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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소상공인 챙기는 사이···“캐시버닝” 숨넘어가는 벤처들

중앙일보 2020.03.24 05:00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스타트업 '필드쉐어'는 오는 4~5월이 고비다. 스포츠 시설 예약을 중개해주는 서비스로 1년 전 창업했지만, 지난 2월 이후 대부분의 예약이 취소됐다. 최근엔 정부·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야구장·축구장 시설마저 폐쇄되면서 앞날이 더욱 깜깜해졌다. 김희준 대표는 "한 두달은 더 버티겠지만 8명의 인건비와 임대료를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외부 투자를 받은 적 없는 신생 스타트업의 대안은 대출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기존 기술보증기금에서 융자를 받은 이력이 있어 이번 긴급 정부대출도 힘든 상황. 김희준 대표는 "일단 오늘도 은행에 찾아가 신용대출이라도 알아볼 예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내몰린 스타트업 

자동차용 IT 소품을 만드는 스타트업 A의 지난달 매출은 평소 대비 20%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백화점에 입점할 정도로 유통망을 확장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매장 관리비·임대료와 인건비 등 750만원이 고정비로 들어가는데, 매장 한 곳에서만 200만원 이상 적자다. 이 회사는 최근 오프라인 매장을 공유할 다른 업체를 찾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서울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내수·소비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2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서울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내수·소비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스타트업들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벤처의 싹이 마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특히, 여행·스포츠·교육 등 오프라인 대면 중심인 곳은 타격이 크다. 여행·숙박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후 매출은 평소 대비 절반 이하, 심하게는 평소의 10% 수준으로 떨어진 곳도 있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알만한 여행·숙박 업체들도 신규 고객 확보는 물론이고 운영조차 쉽지 않다"며 "일부 업체는 매각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이 증가한 배달·온라인쇼핑 등 비대면 업종도 상황을 낙관하긴 힘들다. 단기적으로 비대면 소비가 늘었지만, 장기적으론 소비자들의 지갑이 닫힐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먼저 겪은 중국도 첫 달은 온라인 서비스 매출이 늘었지만, 두 번째 달부터 매출 감소폭이 컸다"며 "언택트 산업도 장기적으론 성장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침체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다. 기업설명회(IR)나 비지니스 미팅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스타트업들은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세차서비스 업체 '세차왕'의 박정률 대표는 "소독방역 서비스를 만들어 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지만, 언제쯤이면 괜찮아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사업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돈줄 마를 앞으로가 더 걱정

스타트업계의 돈줄은 거의 말라가고 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지금은 기존에 받아둔 투자금으로 버티는 '캐시버닝' 상황"이라며 "사업으로 돈을 벌어 버틸 자금을 만들거나, 새로운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둘 다 어려워졌다"고 했다. 오프라인 모임 주선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은 올해 2월 기업설명회(IR)로 투자 유치를 계획했지만 벌써 두 차례나 IR이 미뤄졌다. 이 회사 대표는 "기존 투자금이 거의 소진됐는데 IR이 언제 열릴지 몰라 어떻게 계획을 짜야할 지 고민스럽다"고 했다. 
 
벤처캐피탈(VC)도 투자를 미루고 있다. 코로나19로 깊게 패인 '죽음의 계곡'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신중론이 퍼져있다. 이들 VC가 1조 3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모태펀드도 집행하고 있다. 모태펀드 집행마저 느려지면서 스타트업의 고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스타트업은 투자금이 떨어지는 순간 바로 폐업할 수밖에 없다"며 "투자가 절실한 스타트업들에는 적절한 타이밍에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상경영에 돌입한 대기업들의 상황도 스타트업엔 악재다. 벤처캐피탈 TBT의 임정욱 공동대표는 "펀드에 출자할 정도로 규모있는 대기업들마저 상황이 어려워져 자금이 경색되면 스타트업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강조한 투자 노력이 스타트업한테까지 이어질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조달도 어려워졌다. 폭락하는 주식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던 SCM생명과학은 지난 20일 IPO를 철회하겠다고 신고했고, 화장품소재업체 엔에프씨도 19일 상장철회를 요청했다. 
 

"모태펀드 집행률 높여야…긴급 자금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 유연하게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캐피탈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이용관 대표는 "모태펀드 자금이 많다고만 하지말고 실제 집행률을 검토해 자금 경색이 오기 전에 현장에 돈이 풀릴 수 있도록해야 한다"고 했다. 스타트업 콜라비팀의 조용상 대표는 지난 19일 중소벤처기업부 주최 간담회에서 "중기부가 나서서 모태펀드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처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게 독려하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용보증기금(신보)과 기업보증기금(기보)을 통한 긴급자금지원의 실효성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정부 대책이 소상공인·자영업자 위주이다 보니 스타트업의 현실은 고려하지 못했다"며 "90%이상의 스타트업이 당장 매출보다 미래가치로 승부하는 적자 기업인데, 이들은 신보·기보 보증 기준을 통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스타트업 대표는 "자금부족으로 기보에 몇 차례나 문의를 시도했는데, 업무가 몰려 담당자 통화도 어려웠다"며 "생존을 위해 매달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폭주하는데 최소한 기보 담당자라도 좀 늘려달라"고 호소했다.
  
고용유지를 위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에서는 감봉을 하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여가며 고용을 유지하라고 하는데, 무슨 수로 그렇게 하라는 것인지 지원책은 빠져 있다"며 "3년 미만 기업,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 등 정책 기준을 확실히 세워서 지원책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도 "정부가 실직한 이들에게 장기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실업보험 같은 사회 안전망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엽·하선영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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