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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전까지 “연기없다”던 IOC, 도쿄올림픽 미룬건 내부 반란?

중앙일보 2020.03.25 05:00
지난 1월 기자회견에 참석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AFP=연합뉴스]

지난 1월 기자회견에 참석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AFP=연합뉴스]

 

“반란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언급한 과정을 두고 나온 말이다. IOC를 20년 넘게 취재해온 미국의 스포츠 전문기자 앨런 에이브럼슨이 23일 본인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그는 IOC를 전문으로 취재하는 기자들 중 IOC가 선발한 언론위원회를 이끌었을 정도로 IOC 사정에 훤하다.  
 
IOC는 22일 긴급 집행위원회(EB)를 소집했다. EB는 IOC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이날 회의는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직접 주재했다. 회의 직전까지 IOC 관계자들은 개최 사실도 몰랐다는 후문이다. IOC는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묻는 중앙일보의 질의에 21일까지도 “(연기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바뀐 것이 없다”고 대변인실 명의의 답변서를 보냈다. 
 
그랬던 IOC가 갑자기 EB를 열고 연기 가능성을 언급한 과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게 복수의 IOC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에이브럼슨이 23일 “반란”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IOC 지도부는 시일을 갖고 연기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으나 일부 IOC 위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반기를 들었다는 것.    
 
2016년 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딕 파운드 IOC 위원. [EPA=연합뉴스]

2016년 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딕 파운드 IOC 위원. [EPA=연합뉴스]

 
반란의 선봉에 선 이는 딕 파운드 IOC 위원이다. 캐나다 수영선수 출신이자 변호사인 그는 올해 78세로, 베테랑 IOC 위원이다. IOC의 부위원장도 두 번 역임했고 EB엔 16년간이나 재임했다. 대략 110명 안팎인 IOC 위원 중에서도 EB에 포함되는 건 특혜다. IOC 위원장을 꿈꿨으나 2001년 선거에서 스위스의 자크 로게 위원에게 패배했다. 당시 선거에 나선 고(故) 김운용 IOC 부위원장에게도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로게 위원장은 2011년 평창 겨울올림픽의 유치 승리를 선언했던 인물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자크 로게 IOC 전 위원장이 2011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 직후 인터뷰를 하며 당시 중앙일보 1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자크 로게 IOC 전 위원장이 2011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성공 직후 인터뷰를 하며 당시 중앙일보 1면을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파운드 위원은 위원장 선거 패배 후에도 IOC의 각종 이슈에 목소리를 적극 내왔다. 지난달부터는 도쿄올림픽의 연기 필요성을 강조했다. IOC가 보수적 스탠스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도쿄올림픽의 연기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 시내의 도쿄올림픽 대형 현수막 앞을 마스크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IOC도 최근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19일 일본 도쿄 시내의 도쿄올림픽 대형 현수막 앞을 마스크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IOC도 최근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AFP=연합뉴스]

 
여기엔 배경이 있다. 파운드 위원은 현 IOC 지도부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 에이브럼슨 기자가 “반란”이란 표현을 쓴 배경이다. 파운드 위원의 연기 주장에 현역 IOC 위원이자 도쿄올림픽을 담당하는 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존 코츠가 맞불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파운드 위원이 “IOC는 5월까진 연기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코츠 위원도 인터뷰를 자청해 “그건 그의 개인적 생각일 뿐”이라고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 IOC의 보수성을 감안할 때 이례적인 갈등 노출이다.  
 
파운드 위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23일엔 USA투데이와 인터뷰를 하며 “2021년으로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이번엔 IOC의 마크 애덤스 대변인이 나서 “위원의 개인적 생각에 코멘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애덤스 대변인의 말엔 뼈가 있다. 파운드 위원의 말은 개인적 의견일 뿐, IOC와 EB의 공식 입장이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IOC 역시 각국 올림픽위원회가 연기를 공식 요청하면서 속도를 낼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22일의 긴급 EB를 개최한 배경이다. 내년 재선이 걸려있는 바흐 위원장으로서도 연기를 하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두고 도쿄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도쿄올림픽을 1년 앞두고 도쿄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신화=연합뉴스]

 
여기에 캐나다를 필두로 다수의 국가들이 “예정대로 열린다면 선수단을 안 보낸다”고 선언하는 등 압박이 강해지면서 사실상 IOC 내부 기류는 현재로선 연기로 가닥이 잡힌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영미권 IOC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사실상 결론은 (1년 연기로) 났다고 안다”며 “곧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북미권 관계자는 “빠르면 이번 주 안, 늦어도 다음주엔 연기를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결국 바흐 위원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25일 통화를 하고 도쿄올림픽 1년 연기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왜 22일 EB 직후 신속하게 발표를 하지 않고 뜸을 들였을까. 에이브럼슨 기자는 “IOC가 아베 총리의 체면을 세워주려 했던 것 같다”는 주장을 폈다. 도쿄올림픽을 예정대로 7월 24일에 개막하고자 애를 쓴 아베 총리를 봐서 바로 연기 결정을 발표하지는 않는다는 해석이다. 바흐 IOC 위원장과 아베 총리가 24일 통화를 한 것도 그런 수순으로 읽힐 수 있다.  
 
24일 전화 회담의 형식에선 IOC와 일본 정부의 2인3각 연대가 주목됐다. 전화는 바흐 위원장이 제안했고, '1년 연기'안은 아베 총리가 제안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다. IOC와 일본 정부가 사이좋게 협의하고 합의하는 형식을 연출한 것. 근대 올림픽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올림픽이 1년 연기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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