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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제 모세혈관 뚫어 줄 감사원 비상면책 체제 가동하라

중앙일보 2020.03.23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코로나19 사태가 전시 체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 미국은 7500만 명의 외출이 금지됐고, 사망자가 속출하는 이탈리아는 모든 공장을 폐쇄할 정도다. 전 세계 경제가 2차대전 이후 최대 위기다. 한국에서도 제조업 셧다운과 서비스업 위축이 본격화하면서 마이너스 성장과 대량실업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경기 침체가 3~4년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각국이 막대한 재정을 풀고, 우리 정부도 11조7000억원 추경에 이어 50조원 규모의 비상금융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민생 현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신청자가 밀려들면서 대출 심사에만 두세 달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가 최대 위기
한국의 경제 충격 최소화하려면
신속, 과감, 파격적 대응 택해야

더 버티기 어려운 분야에는 산소호흡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 현장의 모세혈관은 꽉 막혀 있다. 고질병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정부 부처의 재량 행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감사원의 정치화와 여기서 비롯된 공직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에 맞닿는다. 그동안 감사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일한 사안인데도 손바닥 뒤집듯 다른 감사 결과를 내놓기 일쑤였다. 아무리 현장 상황이 급박해도 공무원이 꿈쩍하지 않고 규정집대로만 움직이게 된 배경이다.
 
공직사회의 극심한 경직성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월 13일~3월 10일 코로나19 정책자금 집행률은 신청 대비 9.2%에 그쳤다. 수십조원의 정책자금 지원이 두 달 넘게 거론되고 있지만 말뿐인 셈이다. 항공·호텔·자동차·조선 업종도 줄줄이 무급휴직에 나서면서 일감이 떨어진 중소 협력업체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런데도 대출에 제동이 걸린다. IBK기업은행장은 코로나19 대출 업무 폭주로 직원의 야근이 늘자 52시간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노조로부터 고발당했다. 대책은 말뿐이고 민생 경제는 벼랑 끝에 설 수밖에 없다.
 
정부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19일 ‘경제위기 대응 지원을 위한 감사운영 방향’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신속·과감한 업무 처리는 폭넓게 면책하고, 현장 중심의 소극 행정은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원론적인 지침일 뿐이다. 공직사회가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런 비상시국에도 감사원은 고작 ‘사전 컨설팅 패스트트랙’으로 신속 집행을 뒷받침하겠다고 한다. 총알이 막 날아오는데 일일이 허락을 받으라면 복지부동을 깰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재량을 부렸다가는 해직과 연금 박탈은 물론 검찰 고발까지 각오해야 한다. ‘금융의 검찰’인 금융감독원조차 감사원 감사 가능성이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된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전시 상태다. 모든 의사 결정을 현장에 위임해야 한다. 당장 금감원은 일선 금융기관의 적극적 대출 조치를 허용해 자금 경색을 뚫어줘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감사원은 즉각 최소한의 금지 사항만 빼고 모든 행정 책임에 대해 감사 기능 정지를 선언하는 수준의 비상 면책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자금경색이 뚫리면서 신용보증이 원활해져 빈사 상태에 빠진 경제 모세혈관에 따뜻한 피가 돌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대통령이 비상경제 워룸에 감사원장을 배석시켜 면책하도록 대놓고 지시한 전례를 참고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주 비상경제회의에서 감사원장을 배석시켜 구체적 실행 내용을 보고받고 국민에게 이를 즉각 선포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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