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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IT·게임서 권고사직은 해고” 또 논란된 정의당 류호정

중앙일보 2020.03.25 05:00
 I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인 류호정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I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인 류호정 IT산업노동특별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고사직은 해고인가 아닌가.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을 받은 류호정(28) 후보의 답은 이렇다. "IT·게임업계에서 권고사직은 사실상 해고다.”
류 후보는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게임 '검은사막'을 개발한 중견 게임사 펄어비스가 최근 직원들에게 사직을 권고하면서 당일 바로 퇴사하게 한 사건을 들고 나왔다. 류 후보는 게임 BJ 출신으로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에서 일했다. 자신도 2018년 권고사직으로 퇴사했지만 ‘해고 노동자’라고 주장해 시비가 붙기도 했다. IT·게임업계에서 권고사직이 왜 논란일까.
 

권고사직이 뭐야?

· 권고사직은 사업자가 직원에게 "회사를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권하고, 직원이 이를 받아들여 사직서를 내는 형태의 근로관계를 종료를 뜻한다. 한마디로 노동자가 '합의 하에' 사표 썼다는 것. 
· 반면, 해고는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끝낼 때다.
· 한국의 근로기준법 2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해고가 정당했다'고 인정을 받으려면,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가 있어야 한다.  
 

기업은 왜 권고사직을 해? 

판교 내 주요 기업의 노조 관계자들. 파랑색이 넥슨 노조, 노란색이 카카오 노조, 초록색이 네이버 노조, 주황색이 스마일게이트 노조의 상징색이다. [사진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판교 내 주요 기업의 노조 관계자들. 파랑색이 넥슨 노조, 노란색이 카카오 노조, 초록색이 네이버 노조, 주황색이 스마일게이트 노조의 상징색이다. [사진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 기업 입장에선 정당한 해고사유를 입증하기 어렵다. 절차도 복잡하고 향후 ‘부당해고’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대안으로 권고사직을 택한다.
· 노동분쟁 사건을 주로 다루는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판례상 장기간 무단결근, 회사에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경우, 자금 횡령 같은 범죄행위 등 직원한테 중대한 귀책 사유가 있어야 정당한 해고 사유로 인정된다”고 말했다. “해고를 하더라도, 사전에 통지하고 징계위원회를 거치는 등 절차적으로 내부 규정을 준수했는지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해고는 상당히 까다롭다”고 말했다.
 

이게 왜 중요해?

· IT·게임업계는 권고사직이 다른 업종에 비해 많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업종의 특수성 때문이다. 
· 개발 중인 게임이 중단되면 규모가 큰 기업은 다른 부서로 직원을 전환배치할 수 있지만 작은 기업은 대규모 권고사직을 추진하기도 한다. 
· 중앙일보가 네이버, 카카오, 넥슨 코리아,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 주요 IT·게임 기업 20곳의 근속연수(2019년 9월 분기보고서 기준)를 조사한 결과 평균 4.16년으로 나왔다. 국내 5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 11.1년(CEO스코어 조사)에 비하면 짧다. 
· 변우석 노무법인 예성 노무사는 “IT·게임업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이직 기회가 많고, 이직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권고사직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주요 IT·게임 기업 근로자 근속연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 IT·게임 기업 근로자 근속연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도 '회사 나가라'는데 왜 합의해? 

· 사직을 권고받은 근로자는 실익을 따지게 된다. 해고라는 일종의 ‘빨간 줄’이 인사카드나 실업급여 청구시 문서에 남는 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재취업할 때도 '전 직장 퇴사 사유'가 해고인 것보다는 권고사직이 낫다.
· 기업은 통상 몇달 치 월급을 근로자에게 ‘사직 합의금’ 명목으로 준다. 권고사직은 비자발적 실업에 해당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 
 

최근에 왜 문제야? 

· IT 산업 급성장기엔 직원들도 권고사직 관행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포털·게임업에서도 대기업이 나오고, 노조가 생기면서 갈등은 커지고 있다.
· 스마일게이트 노조인 SG길드는 지난해 9월 입장문에서 “프로젝트가 접히면 많은 이들이 원치 않은 퇴사를 해야 했고,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개인의 능력으로 전배(전환배치)의 벽을 뚫어야 했다”고 밝혔다.
· 일부 기업은 '권고사직을 안 받아들이면 해고한다’는 식으로 압박해 '사실상 해고'를 권고사직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 지난해 ‘직장인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엔 책상을 치워버리고 엉뚱한 일을 시키는 등 직원에게 모멸감을 줘서 내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부당해고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 자필 합의서 등 겉보기엔 '권고사직'이기 때문. 
 

그래서 앞으로는?

 스마일게이트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류 후보는 스마일게이트에서 권고사직했지만 예비 후보 당시 자신을 '해고노동자'라 소개한 홍보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진 류호정 페이스북]

스마일게이트 노조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류 후보는 스마일게이트에서 권고사직했지만 예비 후보 당시 자신을 '해고노동자'라 소개한 홍보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진 류호정 페이스북]

· 노조가 있는 IT 대기업들은 권고사직에 앞으로 더 적극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 익명을 요구한 중견게임사 인사팀장은 “산업 특성상 유연하게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데, 우리 법은 문제가 있는 직원이라도 버티면 내보낼 수 없어서 불만"이라며 "근로자 입장에서도 회사가 퇴사를 강요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권고사직을 받아들여야 하니 양측 다 불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IT·게임업 특성을 고려한 대안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네이버 노동조합의 오세윤 지회장은 “고용불안 문제는 관심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게임업계 위주로 해고나 다름 없는 강압적 권고사직이 만연했던 부분을 파악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처럼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팩플] "그래서, 팩트(fact)가 뭐야?"
이 질문에 답하는 게 [팩플]입니다. 확인된 사실을 핵심만 잘 정리한 기사가 [팩플]입니다. [팩플]팀은 사실에 충실한 ‘팩트풀(factful)’ 기사, ‘팩트 플러스 알파’가 있는 기사를 씁니다. 빙빙 돌지 않습니다. 궁금해할 내용부터 콕콕 짚습니다. ‘팩트없는 기사는 이제 그만, 팩트로 플렉스(Flex)해버렸지 뭐야.’ [팩플]을 읽고 나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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