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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의 한반도평화워치] 미국 핵우산 믿고 북핵 방치하면 생존 위태로워진다

중앙일보 2020.03.24 00:19 종합 23면 지면보기

미국 확장억제 믿을 수 있나

지난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앞바다에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메인함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2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앞바다에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 메인함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트라이던트2를 시험 발사하고 있다. [뉴스1]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현 국무부 부장관)는 지난해 9월 미시간대 특강에서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맹국들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했으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이 그들 영토 위로 날아다닌다면 이런 확신이 얼마나 지속하겠느냐”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에 실패할 경우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신뢰가 손상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트럼프 발언 보면 과연 동맹을 중시하는지 모호
미국 핵우산은 현재 심각한 신뢰 부족 현상 직면
한국은 초당적 자세로 미 핵우산의 신뢰도 높이고
북한 비핵화 실패 땐 핵 위협 억제할 방안 고민해야

‘억제(deterrence)’란 적(敵)의 군사 위협을 거부(deny)하거나 응징(punish)할 태세를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다. 한·미가 촘촘한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해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 미사일이 제대로 목표물을 타격하지 못하도록 ‘거부’하거나, 첨단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통한 ‘응징’이 가해질 것을 천명해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어놔야 한다.
 
미국은 냉전 시기부터 외부 핵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와 첨단 재래식 무기를 통한 억제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동맹국의 안전을 위해 억제력의 작동 범위를 확대했다. 미국이 가진 억제력을 동맹국에까지 확대하는 이른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전략을 구사해 온 것이다.
  
국내선 한국 안보보다 중국 심기 살펴
 
북한이 지난 21일 평안북도 선천에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AP=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1일 평안북도 선천에서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 [AP=연합뉴스]

확장억제의 신뢰도는 결국 능력(capability)과 의지(resolve)의 문제다.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은 양면적이다. 전략핵 능력은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고 최근 개발이 재개된 전술핵도 기술적 진보를 이룩했다. 5kt급 핵탄두 장착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전 배치, 해상발사순항핵미사일(SLCM) 개발 등이 그 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2년 동안 미국과 정상외교를 하면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지속해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 강도를 높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본토 방위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게다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거부’하기 위한 한·미 양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도 취약하다. 미국이 자기 돈으로 들여온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중국과 국내 일부 단체들의 반대로 뒤늦게 성주에 설치되었지만 한국 전역을 커버할 수 없다.
 
한국의 ‘3불 정책’(사드 추가 배치, 미국 주도 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 안 하기)으로 사드를 추가 배치할 수 없는 미국이 최근 사드 발사대와 포대를 분리해 지리적 운용 범위를 넓히는 구상을 하고 있다지만 말 그대로 궁여지책이다. 한국이 자체 개발하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는 완성까지 요원하다.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미국의 위성 시스템을 통해 빛의 속도로 식별해 요격하기 위해선 한·미 양국의 MD를 통합해야 하나, 한국의 안보보다 중국의 심기를 살피는 국내 정치세력이 있는 한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거부’는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믿을 건 미국의 핵 능력과 첨단 재래식 전력으로 대량 보복하는 ‘응징’ 뿐이다.
 
문제는 미국의 능력보다 의지다. 미국의 확장억제는 동맹에 대한 의지, 미군 전진 배치 전략, 확장억제의 기술적 정보 공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행한 발언을 보면 과연 동맹을 중시하는지 모호하다. “적보다 동맹국들이 미국을 더 이용하려고 한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의 발언은 ‘비용’과 ‘역할’을 분담하는 동맹국을 원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는 아·태 지역 내 한·미 역할 분담에 관심이 없고, 트럼프 행정부는 역할 분담을 포기한 대신 한국의 재정적 기여만을 강조하는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의 전진 배치 전략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해외 주둔 미군을 본국으로 불러들인 다음,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해외 사태 발생 시 압도적 수송 능력을 통해 개입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재선되면 이러한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한반도에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확장억제는 (미군이 동맹국에 주둔하는) 전진 배치 전략의 경우와 (미군이 거의 주둔하지 않는) 역외 균형 전략이 작동할 때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미군이 주둔하지도 않는 한국의 안전을 위해 미국이 대량 응징보복을 할 것이라고 북한에 확신을 주긴 힘들다.
  
한국, 미국의 북핵 억제책 공유해야
 
마지막으로 확장억제의 작동에 관해 한·미 양국 간 기술적 공유가 미약하다.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가 있지만, 미국이 어떻게 북한 핵을 억제할지 기술적 공유가 거의 없다. “미국을 믿으라”란 말만 믿고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냉전 초기 영국과 프랑스가 자체 핵무장에 나선 것은 미국의 말만 믿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안보 전략상 동맹국에도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있겠지만, 기술적 비밀주의를 과도하게 고집한다면 확장억제의 신뢰도가 저하된다. 이런 부분을 더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진보 정부가 미국의 핵우산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북한과의 협력만을 강조한다면 전략적으로 안이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확장억제는 신뢰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우리 모두 초당적 자세로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하고 북한 핵 위협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미국 핵우산의 신뢰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안보전문가 사이에 거론되는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도 보완 방안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는 방안이다.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타결되면 다시 철수하는 조건부 재배치 방안이다. 1990년대 초 미국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시킨 전술핵을 다시 들여온다는 점에서 우리 국민을 안심(assurance)시킬 수 있는 방안이나, 미국은 전술핵 배치 지점이 북한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둘째, 전술핵을 탑재한 잠수함을 동해에 상시 배치하는 방안이다. 우리 국민 입장에선 지상 배치보다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나, 북한에 의한 잠수함 위치 식별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 측 전문가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방안이다.
 
셋째,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식 핵 공유 방안이다. 2019년 7월 미국 국방대학교는 미국이 한·일과 핵을 공유하는 것을 하나의 옵션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이다. 핵을 공유하더라도 핵 사용 여부에 대한 최종적인 선택권은 미국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 입장에선 실효성보다 상징성이 강하다.
 
넷째, 맞춤형 확장억제의 작전계획화 방안이다. 미국의 핵 능력만 믿으라고 하는 것은 한국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으니, 북한의 핵 미사일 공격을 유형별로 나누고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관한 구체적 작전계획을 마련하는 것이다. 북한과의 전면전을 상정한 ‘작계 5027’, 북한 급변사태를 염두에 둔 ‘작계 5029’처럼 한·미가 대북 핵억제 전략을 구체화하는 방안이다. 미국은 기술 및 전략 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이 방안에 부정적이다.
 
마지막으로 최첨단 재래식 전력을 구축해 대응하는 방안이다.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AI와 우주기술 등 최첨단 과학기술과 초음속 스텔스 폭격기, 초고속 발사체, 무인체계 등 재래식 전력을 활용해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응하는 방안이다.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미국이 가장 선호한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선 시간과 예산 문제가 있고 ‘핵은 핵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오랜 통념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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