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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된사람,난사람,든사람…누가 사회에 더 도움될까

중앙일보 2020.03.25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45)

 
인생후반부엔 든사람, 난사람, 된사람 중 어떤 유형이 필요할까? 50여 년을 닳고 냄새나는 구두를 수선하고 닦아서 노후생활을 위해 장만해 둔 7억원 상당의 땅을 신종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한 구두닦이 부부,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음식값을 마스크로 받아 마스크 구할 돈이 없어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한 식당 주인의 뉴스는 가슴속에 감동의 물결을 출렁이게 한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역으로 달려간 은퇴 의료인, 마스크 양보하기 운동에 참여한 시민, 학교의 개학연기로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 아동에게 도시락을 마련해주는 맘카페 회원, 착한 임대인 운동에 참여한 건물주….
 
대전의 한 공방에서 취약 계층 등에게 전달할 재사용이 가능한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전의 한 공방에서 취약 계층 등에게 전달할 재사용이 가능한 면 마스크를 제작하고 있다. [중앙포토]

 
다양한 기부와 봉사가 이 어려운 시기에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어떤 어른이 한 얘기가 생각난다.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종류로 나뉘는 데 그 비율이 90%대 10% 정도다. 그 황금비율 때문에 인류사회가 유지된다.”  이 위중한 시기에 서로 돕고 격려하며 함께 살자고 나서는 시민이 있는 반면 이 시기를 이용해 나만 잘살고 잘 먹으면 된다는 부류의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이 말이 다시 한번 가슴에 와 닿는다. 나만 아는 사람도 사회의 유지를 위한 일종의 필요악이 아니냐고도 생각해 본다.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의 교훈을 주기 때문일 게다.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그분의 말씀에 수긍하며 나는 세 종류의 사람을 떠올려본다. 세 종류의 사람이란 된사람과 난사람, 그리고 든사람이다. 된사람이란 인격이나 품격으로 타인의 모범이 되고 어려운 이웃을 어여삐 여기며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된사람은 사회가 그를 필요로 하며 이웃이 그를 반기기 때문에 항구적 유대를 가질 수 있다. 소위 지속 가능하다. 난사람이란 말 그대로 남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남보다 월등해야 하므로 남과 비교하며 상대적 우위를 추구해야 해서 항상 적이 많고 자신보다 더 난사람이 나타나면 가치가 소멸되는 사람이다. 든사람이란 지식이나 경험이 많이 축적돼 지혜로운 사람을 일컫는 데, 소위 머리에 든 것이 많은 부류다.
 
이 사람은 오늘날과 같은 IT 세상에서는 더는 경쟁력이 없다. 세 가지의 특성을 다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어느 부류의 사람이 득세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이 규정되는 데 요즘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는 그래도 된사람이 많은 사회 같으니 퍽 희망적이다. 인간 세상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눈 그 말씀에 따르면 선한 사람은 곧 된사람이란 얘기가 되는 셈이고 우리 사회는 된사람이 약 90%가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우리 사회는 아직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겠다.
 
맹자는 ‘사단칠정’을 실천도덕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온전한 존재의 인간은 ‘사단’을 갖춘 존재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인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많은 봉사와 기부행위가 측은지심, 사양지심의 발로인 셈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도 자신만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을 보면 수오지심, 시비지심도 분간 못 하는 존재이니 맹자가 역설한 사람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사람이다. 된사람이란 ‘사단’을 제대로 실행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측은지심, 사양지심을 갖춘 사람이 수오지심, 시비지심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으니 우리 사회가 희망은 있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야기된 전세계적 혼란과 위기는 이제 너, 나의 문제가 아닌 인류 모두의 현실이 됐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봉사와 기부는 이웃을 위함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Pixabay]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야기된 전세계적 혼란과 위기는 이제 너, 나의 문제가 아닌 인류 모두의 현실이 됐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봉사와 기부는 이웃을 위함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Pixabay]

 
투쟁적 삶을 산 인생전반부를 지나 은퇴 후 인생후반부를 사는 사람이 갖춰야 할 삶의 태도는 어때야 할까. 맹자가 역설한 사단을 제대로 실천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함께 살자는 이타주의를 내세우는 삶이어야 한다. 여기서 이타는 ‘이타를 통한 이기’가 가능한 전제하에서 한 얘기다. 인생후반부 가장 중요하면서도 바람직한 ‘이기’는 존재감과 연대감인데 이는 봉사와 기부 등의 행위인 이타로 가능하다.
 
자신만 잘살겠다고 했던 사람의 말년 생활을 보면 함께 살겠다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 삶의 자세인지를 증명할 수 있다. 요즘 노인 요양시설에 재능기부 등의 활동으로 자주 드나드는 데, 그곳에서 요양을 받는 어르신의 면면을 보면 젊었을 때 그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함께 기거하는 동료와 잘 어울리고 편안한 모습을 보이는 분의 모습에는 과거 이웃과 잘 어울리고 서로 돕고, 감사해 하던 자신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다. 반면에 괴로워하며 불편해하는 분을 보면 마찬가지로 과거 자신의 투쟁적이고 자신만을 위하던 삶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인생후반부를 준비하고 살아가는 중요한 자세인지를 가늠케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야기된 전 세계적 혼란과 위기는 이제 너, 나의 문제가 아닌 인류 모두의 현실이 됐다. 한때 자신만 괜찮으면 된다던 일부 국가가 이제 순망치한의 진리를 깨달아 가고 있다. 이웃이 없으면 나도 없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펼쳐지고 있는 봉사와 기부는 이웃을 위함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현상은 함께 하는 사회가 왜 필요한가를 역설하고 있다. 진정한 이기는 이타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는 지혜로 삼아야겠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해 본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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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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