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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의 사람사진] 아래의 아래에서 살다간 서정태 시인

아래의 아래에서 살다간 서정태 시인

중앙일보 2020.03.25 00:19 종합 24면 지면보기
 
 
 
서정태 3/25 서정태

서정태 3/25 서정태

“시집 하나만 더 내고 가면 좋겠구먼.”
서정태 시인이 나를 볼 때마다 얄궂은 웃음 머금고 한 말이다.
그는 미당 서정주의 아우이며 시인이다.
그는 우리 나이 여든일곱부터 고창 질마재가 한눈에 보이는
미당 생가 옆에 조그만 흙집을 짓고 홀로 시를 쓰며 지내왔다.
그가 아흔이던 2012년 봄 처음 만났다.
 
처마 밑엔 ‘우하정(又下亭)’이란 당호가 있었다.
두어 평 방에 싱크대와 찬장, 앉은뱅이책상과 누울 자리가 다였다.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싱크대 위엔 고사리와 취나물이 있었다. 딱 한 줌씩이었다.
세간이며 먹거리조차 넘침이 없었다.
아흔의 시인이 다 버린 채 홀로 지내는 까닭이 이랬다.
“요 앞 질마재에 부모님과 형님 내외 산소가 있소.
문만 열면 보이지. 예서 시묘 살이 하는 셈이지요.”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권혁재 사람사진 / 서정태 시인

그가 장난기 밴 말투로 들려준 우하정의 의미는 이랬다.
“미당 생가 아래 있으니 우하요. 미당의 아우니 또 우하지.
하하, 사실은 모든 것의 아래, 또 아래라는 의미요.”
사실 미당의 아우라는 게 시인으로서 그에겐 늘 벽이었다.
도저히 넘어 설 수 없는 미당의 시,
그런데도 미당의 허물까지 품으며 아래의 또 아래에 든 게다.
백수(白壽)를 앞두고서도 당신을 붙들고 있는 건 언제나 시였다.
언젠가 그가 넋두리처럼 내게 고백을 했다.
“미당을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고,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미당이요.”
시묘 살 듯 ‘우하정에서 우하’로 사는 이유였다.
지난 11일 그가 아흔 여드레 삶을 마치고 아래에서 하늘로 올랐다.
끝내 마지막 시집을 내지 못한 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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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권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