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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한 장 못파는 날 허다하다” 동대문 시장 줄파산 초읽기

중앙일보 2020.03.25 05:01
"뭐가 힘들다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어요. 중국 바이어가 안 온 지는 이미 오래됐고, 생산은 중국과의 무역 길이 막혀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내수는 아예 매출이 일어나질 않고요."
지난 3월 24일 새벽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동대문 시장. 예전 같으면 지방으로 갈 옷 보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야 할 상가 앞이 텅텅 비었다. 윤경희 기자

지난 3월 24일 새벽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동대문 시장. 예전 같으면 지방으로 갈 옷 보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야 할 상가 앞이 텅텅 비었다. 윤경희 기자

지난 3월 23일 자정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만난 상인 A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 말이다. K패션의 중추 역할을 해온 동대문 의류상가 상인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줄도산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중국 바이어와 보따리상인 '따이공'들은 1월부터 아예 발길을 끊었고, 내수 시장은 냉랭하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지역 소매상 매출에 의존하던 도매상인들의 타격은 더 크다. 동대문에서 20년 넘게 의류 도매상을 해온 A씨는 "지금 같은 불경기는 처음"이라며 "요즘 상인들끼리 인사가 '개시했니?'다. 하루에 잘 되면 700만~1000만원씩 팔던 점포에서 요즘은 옷 한두 장 파는 게 전부"라고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동대문 의류 상가
새벽 시장 찾아가 상인들 밀착 취재

동대문 의류시장 규모는 업계 추산 15조~17조원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2018년 국내 패션 시장 규모는 42조4300억원. 동대문 시장은 그 중 3분의 1이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랬던 동대문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23일 밤 11시부터 동대문 상가에서 새벽시장 상인들의 실제 사례를 취재했다. 취재에 응한 상인들은 모두 이름을 밝히길 꺼려했다. 불안감과 고충을 털어놓으면서도 약속이나 한 듯 "안 좋은 상황이 알려져 시장이 더 얼어붙으면 어쩌나" 말 꺼내길 조심스러워 했다. 때문에 취재원의 이름은 알파벳 순서로 적는다.  
 

"판매도 생산도 다 막혔다"

동대문 의류 도매상인의 약 60%는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직접 디자인해서 중국 공장에 제작을 맡기거나, 중국상이 디자인해 판매하는 완제품을 수입해서 판다. 이처럼 중국 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상인들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심각했던 1~2월 공장이 모두 문을 닫자 난감해졌다. 신상품 개발을 위한 샘플도, 팔아야 할 물건도 받지 못해 장사를 망친 것이다. 
17년째 상가에서 여성복 매장을 운영해온 B씨는 "중국 심천에 있는 공장과 주로 거래해 왔는데 1~2월엔 공장이 문을 닫아 아무 것도 못 했고, 3월에 겨우 공장이 다시 가동됐지만 출장을 갈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한두 달은 어떻게 버텨 본다지만, 유행에 맞춘 신상품을 준비하지 못하면 동대문 장사는 망하는 건데 어떡해야 할지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동대문 의류상가 최고의 '무기'는 최신 트렌드에 맞는 발 빠른 상품 공급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 패스트 패션 방식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똑같이 중국에 생산공장을 둔 대기업의 경우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매장에 상품이 걸리기 최소 3~4개월 전 이미 대량으로 물건을 확보했고, 지금 이를 물류센터에 입고 시켜놨기 때문이다. 국내 패션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물류비·유통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고, 또 베트남 등 중국 외 지역에 생산지를 분산시켜 놓아서 코로나19에도 당장 상품 공급 문제는 없는 편"이라며 "반면 바로 생산해서 바로 판매해야 하는 영세한 규모의 자영업자들은 물건 공급이 막힌 셈이라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자정이 넘자 '광희패션몰' '디오트'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 판매 상가에 옷을 사려는 소매상들 몇몇이 눈에 띄었다. 광희패션몰에서 여성복 판매를 하는 상인 C씨는 "코로나19 확산 후 매장을 찾는 소매상인 수는 이전의 10분의 1도 안 된다"며 "거의 전화나 온라인으로 주문하는데, 주문량 자체도 확 줄었다. 인건비 감당이 안 돼 지난주부터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모두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디오트 입점 상인 D씨는 “2017년 중국의 사드(THAAD·한중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 손님이 끊겼을 때도, 지난해 가을 백색국가 제외 문제로 일본 손님이 안 왔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평소 매출의 10% 정도로 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온라인 쇼핑몰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도매상인들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코로나19 공포에 온라인으로 쇼핑 패턴이 바뀌면서 거래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온라인쇼핑몰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과 불안감에 의류 쇼핑은 엄두를 못 내는 기성세대와 달리, 온라인 쇼핑몰의 주요 소비층인 10~20대 젊은 세대의 의류 소비는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3월 24일 새벽 동대문 상가 내부. 물건을 사러 나온 상인이나 손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전화로 미리 주문받고 포장해 놓은 옷 보따리들만 덩그러니 상가 통로를 지키고 있다. 이 마저도 양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윤경희 기자.

3월 24일 새벽 동대문 상가 내부. 물건을 사러 나온 상인이나 손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전화로 미리 주문받고 포장해 놓은 옷 보따리들만 덩그러니 상가 통로를 지키고 있다. 이 마저도 양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한다. 윤경희 기자.

3월 24일 새벽 1시. 평소 같았으면 물건을 사러 온 소매상인과 물건 보따리를 옮기는 택배 기사들로 번잡했을 상가 통로가 텅텅 비었다. 윤경희 기자

3월 24일 새벽 1시. 평소 같았으면 물건을 사러 온 소매상인과 물건 보따리를 옮기는 택배 기사들로 번잡했을 상가 통로가 텅텅 비었다. 윤경희 기자

제일평화시장 상인, 화재 이어 두 번째 재앙  

대구·부산 지역의 소매상을 주요 거래처로 둔 '제일평화시장'(이하 제일평화) 상가 입점 상인들은 지난해 9월 상가 전체를 모두 태우는 대형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이어서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실낱같은 희망마저 잃어버렸다. 화재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데다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피해가 커지자 경북지역의 거래가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화재 후 인근 상가로 자리를 옮겨 영업 중인 상인 E씨는 “당시 화재로 물건값만 2억원 넘게 피해를 봤다. 그래도 1월까지는 옮겨간 상가로 기존 손님들이 찾아와줬는데 코로나19가 심각해지자 발길이 싹 끊겼다"며 울먹였다. 그는 "하루에 옷 한 장 못 파는 날이 허다하다"며 "지난 가을 27시간 동안 (제일평화)상가가 불타는 걸 서서 지켜봤을 때도 이렇게 참담한 심정은 들지 않았다. 어떡하든 상가를 살려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미래의 계획으로 힘들어 할 겨를조차 없었는데, 큰 재앙을 연달아 두 번 겪고 보니 정말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일평화는 오는 4월 재개점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상인들에게는 또 다른 걱정 거리가 생겼다. 구청의 안전진단 등 준공검사와 안전 설비가 다 갖춰지지 않은 채 상가 측이 입점을 요구해와 난감하다는 것. 상인 F씨는 "4·5월 임대료를 30% 정도 깎아준다지만, 아직 지하층 등 많은 곳의 화재 잔해가 완벽하게 철거되지 않은 상황이다. 건물 안에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남아 공기가 탁한데 들어와 장사를 하라니 건강이 걱정되는데, 입점 압박은 심하다"고 말했다. 상가 측 요구대로 제일평화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몇 억원대의 권리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다. 또 제일평화만의 독보적인 상권을 잃을까봐 상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35년 의류도매업 경력의 나덕기 대표는 "(제일평화의) 4월 입점 요구는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8월 정도로 시기를 옮길 수만 있다면 힘든 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동대문 의류 상인들은 하나같이 "정부가 지원책을 더 열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 예산 11조7000억원을 책정하고, 소상공인·자영업자 경영애로자금 대출을 해주겠다지만 "신청 과정이 복잡하고 자격 심사가 까다로워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는 게 동대문 상인들의 말이다. 상인 F씨는 "사업자등록증이 있고 거래 실적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대출을 조금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화재로 이미 긴급 안정자금 대출을 받은 제일평화 상인도 이번에 다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길을 열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화재 후 제일평화 상인 370여 명이 입주한 상가 '맥스타일'의 유인갑 대표는 "채무 부담에 짐을 그대로 버려두고 도주하는 상인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드와 이머커스 성장으로 위축된 오프라인 재래시장이 코로나19로 붕괴 위험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며 "이런 상황이 3~5개월 정도 지속되면 동대문 의류상가 상인의 30%가 파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 대표는 "동대문 도매상이 망하면 외상 거래로 시장이 도는 동대문 시장 구조상 국내 봉제공장·원단업체도 연쇄적으로 무너진다"며 "온라인 쇼핑몰이 잘 된다지만 사실 그들이 파는 상품을 생산·공급하는 원천이 동대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제일평화시장 상가 재입주 제안을 받는 상가 상인 측에서 "제일평화시장 상가 4월 재입주 시 4~5월 임대료는 없고 그 후 6개월간 30% 할인한다는 조건의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주위 상가들 이미 임대료를 20~30% 인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대체상가로 이전한 상인이 제일평화 상가로 조기 입점할 경우, 대체상가의 남은 기간 보증금을 날리게 되고 또 제일평화가 지정한 인테리어 업체만을 사용해야 해 실제적 감면 효과는 없다"고 알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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