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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초상화 속 전염병

중앙일보 2020.03.22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인류 역사를 전염병과의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간은 수많은 전염병과 싸워왔다. 전염병 중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것은 천연두(두창·마마)였다. 고열과 발진을 동반하여 장님이 되거나, 딱지가 앉았다 떨어진 피부가 움푹 패 자국(곰보)을 남겼으므로 사실성을 추구했던 왕공·사대부의 초상화 가운데 천연두 병변들이 표출된 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천연두는 특히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 맹위를 떨쳤는데 러시아 표트르 2세, 프랑스 루이 15세 등 다섯 명의 황제가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천연두에서 살아남은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에는 얽은 자국을 감추기 위해 칠한 백색의 두터운 화장, 반복된 미백으로 생긴 납중독 증세 등이 피부색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천연두에 면역력이 전혀 없었던 만주족의 청(淸) 황실은 중원에 입성하면서 천연두의 위력을 경험한 후 병을 앓아 항체가 형성된 이를 ‘숙신(熟身)’, 내성이 없는 이를 ‘생신(生身)’으로 엄격히 구분했다. 생신의 황제는 천연두가 창궐하는 겨울·봄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식행사를 피하고 사냥을 떠나기도 했는데 이를 ‘피두(천연두를 피하다)’라 했다. 또한 열·부스럼이 있는 백성을 성 밖으로 강제격리시켰으며, 대신들은 황궁 출입을 자제하며 자가 격리했다. 나름의 방역을 통해 강희제·함풍제는 천연두를 앓고도 살아남았으나 수많은 태자들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고 순치제·동치제 역시 천연두로 유명을 달리했다. 천연두 흔적이 묘사된 흥미로운 예로는 ‘명태조 주원장 초상’을 들 수 있다. 안면의 얽은 자국을 북두칠성 모양으로 묘사함으로써 농민 출신 황제지만 천자로서 위용을 지녔음을 형상화했다.
 
작자미상, 오명항 분무공신상 세부, 1728년, 보물 제1177호, 경기도박물관

작자미상, 오명항 분무공신상 세부, 1728년, 보물 제1177호, 경기도박물관

조선시대 전염병 역시 17세기 중엽에서 18세기 중엽사이 집중됐는데 농업생산 증대로 인한 인구급증, 상업발달에 따른 인구밀집형 시장의 발달, 광산·목장·도시로의 인구이동 등을 전염의 원인으로 꼽는다. 피부과 전문의이자 미술사가인 이성락 박사의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에 의하면 500여 점의 조선시대 문인초상화 가운데 73폭 이상이 천연두 피부병변을 보인다. 영조년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분무공신에 오른 ‘오명항 초상’(그림, 작자 미상, 경기도박물관 소장)에는 얼굴 전체에 퍼진 천연두 흔적이 또렷하다. 오명항의 어두운 낯빛에 보이는 황달기운은 간경변을 의심케 하며, 가감 없이 구사된 묘사의 정확성은 조선시대 초상화의 사실 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의학이 발달하고 백신주사 한방으로 면역력을 획득하게 되면서 우리 주변에 곰보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인류가 퇴치한 천연두 이외의 전염병들은 언제 다시 창궐할지 알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독한 백신에 살아남기 위해 더 강해진 변종 바이러스들이 인간 숙주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건너와 이제 우리 곁에 살고 있다. 투쟁과 박멸이 아닌 바이러스와의 ‘불편한 공존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전염병이 어떤 초자연적 공격이 아니라 인간이 함부로 훼손한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한 미생물들의 아우성임을 알아듣고, 인간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일은 아직 늦지 않았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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