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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n번방에도, 테러에도···텔레그램 문은 열리지 않는다

중앙일보 2020.03.24 17:04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사진 파벨 두로프 페이스북 계정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사진 파벨 두로프 페이스북 계정

‘n번방’ 수사에 텔레그램은 끝내 협조하지 않았다. 홍콩·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는 ‘인터넷 자유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반인륜 범죄자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비밀 메신저의 두 얼굴이다.  

 

무슨 일이야?

· 텔레그램은 ‘n번방’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 한국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 방심위가 할 수 있는 건 불법 촬영물을 지워달라고 텔레그램 앱의 신고 창구에 요청하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198건을 방심위가 요청해 삭제됐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답을 하지는 않는다. 삭제됐는지, 방심위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 텔레그램 서버와 본사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이 국제 공조를 통해 텔레그램 본사 위치를 찾아내려는 이유다.
 

이게 왜 중요해?

· n번방 사건은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는 어디까지인지, 범죄 소굴로 이용되는 플랫폼을 사회는 어디까지 통제할 것인지 다시 묻고 있어서다. 
· 방심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심의물의 99%가 외국 서버 및 플랫폼에서 유통된다. 인터넷 사업자는 불법 정보를 유통하지 않을 의무가 있지만(정보통신망법 44조), 해외 사업자는 적용받지 않는다.
· 김영선 방심위 확산방지팀장은 “트위터·페이스북·구글은 성범죄 신고 전담 창구가 있고 국내 지사를 통해 협조하지만, 텔레그램은 국내 사업자가 없어 접촉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세계적으로 텔레그램·디스코드 같은 비밀 메신저 앱에서 강간ㆍ성적 학대 영상이 유통돼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텔레그램 메신저는 개인 신원과 대화 내용 같은 정보 보안을 최우선으로 한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텔레그램 메신저는 개인 신원과 대화 내용 같은 정보 보안을 최우선으로 한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텔레그램은 뭐래?

· n번방 사건에 대한 입장은 없다. 평소 텔레그램은 ‘불법 콘텐트는 삭제하고 있다, 대화 내용은 우리가 보관하지 않으며 암호를 풀어줄 수도 없다’고 말해왔다. 올라온 성범죄물은 지우겠으나 범죄자 검거엔 협조 안 한다는 것.
· 텔레그램은 아동 성학대 신고 채널인 stopCA@telegram.org 를 운영한다. 날마다 삭제 조치한 숫자도 올린다. 이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하루 250~300개의 아동 성학대 채널을 삭제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왜 그래?

· 텔레그램의 설립 목적 자체가 ‘검열받지 않을 자유’다.
· 창업자 파벨 두로프(36)는 ‘러시아의 저커버그’라 불린다. 반정부 인사의 텔레그램 정보를 달라는 러시아 당국의 요구를 거부한 뒤, 국외 망명 중이다. 두로프는 ‘브레이브 하트’ 영화에 비유해 ‘그들은 우리의 인터넷 IP는 빼앗아도 자유는 못 빼앗는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 2014~2017년 텔레그램은 IS 테러범의 소통 창구로 활용됐다. 테리사 메이 당시 영국 총리는 텔레그램을 ‘범죄자의 둥지’라고 했을 정도. 그러나 두로프는 “개인 사생활 권리가 (테러) 위협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론을 고수했다. 텔레그램은 IS 채널을 자체 삭제했지만, 테러범 정보는 외부에 제공하지 않았다.
·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에 텔레그램이 활용됐고, 텔레그램은 해킹 공격을 받았다. 두로프는 트위터에 “공격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서 왔다”며 “우연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다른 앱도 그래?

· 방심위는 메신저 앱 디스코드에서 n번방 유사 범죄를 감지해 주목하고 있다. 디스코드는 방심위 삭제 요청에 응하며 회신도 한다. 본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 텔레그램 이전에는 텀블러가 골치였다. 2016년 방심위가 ‘불법 콘텐트 대응 협력’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우린 미국 회사고 한국 지사도 없으니 너희 관할이 아니다”는 것. 반면 2018년 12월 애플이 ‘아동 음란물 유통’을 이유로 텀블러 앱을 앱스토어에서 삭제해버리자 효과가 즉시 나타났다. 텀블러는 나체가 포함된 사진ㆍ영상을 텀블러 내에서 금지했고 앱스토어에 다시 등록됐다. 
 

그럼 범인 못 잡는 거야?

· 텔레그램의 협조가 없어도 잠입취재나 함정수사, 내부고발로 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래 걸린다(함정수사는 국내에선 불법).
· 경찰은 CCTV 분석과 가상화폐 추적 등 6개월 간의 특수수사 끝에 일명 '박사' 조주빈(25)씨를 지난 17일 검거했다.
· 해외에서도 텔레그램 범인은 어렵게 잡는다. 2017년 인도의 소아성애 텔레그램 방 운영자는 사회운동가의 3년 잠입 취재로 잡았다. 201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적발된 여성 불법 촬영물 텔레그램방은 운영진 부주의로 꼬리가 붙잡혔다. 싱가포르 정부는 26세 주범과 17·19·37세 공범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했다.
 

대형 IT 기업은?

· 사용자 정보를 놓고 정부와 각을 세운 대표적 테크 기업은 애플이다. 미국·호주 수사기관이 ‘테러범·성범죄자의 아이폰 잠금을 풀어달라’ 요구했지만 ‘사생활 보호’ 이유로 거부했다.
· 지난 1월 애플의 제인 호바스 개인정보보호 담당 이사는 “대신 우리는 아동 성학대물을 자체 탐지한다”고 했다. 애플 메시지나 아이클라우드에서 아동 성학대 의심 사진을 탐지해, 계정을 정지하고 전담 기관에 신고한다는 것.
· 위 내용이 보도되자 파벨 두로프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 “이제 아이클라우드도 공식적인 감시 도구가 됐다”며 “사적 메시지를 이런 곳에 저장하면 안 된다”고 적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팩플] "그래서, 팩트(fact)가 뭐야?"
이 질문에 답하는 게 [팩플]입니다. 확인된 사실을 핵심만 잘 정리한 기사가 [팩플]입니다. [팩플]팀은 사실에 충실한 ‘팩트풀(factful)’ 기사, ‘팩트 플러스 알파’가 있는 기사를 씁니다. 빙빙 돌지 않습니다. 궁금해할 내용부터 콕콕 짚습니다. ‘팩트없는 기사는 이제 그만, 팩트로 플렉스(Flex)해버렸지 뭐야.’ [팩플]을 읽고 나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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