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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속 물은 새로운 사치…물 없는 화장품이 뜬다

중앙일보 2020.03.22 05:03
기초 화장품 뒷면에 적힌 성분 목록을 한 번이라도 주의 깊게 본 적 있다면 가장 먼저 쓰여 있는 성분을 봤을 것이다. 바로 물이다. 우리말로는 ‘정제수’, 영어로는 ‘아쿠아(aqua‧물)’로 표기돼 있다. 전 성분 목록은 포함된 양이 많은 순서로 적는다. 기초 화장품 한 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성분은 대부분 물이다.  
화장품 뒷면 전 성분 목록의 가장 첫 번째는 주로 '물'이 차지하고 있다.

화장품 뒷면 전 성분 목록의 가장 첫 번째는 주로 '물'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물을 한 방울도 담고 있지 않은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물 없는 화장품'이다. 물을 넣지 않고 화장품을 만들 수 있을까 싶지만, 가능하다. 가루로 성분을 동결 건조하거나 물 대신 소량의 오일을 활용하는 식이다. 샴푸나 세안제의 경우 고체 비누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必환경 라이프? 물 없는 뷰티(waterless beauty)

 
굳이 물 없는 화장품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미용 산업 전반에 부는 친환경 바람 때문이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민텔(Mintel)은 지난 2015년에 향후 2025년까지의 핵심 뷰티 트렌드를 전망하면서 “물은 새로운 사치(Water is the new luxury)”라고 발표했다. 물소비가 공급을 앞서면서 물 자체가 귀중한 상품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보고서에선 “더 많은 소비자가 이를 인식하게 되면 미용 브랜드는 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제품 제조 방식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친환경 바람을 타고 물 없는 화장품이 뷰티 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물 없는 뷰티 브랜드 '스킨 앤 센시스'의 가루 타입 마스크. 사진 스킨 앤 센시스

친환경 바람을 타고 물 없는 화장품이 뷰티 업계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물 없는 뷰티 브랜드 '스킨 앤 센시스'의 가루 타입 마스크. 사진 스킨 앤 센시스

국제연합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25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물 부족 국가에 살게 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한국인 1인당 하루 평균 수돗물 소비량은 282ℓ다. 서구인은 하루 평균 140ℓ의 물을 소비한다.  
 
화장품 속 물까지 아껴야 할까 싶지만, 친환경 흐름에 민감한 화장품 업계에선 물 부족에 대한 소비자 인식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은 2020년까지 물 소비량을 완제품 단위당 60%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해외에서는 물 없는 화장품을 표방하는 브랜드가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물 대신 식물 속 영양 오일을 활용한 제품을 제안하는 미국 브랜드 ‘스킨 앤 센시스(Skin & Senses)’‘카터+제인(carter+jane)’, 물은 물론 방부제도 사용하지 않는 미국 브랜드 ‘롤리(LOLI)’, 물 없는 색조 제품을 선보이는 ‘핀치 오브 컬러(Pinch or colour)’, 파우더 샴푸를 소개하는 헤어 브랜드 ‘OWA’, 가루 형태 마스크 팩을 제안하는 런던 브랜드 ‘가이 모건(Guy Morgan)’ 등이다.
가루 타입 샴푸를 머리카락에 문지르고 소량의 물을 더하면 일반 샴푸처럼 풍성한 거품이 난다. 사진 OWA

가루 타입 샴푸를 머리카락에 문지르고 소량의 물을 더하면 일반 샴푸처럼 풍성한 거품이 난다. 사진 OWA

핀치 오브 컬러의 설립자인 린다 트레스카는 홈페이지에서 “화장품을 만들 때 물이 꼭 필요한 성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물 없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었다”며 “물 소비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최첨단 미용 제품”이라고 자신의 브랜드에 대해 설명했다.  
 
화장품 속 물을 줄이는 것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것과 연관된다. 물은 일반적으로 스킨이나 크림, 에센스 등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물을 제거하면 화장품 무게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워진다. 화장품 무게가 가벼워지면 이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게 된다. 주로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화장품 용기도 작고 간소하게 제작될 수 있다. 완전히 물을 없앤 가루나 고체일 경우 포장을 종이로 대신할 수도 있다.  
 
실제로 물 없는 화장품의 가장 흔한 예가 바로 비누다. 샴푸나 바디 워시 등을 고형 비누로 만들 경우, 플라스틱 대신 종이 포장을 사용할 수 있다. 영국 브랜드 ‘러쉬’의 고체 샴푸가 대표적이다. 플라스틱 포장 대신 종이로 포장돼 있고, 플라스틱 용기에 든 일반 샴푸보다 무게도 가볍다.  
고체 형태의 씻을 거리를 내는 국내 친환경 뷰티 브랜드 '톤28'의 제품들. 사진 톤28 인스타그램

고체 형태의 씻을 거리를 내는 국내 친환경 뷰티 브랜드 '톤28'의 제품들. 사진 톤28 인스타그램

화장품에 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물을 아끼는 것과는 별도로 또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로 물에 희석하지 않은 성분 그대로의 효과를 집중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출시된 물 없는 화장품 브랜드는 모두 고농축·고기능 제품임을 주장한다. 또 물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방부제를 적게 넣거나 아예 넣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 물이 있으면 미생물 증식이 쉽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화장품에 파라벤 등 방부제 성분을 넣곤 한다. 물을 없애면 자연히 방부제를 사용할 필요가 적어진다. 물 없는 화장품 브랜드가 방부제 없이 유기농 성분만을 담은 ‘클린 뷰티’ 브랜드를 지향하는 이유다.  
가루 타입의 마스크 팩 제품. 사진 가이 모건 인스타그램

가루 타입의 마스크 팩 제품. 사진 가이 모건 인스타그램

우리나라에선 비누 형태의 세정제를 제외하곤 아직 환경을 위해 물 없는 화장품을 표방하는 제품이나 브랜드는 없다. 비타민C나 히알루론산 등 물 없이 제조해서 더 효과적인 성분을 건조한 고체 형태의 출시 제품은 있지만, 환경을 위해서라기보다 성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발됐다.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인 ‘한국콜마’의 한상근 스킨케어연구소장은 물 없는 화장품에 대해 “유럽과 미국에서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클린 뷰티(clean beauty)’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물을 절약하기 위해 물을 적게 쓰는 제품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처음에는 물에 헹굴 필요가 없는 샴푸나 클렌저가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물을 넣지 않은 제품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물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실제 사용에 한계가 있어 화장대를 모두 채울 수 있을 만큼 다양하게 개발된다기보다, 에센스나 마스크 등 일부 제품만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물을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은 에센스나 세럼, 마스크 카테고리에서 특히 활발히 출시되고 있다. 사진 롤리

현재 물을 사용하지 않은 화장품은 에센스나 세럼, 마스크 카테고리에서 특히 활발히 출시되고 있다. 사진 롤리

또 다른 화장품 제조업체 ‘코디’의 송준식 연구소장은 물 없는 화장품의 출현을 “환경 보호의 이유도 있지만 필요한 효과를 빠르고 간편하게 얻기 위한 편의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목민’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일상화되면서 필요한 기능을 간편하고 빠르게 얻기 위해 파우더 타입 샴푸나 클렌저, 쉽게 더하거나 뺄 수 있는 가루 타입 기능성 에센스 등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에센스(세럼)나 향수, 샴푸, 클렌저, 치약, 페이스 마스크 등은 향후 몇 년 안에 물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이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은 품목이다. 물론 물 없는 화장품을 사용한다고 해도 제품 사용 과정에서 과도한 물을 사용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고체 샴푸를 사용하면서 오랜 시간 샤워를 즐기고, 고체 치약으로 양치질하면서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일들 말이다.  
알약 타입의 고체 치약. 입에 넣고 칫솔로 문지르면 일반 치약처럼 거품이 난다. 사진 러쉬

알약 타입의 고체 치약. 입에 넣고 칫솔로 문지르면 일반 치약처럼 거품이 난다. 사진 러쉬

빠르게 생산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요즘 소비자들은 일상에서 친환경을 실천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제품을 원하고 있다. 뷰티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장품에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던 물을 빼고서라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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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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