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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나 받을수 있대요" 금리 1.5% 코로나대출 '분통'

중앙일보 2020.03.20 18:45
경기도 파주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손 모(44) 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월 1500만원 수준이던 매출이 절반 이하(700만원)로 뚝 떨어졌다.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손 씨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정책자금을 신청하려 했다. 그런데 전화를 걸면 항상 ‘통화 중’이었다. 인터넷으로 대출 신청 사전 예약을 하려 했지만 연말인 12월 31일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사실상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태다. 손 씨는 "당장 융통할 돈이 급해 이자가 10%라도 달려갈 판"이라며 "정부가 1%대 저리 대출을 한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빌릴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를 방문해 코로나19 피해 지원금을 신청하는 소상공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를 방문해 코로나19 피해 지원금을 신청하는 소상공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가 취약 계층, 산업을 타깃으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멀어 수요자에게 정책의 온기가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불만이 거세지면 그때서야 ‘뒷북’ 보완 대책을 내놓는 현상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소비 진작위해 주겠다는 지역상품권 대구에는 없어
노선 중단으로 비행기 다 서 있는데 "이착륙료 감면"


 
정부는 지난 19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12조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 방안을 내놨다. 1.5%의 저금리를 적용해 이자 부담도 줄여준다는 방침이다. 궁지에 몰린 소상공인을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경제 중대본’ 첫 작품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 자금은커녕 기존 정책 자금을 따내는 것도 ‘그림의 떡’이다. 많이 퍼붓겠다고 강조해놓고 경로를 세심히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정책자금 집행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19 정책자금 집행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후속 대응 역시 늑장이긴 마찬가지다. 대출 병목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자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0일 “정책자금이 수요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병목현상이 계속되는 경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 통계로 병목 현상이 드러난 것은 1주일도 더 지났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2월 13일~3월 10일코로나19 정책자금 집행률(건수 기준)은 신청 대비 9.2%에 그친다. 이미 늦었는데 정부가 밝힌 대응은 구체적 방안이 아니라 '고려한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대응도 한발짝씩 늦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 1월 22일 2267.25를 찍었던 코스피 지수는 급락을 거듭해 지난 13일 1771.44까지 떨어졌다. ’개미‘들의 불만이 거세졌고 공매도 금지 요구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까지 올라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머뭇거리다 13일 장 종료 후에나 한시적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냈다. 그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뒷북‘ 지적에 “변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주가가 계속 하락해 1500선이 뚫릴 때까지도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 결국 19일에서야 주식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증권시장안정기금 카드를 꺼냈다. 그마저도 당장 시행이 아니라 다음 주나 조성한다는 얘기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주일 새 코스피‧코스닥 동시 서킷 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를 두 차례나 발동했는데, 증권안정시장기금을 다음 주부터 조성하는 건 너무 늦은 정책“이라며 " 비상계획에 따라 증권안정시장기금과 같은 장치를 미리 준비해 적시에 내놓았다면 이 정도까지 시장이 패닉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에 대한 지원은 현장과 정부의 온도 차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 최대 항공컨설팅 전문업체 아시아태평양항공센터(CAPA)는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5월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항공사가 파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항공업 전체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저가항공사에 대한 금융 지원, 착륙료 감면 등의 내용뿐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비행기가 대부분 멈춰서 이‧착륙하는 비행기 자체가 없는데 착륙료 감면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소비를 늘리겠다는 쿠폰 지급 사업에도 허점이 있다. 최근 국회 문턱을 넘은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사업에는 소비쿠폰 지급사업이 있다. 쿠폰은 주로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되는데, 정작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대구에는 추경안 편성 당시는 물론 현재도 이 상품권이 없다. 대구시는 5월 말에나 대구사랑상품권을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을 마친 뒤 마스크를 다시 쓰고 있다. 2020.3.19 청와대사진기자단 / 동아일보 전영한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비상경제회의에서 발언을 마친 뒤 마스크를 다시 쓰고 있다. 2020.3.19 청와대사진기자단 / 동아일보 전영한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은 "경제 부처가 큰 그림 없이 쫓기듯 계획을 내놓다 보니 대책은 중구난방이고, 세심함도 실종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결과는 경제 컨트롤타워에 힘을 실어 주지 않고 비전문가 그룹인 당‧청이 경제를 주도하고 휘두른 데 따른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당이 경제 부총리의 자리까지 언급하며 경제 컨트롤 타워를 흔들어대면 경제 부처가 제대로 된 정책을 낼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하남현‧허정원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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