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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수업을 3분 영상으로 끝…온라인 강의에 학부모 분통

중앙일보 2020.03.20 05:00
지난 17일 대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늦춰진 개학에 맞춰 학생들에게 전달할 온라인과제물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지난 17일 대구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이 늦춰진 개학에 맞춰 학생들에게 전달할 온라인과제물을 제작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회사에 다니며 초3 딸을 키우는 김모(37·서울 송파구)씨는 개학이 4월로 다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부터 나왔다. 친정엄마와 함께 살아 당장 돌볼 사람이 없진 않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학습 공백’은 계속될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김씨는 교육당국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온라인 학습 콘텐트를 지원한다’는 말에 안심했다. 하지만 담임교사의 안내에 따라 ‘e학습터’ 사이트에 접속해본 뒤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사이트에 올라온 온라인 강의는 학교에서 1시간 동안 가르칠 내용을 3~4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김씨는 딸에게 수학 온라인 강의를 듣게 했지만, 아이는 30초도 지나지 않아 딴짓했다. 온라인 강의는 두 명의 캐릭터가 나와 세 자리수 덧셈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강의 후 배운 내용을 복습할 수 있는 간단한 퀴즈조차 없었다. 김씨는 “학습이 끝난 후 아이에게 세 자리수 덧셈 문제를 냈는데 하나도 풀지 못했다”며 “이런 질 낮은 콘텐트로 학업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5주 연기되면서 전국 초·중·고생의 학업 공백도 한 달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온라인 학습 콘텐트를 제공해 이를 보완할 계획이지만 학부모·교사 사이에선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아이가 그저 바라보는 ‘일방향 강의’라 집중도가 떨어지고, 내용도 부실해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e학습터'에서는 초1~중3 대상 학습관련 온라인 강의를 제공한다. [홈페이지 캡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e학습터'에서는 초1~중3 대상 학습관련 온라인 강의를 제공한다.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학습 콘텐트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사이트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운영하는 ‘e학습터’다. 초1~중3을 대상으로 교과별·학년별로 학습 관련 동영상을 제공한다. 
 
교과서 진도에 맞춰 학습할 수 있게 구성됐고, 단원별로 3~4분짜리 강의 5~20개를 제공한다. 개학 연기 발표 후 온라인 학습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e학습터 이용량은 전년 대비 20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선 “학습효과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온라인 강의가 익숙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초·중학생이 혼자 강의를 듣기는 쉽지 않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에서는 애들이 집중하지 못하면 교사가 질문하거나 혼을 낼 수 있지만, 온라인 강의는 그럴 수가 없다”며 “특히 초·중학생들은 유아 때부터 온라인 게임 등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 한 방향 콘텐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전했다. 
 
초등 4학년 아들을 키우는 이모(37·서울 양천구)씨는 “강의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학부모가 아이 옆에 앉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줘야 할 것 같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교원단체 공동선언 및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교육시설재난공제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교원단체 공동선언 및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3차 개학연기를 발표하면서 학업 공백 방지 보완책을 내놨다. 휴업 3주차인 다음 주에는 온라인 학급방을 통해 일일 학습 방법 등 안내하고, 4주차에는 정규수업처럼 체계적인 교과학습 프로그램과 과제·피드백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SNS를 활용해 ‘온라인 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들도 “학습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도의 한 고교 교장은 “온라인 학급을 통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있지만 수행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성적에 반영하기도 애매하다”며 “학기 시작 전에 교사와 소통한다는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학습에 도움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중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한모(38‧서울 성동구)씨도 “학원은 휴원 기간에도 강사가 강의하는 질 높은 온라인 강의를 제공하고, 숙제에 대해 피드백도 해준다고 들었다”며 “사교육 없이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학업 공백 메우려면 학원에 다니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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