출이 가능해 주가를 더 끌어올렸다. 반면 주가 추락 순간엔 마진론 증거금을 벌충하기 위해 주식을 더 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금융투기의 역사』의 지은이 에드워드 챈슬러는 2008년 기자와 통화에서 “신종병기는 사용자에게 안전한 수단이라는 인상을 준다”며 “하지만 시장이 돌변하면 대량파괴 무기로 돌변한다”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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